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딴짓 Nov 27. 2023

어머니, OO 이와의 관계에 실패했습니다

담임 선생님이 말했다


"어머니, 제가 OO 이와 잘해보려고 했는데 관계에 실패했습니다."



작년 12월, 학부모 상담에서 담임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에 나는 몸 둘 바를 몰랐다. "실은 OO이가 2학년 때 다른 반으로 배정되었었는데 제가 좀 잘 지내고 싶어서 제 반으로 다시 배정시켰거든요."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우리 아이는 가뜩이나 선생님과 사이가 썩 좋지 않았는데 본인 고집으로 2년이나 아이를 끌고 왔단 말인가? 아이를 위해서라고 하지만 결국 본인 욕심 아니었나? 대안학교에서 관계는 가장 중요하고 어쩌면 전부 아니던가? 그런데 저리 쉽게 '실패'란 단어를 툭 내뱉는단 말인가?



글쓰기 커뮤니티 활동을 하고 있다. 오늘의 글 주제인 '실패'를 보고 나는 불현듯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마음이 가라앉았다. 오늘도 한정된 시간에 글을 써나가야 하는데 한 발짝 나가기가 어려워 주저하고 있다. 그래서 하릴없이 다른 분들의 글을 읽었다. 마음이 편하지 않아 댓글도 달지 못했다. 오늘은 평소보다 더 발랄하게 글을 쓰고 싶었는데. 그런데 오늘의 키워드가 '실패'라니.



실패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선생님의 입에서 실패라는 말이 나온 순간 그 단어가 즉각 기정 사실화 되는 듯했다. 그 말과 함께 나도, 내 아이도 추락했다. 지금까지의 아이의 학교 생활이 부정되는 느낌이었다. 선생님은 '더 이상은 자신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덤덤하게 말씀하셨다. '그래서' '그다음에'가 없었다. 그때의 해소되지 않은 감정과 상처가 남아 나에게는 '실패'라는 말이 쓰리다. 선생님이 많이 애쓰셨네, 쉽지 않으셨을 텐데 부모 앞에서 용감하게 인정하셨네,라고도 생각해 봤다. 그렇지만 '실패'라고만 규정짓고 '그다음'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면...... 역으로 부모인 내가 선생님을 위로해 드리거나, 공감해드리거나, 혹은 솔직하게 선생님께 서운한 내 마음을 표현한다거나, 더 나아가 선생님께 아이에 대해 어떠한 태도나 활동을 가져보자고 제안해 볼 수도 있었으려나. 실상 나는 그 자리에서 아무 반응도 할 수 없었다. 공기가 완전히 빠져버린 풍선처럼 멍해진 나 자신을 끌고 상담실을 나왔다. 그렇게 나는 선생님의 실패를 완성시켰다.



살면서 대단하게 실패한 경험이 별로 없다. 스스로는 회복탄력성이 낮은 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막상 내게 진한 실패의 경험이 있었던가 싶어서 과거를 돌이켜 보았다. 대체적으로 정해진 범위 안에서 살아온 나는 어떤 활동에의 실패 경험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아,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했다. 수치심에 친구들을 피해 다녔다. 진학은 했지만 학교의 타이틀이 부끄러웠다. 반수를 했지만 실패하고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이제 나는 그때의 일이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학교를 통해 나름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좋은 경험을 했다. 딱히 기억이 나는 수업이나 교수님은 없지만 실상 공부를 제대로 안 했던 것은 학교가 아닌 나의 탓이다. 그리고 막상 나에게 학교라는 타이틀은 첫 회사의 입사 시 조차도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이제는 뭔가를 배울 수 있는 경로가 많기에 굳이 학교를 다시 들어가 가방 끈을 늘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캐나다에서 일자리 제안을 받았는데 한국에서 비자 문제가 생겨서 다시 캐나다로 돌아가지 못했다. '캐나다로 가는 것'이라는 면에서는 실패지만 한국에서 어쩌다 직업을 얻고 직장에서 멘토를 만나 가늘고 길게 지금까지 직장 생활을 이어가고 있으니 이러한 삶도 괜찮다.






