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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딴짓 Dec 20. 2023

네가 안 나가면 내가 나갈게

나갔다 올게 

"잠깐 나갔다 올게." 

출근 준비 중인 남편 등 뒤에 말을 던지고 도망치듯 나온다. 아들이 학교를 가지 않고 집에 있으니 어김없이 숨이 막힌다. 분명 일희일비하지 않기로 했지만 덤벼드는 감정을 어쩌지 못한다. 오늘은 학교를 갈까, 안 갈까, 간다면 제시간에 갈까, 아닐까. 지긋지긋하다고 생각하면서 입을 꾹 다물고 엘리베이터를 탄다. 



눈이 오네. 그친 줄 알았는데. 우산 가져올걸. 

그냥 걷는다. 



눈발이 날린다. 수만 개의 작은 눈송이가 바람을 타고 포실포실 내려앉는다. 꼭 그쪽으로 가야 할 이유가 있다는 듯 모두가 약간 사선으로, 같은 방향으로 떨어진다. 서서 바라본다. 권정생의 <강아지똥>이라는 동화책이 떠오른다. 강아지똥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찌꺼기 같은 자신의 존재에 슬퍼하지만 결국은 스스로를 잘디 잘게 부숴서 땅에, 민들레에 스며든다. 그리고 어느 봄날, 민들레 싹은 어여쁜 민들레 꽃을 피워낸다. 



'저 눈송이들이 내게도 스며들었으면 좋겠다. 강아지똥처럼. 그렇게 스며들어 나를 변화시키고 너도 변화시키면 얼마나 좋을까...' 눈송이가 여기저기에 스며드는 모습에 시선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쓴다. 



탄천 물이 흐르는 것을 바라본다. 오늘도 어김없는 그 물소리를 듣는다. 묵묵히 자리를 지켜주는 풍경들로부터 위안을 받고 싶어서 추위를 꾹 참고 서 있는다.   



탄천 인근에서 공사가 한창이다. 포클레인이 땅을 다듬고 흙을 끌어다 덮고 있다. 가까이로 다가가 보니 일하시는 분들이 덜렁 목장갑만 끼고 있다. 영하 6도. 나는 지금 털장갑을 끼고 있어도 춥다. '목장갑은 낀 것 같지도 않을 텐데... 눈까지 오는데...'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눈이 와도 어김없이 일해 주시는 그분들이 계시기에 탄천이 또 편리해지고 좋아지겠구나 싶다. 내 마음 하나 달래겠다고 탄천을 어슬렁거리고 있는 내가 가만히 무안해진다.  



길만 건너면 우리 집이다. 오늘도 의식처럼 나무들을 바라보고 눈에 담아 둔다. 오늘은 특별히 한 나무에게 손을 얹고"고마워"라고 속삭여본다. 나무를 보면 엄마가 생각난다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은 이후로 나에게도 나무는 엄마다.   




집에 와서 <강아지똥> 책을 찾았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봤던 책이라 버린 줄 알았는데. 

예전에는 땅에 스며든 강아지똥 이미지만 보였는데 지금 다시 보니 강아지똥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민들레잎 하나하나. 꼼꼼하게, 다정하게. 거센 비가 쏟아지고 있는데도.  


재택근무 중이다. 서둘러 일을 시작해야 한다. 아이가 일어나면 뜨끈한 김치찌개를 끓여 먹어야겠다. 늦더라도 학교에 출석도장은 찍어줬으면 하는 여전한 바람이 슬며시 올라온다. 사실 의미도 상관도 없을 수 있는데. 아직 거기까지는 내 마음이 어렵다. '여기까지만.' 생각을 멈춘다. 



아들 생각이 정리가 되지 않으면 하루의 시작이 어렵다. 그래서 자꾸 아들을 글의 소재로 삼게 된다. 이래도 되는 공간일까? 지금은 그 생각도 하지 않으려 한다. 오늘은 강아지똥 생각만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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