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정체기에서 허우적거린 지 벌써 몇 달째. 우연히 4주간의 글쓰기 과정에 참여하게 되었다. 첫째 주, 선생님께서는 레퍼런스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쓰고 싶은 책이 있다면 우선 내가 참고해야 할 콘텐츠를 최대치로 뽑아서 검토하라셨다. 책이든, 논문이든, 영화든 상관없이 다 나열해보라셨다. 그렇게 레퍼런스를 파는 것이 가장 중요한 단계라고 하셨다. 그 주제에 대한 시장의 흐름을 읽고, 책의 구성, 스타일, 문체를 배워볼 수 있으며, 나의 관심사를 다시 검토해 볼 수 있고, 혹시 이미 시중에 비슷한 책이 나와있는지 살펴보는 것은 책을 다 쓴 후에 유사한 책이 발견되는 참사를 막는 너무나도 중요한 과정이라고 하셨다. 더 나아가 나만의 개성과 특성을 부각할 수 있는 기회라고도 하셨다. 지당한 말씀이셨다.
그것은 '아들을 싫어하는 엄마'에 대한 책이어야 했다.
아들 대신 딸까지는 호환 가능했다. 그러나 엄마 대신 아빠는 곤란했다. 반드시 '엄마'여야 했다.
내가 가진 책 중 오나 도너스의 <엄마 됨을 후회함>은 내가 성경처럼 품고 있는 책이다. 집에 있는 <아내 가뭄(애너밸 크랩 저)>과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수 클리볼드 저)>도 한번 살펴보았다. 가정주부로서의 답답한 마음과 현실 도피를 담은 <19호실로 가다(도리스 레싱)>도 후루룩 다시 읽었다. 사노 요코가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자식이 뭐길래>도 다시 봤는데 내용이 꽤 사랑스럽고 귀엽다. 내가 찾는 스타일과는 색이 다르지만 그래도 도움이 되었다.
버지니아 울프, 비비언 고닉, 그리고 우리나라의 많은 여성학자들의 책도 떠올려보았지만 그들 모두 자녀가 없었기에 패스했다. 여성성에 대해 파헤진 <암컷들(루시 쿡 저)>이라는 책도 있지만 부족했다.
나는 목말랐다. 나는 성난 엄마가 필요했다. 눈물이든, 울분이든 꾹꾹 참거나, 포효하는 엄마가 필요했다. 화상을 입은 듯 우울한 상태이거나, 숨을 헐떡이고 당장 터질 폭탄물처럼 아슬아슬하거나, 혹은 눈알이 빠진 듯 완전히 공허해진 그 어떤 여자가. 그런 모든 감정을 일상에서 공기처럼 겪는 누군가가. 그리고 그런 자신을 솔직하게 내보일 수 있는 엄마가 필요했다. 소설이든 비소설이든 뭐든지 간에 나는 내 책의 롤모델이 시급했다. <엄마 됨을 후회함> 급의 국내 책이면 더욱 좋았다.
1차 서칭에 실패 후, 나는 챗gpt에게 물었다.
결국 이 부족한 녀석은 내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다. 못난 놈.
나는 태평양에서 엄마 찾는 심정으로 온라인서점에 들어가 키워드 검색을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고양이가 싫다>
<나는 착한 아내가 싫다>
<나는 한국에서 죽기 싫다>
<한국이 싫어서>
<호구도 되기 싫다>
<나는 꽃이 싫다>
이거 아니라고......
<나는 엄마가 힘들다>라는 책은 친정 엄마가 딸인 나에게 힘든 존재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왜 저 인간이 싫을까?>는 일반적인 인간관계에 대한 책이었다.
<가족이라는 착각> 같이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의 책은 많았다.
<아빠는 사실 육아가 싫다>는 바로 지난달에 나온 따끈한 책인데, 저자가 아빠인 데다 목차가 은근 다정한 분위기를 풍겨 택하지 않았다.
<엄마의 빈틈이 아이를 키운다>. 아니, 아이를 키우는 책 말고...
<엄마 자격증>. 제목 뭐야? 증오할 거야...
반면, 엄마가 싫다거나, 엄마와 절교하겠다거나, 이미 절교해서 잘 살고 있다는 책은 많았다.
인간은 누구나 살면서 새로운 경험을 하고, 그 경험에 실패와 좌절, 후회와 슬픔이 따르는 것은 극히 자연스럽다. 그런데 왜 엄마의 부정적인 감정은 금기시되는 걸까? 내가 알기로는 엄마로서 심적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내 주변만도 광역버스 하나 채울 수 있을 만큼 되는데, 왜 이렇게 책은 없는 걸까? 그 엄마들조차도 솔직한 엄마의 이야기는 거북한 걸까? 수요가 없기에 공급이 없는 걸까? '거기 정말 아무도 없나요오오~~?!'라고 이토록 간절하게 그이를 소환하는 이는 정녕 나 하나뿐이란 말인가.
이틀 후까지 레퍼런스를 찾아야 한다. 내가 키워드 검색을 잘 못해서 못 찾는 것일 수도 있다. 그것에 희망을 품어본다. 제발 도와주세요. 알고 있는 책이 있다면 혼자만 간직하지 마시고 저 좀 알려주세요, 네? 좋은 건 좀 같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