한때 결혼에 실패했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한참 아이들에게 손이 많이 가던 시절에는 더욱 그랬다. 지금은? 조금 더 배려심 있고 따뜻한 사람과 결혼했더라면...? 20대의 내가 그런 현안을 가졌었더라면? 아니, 몇 년만 참지 그럼 결혼이 필수가 아닌 시절이 오는데 뭐가 급하다고. 쯧, 의미 없는 생각이다. 내가 남편에게 더 배려심 있고 따뜻한 사람이 되어주는 게 훨씬 빠를 것이다. 우리의 결혼 생활은 실패가 아닌 '진행형' 때론 '침체' 때론 '발전'하고 있다. 나름 코드가 잘 맞기도 하고.



이렇듯 나의 평생에 '실패'라는 타이틀을 붙인다면 특정 일보다는 인간적인 관계에 대한 것이다. 부모 갈등이 많았던 환경에서 자란 나는 갈등 회피형으로 컸다. 나라도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편이 편했고,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사람이 되어 갔다. 메뉴 고를 때 '아무거나 다 좋아, ' 심지어 '너는 뭐 먹을 건데?'를 물었다. 그 습성이 지금도 남아있고 결과적으로 타인과의 관계도 둥근 편이지만 나에게도 실패한 관계가 있다. 나는 내 친동생과의 관계에서 실패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내 큰 아이와의 관계가 어렵다. '실패'는 아니다.






고백한다. 작은 것도 실패로 규정한다면 내 인생은 실패로 가득 차 있다. 셀 수도 없을 정도이다. 하지만 막상 '완벽한 실패'라고 칭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늘 실패 후의 '그래서' '그다음'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의 전학을 이전 학교와의 '관계 실패'라고 담담하게 말하고, 새로 전학 온 학교에서의 삶을 지속하고 있다. 이 과정을 겪으며 수많은 감정, 생각, 배움이 따라왔다. 내 아이를 진심으로 보듬지 못했다.  좋은 부모이기에 앞서 좋은 어른도 되지 못했다.




솔직히 실패를 내 개인 트레이너로까지 삼지는 못하겠다. 솔직히 이런 일이 안 일어났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그런데 어쩌랴. 인생이 그렇게만 흘러가지 않는 것을. 그렇다면 실패와 함께 할 수밖에. 만나면 또 멈칫하겠지만 또 적응하고 나아가야지. 실패 비스무레 한 것이 지나가든 실패라는 녀석이 나를 퍽치기하고 지나가든 멈추고, 숨 고르고, 생각하고, 다시 또 나아가야지. 그러면서 또 나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회복해야지.



글쓰기 커뮤니티의 미션인 '오전 10시까지 글 게시'라는 면에서 보면 나는 실패자이다. 주말에는 글을 쓰지 않는 걸로 착각하여 Day 2에 어이없이 시간을 어겼다. 하지만 '완주'의 측면에서 보면 나는 승리자이다. '승리'라는 표현을 좋아하지 않지만 이번만큼은 그 표현에 억지스럽게라도 취해 보고 싶다. 그래서, 그다음은? 생각 중이다. 나 혼자 블로그 등 게시를 지속해 보는 것도 좋겠지만 '함께' 뭔가를 해보는 경험이 좋았다. 그래서 '함께'의 다음을 이어가 볼까 싶다. 이렇듯 실패했지만 거만하게 승리를 자축하고 있는 나 자신이 우습기도 하다. 나는 촌철살인 같은 허를 찌르는 메시지와 위트 있는 표현을 좋아한다. 그래서 지적이면서도 위트 있는 글을 쓰고 싶었다. 그런데 어려웠다. 일단 매일 시간을 다투며 글을 썼고, 사실 내 그릇이 아직은 종지 수준이다. 압도적인 인풋이 있어야 압도적인 아웃풋이 가능하다는데, 압도적인 인풋도 없었다. 독서 말이다. 우울함은 나에게 너무나도 친근한 존재이기에 의식적으로 경계해야 한다. '뭐 어때' '아님 말고' '아직 괜찮아'라고 생각해 본다. 또다시 그렇게 또 몸을 털어 본다. '실패'라는 오늘의 키워드에 겁먹고 시작했던 글쓰기가 꽤 가벼워졌다.





올 6월에 썼던 글입니다. 그때부터 매일 글쓰기를 실천하며 조금씩 나아가보려 합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작가의 이전글 이름을 물어도 될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