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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딴짓 Nov 27. 2023

아직은 날아오는 벽돌이 너무 아픕니다

벽돌에 대한 고찰

저 사람은 나에게서 왔지만 나의 사람이 아니다

나는 과거의 인간이고 저 사람은 미래의 인간이다

우리는 한집에 살지만 나는 그를 손님처럼 대한다

밥만 차려주고 적당히 친절하고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

9시가 넘었지만 학교에 가지 않고 있는 저 아이에 대해 나는 감정을 빼야 한다

......




나에게 벽돌은 아들이 던진 말이다.

아들이 하는 행동이다.

아들 자체다.





초등학교 4학년 경까지의 관계는 무난했다. 특별히 모난 부분도, 요구 사항도 없이 조용한 아이였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경시대회에 나가 곧잘 상도 타오고, 역동적인 축구 경기도, 조용히 앉아하는 독서도 좋아하는 아이였다(고 나는 생각했다).




사교육과 학업 경쟁이 심한 지역에서 살고 있지만 아이에게 사교육을 강요한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 남편과 나나 둘 다 그런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초 6학년 때 자의 반 타이반으로 동네 영수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는데 시작하면서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아이는 학원을 온몸으로 거부했고 학원 선생님과의 마찰도 생겼다. 자신의 의견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데 남녀노소, 부모, 선생님을 가리지 않았다. 앞으로 이 아이와의 시간들이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자유롭고 수용적인 환경에서 아이가 지냈으면 했다. 아이와 상의한 끝에 인근 대안학교에 지원했고 운 좋게 합격한 날, 우리는 얼싸안고 울었다. 너무 좋을 것만 같았던 중학교 생활은 중2 시작부터 삐걱였다. 아이는 중1 담임 선생님과 맞지 않았는데 중2 때 또 그 선생님이 담임이 되셨다. 아이와 잘 지내고 싶었던 담임 선생님은 중2 때 다른 반에 배정된 아이를 자기 반으로 데려왔노라고 나중에 고백하셨다. 본인과 관계가 잘 되지 않아 학교에 있는 상담선생님께 계속 보냈지만 그 또한 실패했노라고 중2 말 학부모 상담에서 말씀하셨다. 아이는 학교에서 겉돌다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수학 선생님이 중3 담임이 되자 이제는 정말 학교를 나와야겠다고 했다. 그렇게 내 아이는 중3 4월에 일반 중학교로 전학을 왔다. 아이는 지금 새로운 환경에 적응 중이지만 이곳에서도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지난 약 3년의 시간 동안 아이는 무기력과 공격성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고 있고, 학업은 아주 뒤처졌다. 여기까지는 매우 표면적인 상황이다.







다시 생각해 본다.

어렸을 때 아이를 많이 안아주지 못했다. 회사일로 너무 바쁘게 살았다. 무식했다. 새벽 2시까지 회사에 있는 날이 많았고 친정에 맡긴 아이를 네 살 때 데려왔다. 그전에는 일주일에 한두 번 가서 아이를 보는 정도였다. 내 성격상 아이를 안아주는 등 스킨십을 많이 해주지도 못했다. 아이도 딱히 원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착각이었다). 초등학교 3, 4 학년쯤 되는 어느 날 아이는 'apple'도 쓰지 못하는 아이는 자기뿐이라고 했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당시 나는 우리나라의 메이저 영어 사교육 회사에서 교육과정 기획 일을 하고 있었다. 사교육 시장의 생리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에 정작 나 자신은 사교육을 믿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 영어 안 해도 괜찮다,라는 말로 대강 넘어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이가 필요로 하는 적절한 교육 방식이 분명 있는데 나는 그것을 적용하지 못했다. 대안중학교는 공부 외에도 개별 아이들의 모습이 많이 드러나는 곳이었다. 기본적으로 이미 초등학교 때 사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많았고, 다양한 커리큘럼 안에서 예체능, 여러 가지 방과 후 활동, 학생 자치 등이 활발했다. 교육열이 심한 동네 안의 대안학교였다. 아이들이 앞에 서서 주도적으로 해야 하는 활동들이 많았고, 잘하고 싶은 아이들이 많았다. 그곳에서 우리 아이는 설 곳이 별로 없었다. 자신의 자존감을 드러내는 유일한 활동인 축구가 동아리에서 빠지자 아이는 심연으로 가라앉았다. 나는 그렇게 훌륭한 학교의 프로그램을 받아먹지 못하는 아이가 못마땅했다.




