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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이 너무 멀어서

20251029

by 딴짓

오늘 오전, 나는 어제까지 살펴본 예닐곱권의 청소년 소설에 대한 내용을 정리하고, 관련 내용을 단체 톡방에 공유했다. 관내 도서관의 새 책 평가단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올해의 추천도서 중 스무 권 내외만 골라 포스터를 제작하려고 준비 중이다.


나는 차가워진 지 한참 된 커피를 다시 데워 마시며 소파에 몸을 기댔다. 두 눈이 시큰거렸다. 겨우 정오가 지난 시간이지만 오늘의 눈 할당량을 다 써버렸다. 하루 중 눈이 지치는 시간이 점점 빨라지고 있다. 책을 보지 말라던 안경사의 말이 떠올랐다.


가야 되는데.


나는 이마와 양 눈썹, 눈 밑 뼈를 지긋이 누르며 신음했다. 시력이 떨어진 후 살짝만 눌러도 눈 부위가 아팠다. 이럴 때는 만사 제쳐두고 잠시라도 자고 일어나야 그나마 컨디션이 회복되었다. 아닌 게 아니라 머리를 기대면 바로 잠이 들 것 같았다.


나는 스마트폰을 켜고 ‘이태원 참사 추모 행사’를 검색했다. 2025년 10월 29일. 오늘은 이태원 참사 3주기이다.

오전에 광화문에서 두 시간 가량 진행된 정부 공식 추모식은 이제 막 끝난 상황이었다. 서울광장에서 시민추모대회가 있을 예정이지만 저녁 여섯 시 이후였다.


어쩌지.


나는 적어도 세월호와 이태원 일은 챙기겠다고 다짐했었다. 집에서 겨우 한 시간 거리이고, 여유 시간도 있으니, 오고 싶어도 오지 못하는 분들을 위한 예의라고도 생각했다.

그럼에도 마음이 흔들렸다. 어제의 채 피로도 풀리지 않았다. 지금 가려 하니 시간도 어중간했다. 조금 있으면 작은아이도 하교할 텐데.


안 가면 앞으로 1년간 후회 안 할 자신 있어?


나는 운동화를 신고 나섰다. 광화문까지는 광역버스로 한 번에 갈 수 있었다. 공식행사는 끝났지만 부스들은 남아 있겠지. 사람들이 소소히 모여 있겠지. 왔다 갔다 두 시간 반. 오케이.


정말 눈 깜짝 할 사이에 도착했다. 너무 금세 가서 불안할 정도였다. 집회가 있으면 근처에 차량 정체가 있어야 하는데. 버스에서 내려보니 광화문 거리가 깨끗했다. 이태원 행사는커녕 다른 행사도 없었다. 한복을 입은 관광객들만이 분주히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고 있었다.


시청까지 도보로 15분. 나는 저녁에 시민추모대회가 있을 시청 광장으로 걷기 시작했다. 아직 행사가 시작되려면 몇 시간이나 남았지만 혹시 모르니까. 누구라도 있겠지. 준비하고 있겠지.


서울시청 광장에는 부스가 가득했다. 광장은 로컬 먹거리 행사와 인파로 북적였다. 시청 광장은 연중 행사가 많은 곳이니 행사가 비어있는 시간이 없는 게 당연했다.


하.


결국 나는 이태원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으로 향했다.


걷다 보니 갑자기 단 게 땡겼다. 덕수궁 가는 길목 앞의 던킨도너츠가 눈에 들어왔다. 카카오 초코맛 하나면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줄을 서서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에게 물었더니, 카카오페이로 결제하면 50퍼센트 할인을 한다고 했다. 네 시까지 딱 두 시간만. 네 시 10분 전이었다.


나는 굳이 기다려 도너츠 하나를 물고는 남대문 시장 쪽 정류장으로 걸었다. 늦은 오후 햇살이 길게 늘어지고 있었다.


결국 이태원으로 가게 될 것을.


집에서 광화문까지는 1시간, 이태원까지는 1시간 15분. 꼭 거리 때문만은 아니었다. 159명의 압사 사망 사고가 났던 해밀톤 호텔 옆 길은 그냥 아담한 골목길이다. 추모 행사도 꾸릴 수 없을 만큼 좁은 공간이다. 때문에 올해는 광화문이나 시청광장에서 행사다운 행사를 볼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었다. 그러나 이태원이 조금 더 멀다는 것, 버스를 한 번 더 갈아타야 한다는 것이 이유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태원이 멀어서.

이태원이 너무 멀어서.

이태원이 너무 멀어서???


나는 작년과 마찬가지로 국화를 헌화하고, 가나다 순으로 기재된 159명 희생자들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마음속으로 불러보았다. 희생자들은 대부분 20대이고,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다. 남성에 비해 여성의 가슴 근육이 약하기 때문이다. 나는 골목길을 천천히 걷고, 근처를 서성이고, 사람들이 붙이고 간 포스트잇의 글귀를 읽었다. 눈물이 나오지 않게 참고, 기어코 눈물이 나왔을 때는 눈물을 닦지 않고 모른 척 했다. 눈물을 닦는 동작을 보면 기자인지 누구인지도 모르겠는 사람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셔터를 눌러대기 때문이다.


지난 3년간 이태원 골목은 폐허마냥 쓸쓸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보라색 점퍼를 입은 중년의 백인 부부들도 보였다. 희생자의 부모들일 터였다. 3년 전, 윤석열은 14국, 26명의 외국인 희생자들의 유가족에게 즉각 연락을 취해 국가 차원의 보상을 하겠다고 프레스 앞에 서서 약속했다. 그러나 그중 누구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그 어떤 연락도 받지 못했다. 그리고 올해 처음, 정부는 그들을 공식 초청했다. 그리고 오늘 아침 10시 29분, 서울 전역에서는 추모 사이렌이 울렸다.


아임 쏘리. 아임 쏘리. 아임 쏘리……

나는 외국인 유가족들에게 다가가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용기가 나지 않았다.


어느덧 퇴근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저녁 여섯 시, 서울시민광장에서는 추모가 시작될 것이다. 나는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아픈 눈을 감고 생각했다.

나는 또다시 잊고 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내년 이맘때쯤 기억을 떠올리겠지. 그제야 아파하겠지.

자주 떠올려야지. 자주 기억해야지. 내년에는 일찍 와야지.

그런 생각을 했다.



*벽면의 포스트잇에 써 있던 글귀 몇 개를 사진 찍어 왔습니다. 제 스스로를 믿을 수 없어서, 기억하기 위해서요. 같은 목적으로 이 글의 메인 사진으로도 걸었는데 불편하시면 내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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