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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딴짓 Dec 18. 2023

사회 친구에 대하여

어느 날 만난 내 편

우리는 3년 전 아이들의 중학교에서 만났다. 코로나가 창궐하던 시기, zoom으로 본 내가 잘 웃고 있었다는 이유로 그녀는 내게 학부모 임원을 같이 해보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반가운 마음도 들었지만 얼떨떨함이 컸다. 갑자기? (절 아세요?)



학부모 행사가 일상적인 대안학교였다. 수많은 일정을 헤쳐나가면서 우리는 함께 울고 웃었다. 다크하고 예민한 정서를 가진 두 아들맘이자 내향인인 우리는 참 많이도 닮아 있었다. 억압된 정서와 분통함, 동시에 나아가고 싶은 목마름이 있는 자들이었다. 우물쭈물한 나와는 달리 담대하고 결단력이 있는 그녀 나를 참 잘도 이끌어주었다.



내가 뭉클해하는 그 순간에, 그녀도 같은 것을 보고 뭉클해하고 있다는 것을, 울고 있다는 것을, 기뻐하고 있다는 것을, 그 공명이, 단단한 이어짐이, 보드랍고 묵직한 온기가, 나는 참 오랫동안 좋았다.   



그녀는 나를 울리기도 잘했다. 처음 코로나에 걸리자 나는 당시 룰을 철석같이 지키며 방문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나에게 백 프로 의존해 먹고 자던 문밖의 남자 셋은 갑작스러운 일상의 불편함에 싸우고 지지고 볶고 난리가 나고 있었다. 방 안에서 불안한 마음에 휩싸여 있는 내게 '두고 갑니다'라는 한 줄 메시지가 왔다. 현관문 밖의 커다란 가방 세 개에는 씻어 다듬은 야채를 포함하여, 그냥 세팅하고 끓여 먹으면 되는 식량이 몇 끼나 준비되어 있었다. '챙긴다.' 그녀를 떠올릴 때마다 나는 그 말의 힘이, 위대함이 떠오른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같은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졸업하고, 청년이 되고, 엄마인 우리들도 뭔가를 아닌 듯 함께 하며 조금씩 늙어 갈 줄 알았다. 사회에서 만난 사이지만 감히 그런 미래를 상상했다. 그러다가 올봄, 아들의 갑작스러운 전학 나옴으로 우리는 돌연 이별을 당했다. 아들은 이미 오래전에 마음을 먹은 상태였지만 그녀는 자신이 더 신경 쓰지 못했음을 미안해하고 아파했다. 마지막까지도 그녀는 내 아이의 새 교복을 사는데 동행해 주고 내 얼굴을 살피며 등을 쓰다듬어주었다.






그녀는 3년 전 처음 베이스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녀의 꿈 중 하나였다. 오늘, 그녀가 속한 밴드의 공연이 있었다. '혹시 올 거임?' 지나갈 일 있으면 들르던가, 식으로 툭 던진 메시지였다.



아이의 전학 후 8개월, 예전 학교가 있는 그 동네를 가는 것은 어느새 많이 망설여지는 일이 되었다. 그런 내 눈에 그녀가 보였다. 그녀만. 그리고 빛났다. 그녀의 현란한 손동작에, 편안하고 품위 있는 태도와 미소에 그간 얼마나 많은 연습 시간이 쓰였는지를 아는 내 마음은 시종일관 뭉클했다.



지난 1년, 우리는 각자의 것으로 깊어졌다. 그녀는 음악으로, 나는 독서와 글쓰기로. 이제 나는 그녀의 1호 팬이다. 나는 남을 잘 챙기는 자는 아니다. 하지만 그녀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내가 응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서 좋고, 응원할 수 있는 내가 되어서 좋다.



큰 아이는 중학교에서 여러 일들이 있었고, 나는 종종 내가 서 있는 바닥이 꺼지는 듯한 느낌이 들곤 했다.  그럴 때 얼른 내 손을 잡으라며 손을 뻗어준 그녀가 있었다. 그녀들이 있었다. 사회 친구, 게다가 학부모로 만난 사이. 낯설고 조심스럽고, 의심도 했던 그 관계. 그러나 그들이 내게 손을 내밀었던 기억이 너무 따뜻해서 이제는 나도 그 관계에 정성을 기울이고 싶다. 나도 누군가에게 내 양손을 내어주고 싶다.




사진을 올린 걸 알면 그녀가 나를 죽이려고 할까 아닐까.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녀라면 내가 그녀를 얼마나 자랑하고 싶어 하는지를 이해해 줄 것이라고 감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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