또 생각해 본다.

아이에게 사교육이 필요 없다고 말한 것도, 이제는 필요하다고 말한 것도, 대안학교를 가자는 것도, 결과적으로는 부모의 선택이었다. 나는 아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못했다. 아이가 서툴더라도 조금씩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그런 시기들을 겪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말이 없어서 사고형 인간인 줄 알았던 아이는 실은 무기력, 분노, 슬픔 등 감정을 드러냈었다. 관련 테스트 결과에서 가슴형 인간으로 나왔는데, 그동안 부모도, 선생님도 아이를 제대로 바라봐 주지 못했다. 이제 아이는 그 학교를  나오겠다고 자기 목소리를 냈지만 그 목소리의  근거는 약하고 거칠다. 그럼에도 우리 부부는 이제는 그 결정을 지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후 다행히 새로운 학교에서 참 좋은 선생님을 만났지만 아이는 어른을 믿지 못하고 경계하며 3년 동안 만연된 무기력과 게으름은 종종 문제가 되고 있다. 아이는 지금 힘이 없다. 새롭게 일어날 그 어떤 동기.




그래서 마음이 구겨진 아이는 엄마인 나를 공격한다. 모진 말로, 엄마를 무너지게 하는 행동으로. 의도적일까 아닐까. “어머니, OO이가 지금 마음속의 독을 뿜어내고 있는 거예요. 지금 내뱉지 않으면 20대에, 30대에 할 겁니다.” 내가 존경하는 어떤 분이 말씀하셨더랬다.




그렇지만 나는 아이의 말과 행동에 아프다. 그것이 나에게 던져지는 벽돌 같다. 오늘의 글쓰기 키워드인 '벽돌'을 봤을 때 나는 이미 내 몸이 아픈 듯한 느낌에 흠칫했다. ‘벽돌은 너무 하잖아. 내 얼굴을 강타할 것 같은데...’라고 생각했다. 열심히 벽돌을 쳐내서 쪼개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그런 상상을 했다. 내가 지금 벽돌은 못 맞겠고, 그러기엔 나는도 너무 아프고, 벽돌을 쳐내자. 완전 바깥으로 쳐내지는 말고 쪼개서 내 발 앞에 우수수 떨어진 자갈 같은 벽돌 조각을 상상했다. 너무 커다란 벽돌 말고 그런 벽돌 조각들을, 평소에 내가 계속 맞고 있자. 그러다 보면 나도 익숙해지겠지. 단단해지겠지. 나도 단단해지고 너도 단단해지겠지. 실제로 아들은 나를 무너지게 하지만 한편으로는 더 단단해지고 나아가고 성장하게 하기도 한다(고 자기 주문 중이다). 이런 극한 경험을 어디서 맛보겠는가. 나는 아직 내게 거대한 벽돌이 던져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이제 겨우 중3 아닌가. 이렇게 조금씩 단련되다 보면 나중에 더 큰 벽돌이 와도 그때는 조금 더 괜찮지 않을까.




그래 너무 커다란 벽돌 말고 조금 작은 벽돌 조각을 던져주겠니? 엄마가 다 맞을게. 던져. 던질 때가 나아. 그렇게 해서 네가 괜찮다면. 네가 네 안에서 나올 수만 있다면.

미안해. 고마워. 아들.




ps. 벽돌을 잘 맞기 위해 나는 어제 못 먹은 빵을 먹으러 가야겠다.





글을 다 써서 올렸는데 불현듯 스치는 생각이 있어서 추가합니다.

저는 '던져진 벽돌에 맞는다'라고만 생각했더라고요.

네모난 갈색 벽돌이 제 얼굴을 타케팅 하여 던져지는 상상을 했어요.

그런데... 벽돌을 손으로 가뿐히 받을 생각은 왜 못 했을까요.

저쪽에선 던지고 이쪽에선 받고...

"벽돌 간다~"

"어~ 던져~" (웃으며)

그렇게 하나씩 가뿐히 받아서 차곡차곡 쌓아 돼지 삼 형제의 막내처럼 튼튼한 집을 지을 수도 있는 건데.

아, 내가 너무 방어적이었구나, 벽돌을 막아낼 생각만 하고 있구나, 온몸으로 긴장하고 있구나, 싶어서 반성도 되고 나 자신이 짠하기도 했습니다.

웃으면서 벽돌을 받아야겠습니다.


이거... 성찰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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