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고에 왔습니다

공포의 교단

by 딴짓

안돼.

'강의 희망 지역'은 그냥 사전 조사인 줄 알았다. 실제로 진행될 거라고는, 당장 내가 누군가 앞에 서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10년 전 베이징 북페어. 해외영업본부장님은 나를 강연자로 세웠다. 평소에 여직원들 사이에서 입담이 좋다는 판단이었다. 나는 눈물로 호소했지만 먹히지 않았다. 나와 연결되지 않은 모르는 타인 앞에 서는 것이 가장 어려운 내향인! INFP! 내가 실시간으로 딱딱하게 굳어 가며 횡설수설하는 동안 관객석은 빠르게 비어갔고, 마지막엔 덜렁 세 명만 남아 있었다. 사직서는 썼다가 제출하지 못했다. 그 이후, 나는 다짐했다. 죽을 때까지 남들 앞에 서지 않겠다고.


그러나 모 고등학교에서는 끝내 대체 인력을 찾지 못했다. 나는 절규했다.


설상가상, 남학교였다. 고등학생 아들과의 갈등도 만만치 않은 터였다. 남학생이 우글거리는 곳이라면 생각만으로도 지긋지긋했다. 슬램덩크, 혹은 조폭 집단의 정글. 그런 상상에 나는 몸서리를 쳤다.


동료 강사들과 줌으로 수업에 대한 사전 교육을 받은 날, 메타버스 화면 속 내 캐릭터는 혼자 길을 잃고 헤맸다. 강의 나흘 전이었다.

“키보드 화살표를 왼쪽 오른쪽으로 왔다 갔다 해봐. 움직이는 게 쌤 캐릭터야. 오른쪽으로 쭉 가면 문이 있어. 거기서 기다려.”

갓지은. 그날부터 나는 동료 강사인 그녀를 그렇게 불렀다. 젖동냥을 하듯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온라인교육 프로그램을 익혀갔고, 그렇게 강의 날이 되었다. 메타버스 내에서 AI를 체험하는 4교시 수업이었다.




운동장에 들어서자 건물에서 학생들이 우르르 튀어나왔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교실 문을 열었다. 가슴팍에서 배까지 이어지는 정교한 문신. 가운 패션. 쩍벌로 의자에 걸쳐 앉은 무리들.

이건…… 뭐지?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도 한 가지만은 분명하게 느껴졌다. 망했구나.


"쌤, 저도 서울에서 왔어요!" (난 서울 아닌데.)

가슴팍에 문신을 한 녀석이 방긋 웃으며 말했다.

"쌤 연희동에 OO빵집 아세요? 저희 엄마가 그거 하셨거든요!" (나야 모르지...)

"아 그래?"

화기애애한 분위기. 그리고 역시나 시끌벅적한 그 옆의 녀석들.



그런데 걔네들이 4교시 내내 호응해 줬다. PPT를 다 읽어줬고, 쩌렁쩌렁 대답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날 오전 졸업식 촬영이 있어서 코스튬 차림이었던 것이다. 문신은 그들 중 누군가의 작품이었다.



그중에 민권이가 있었다. 맨 앞에 앉아서 수업 내내 눈을 맞춰주던 녀석. 나는 집에 와서 그 이름 하나를 붙들고 집요하게 검색했다. 알고 보니 체대 입시 종합점수 도 1위, 2년 연속. 수줍수줍한 방송부 소년은 내가 버벅거릴 때마다 조용히 도와줬고, 근처 맛집을 물었더니 자기 집 동호수를 알려주며 우리 엄마한테 맛있는 거 부탁하겠다는 학생도 있었다. 순진하게도 나는 큰 감동을 먹고 말았다.



4교시를 마치며 나는 말했다.

PPT만 봐서는 마치 AI를 모르면 미래를 준비할 수 없는 것처럼 단편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고. 곧 성인이 되면 필요에 의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라고. 다만 디지털 범죄만큼은 반드시 심각하게 받아들이라고. 내가 하지도 말고, 하는 친구를 외면하지도 말라고. 내 앞에서는 엄청 귀요미들이었지만, 혹시 모르니까.

남학생들에게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는 귀한 기회니까.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아들과의 갈등. 엄마로서 누적된 모욕감. 어쩌면 그게 지금의 나를 키웠을지도 모르겠다고. 내 아이에게는 적대적인 엄마지만, 나가서는 친절한 어른일 수 있겠다고.

그러면 되지 않나.



남의 새끼여서, 딱 하루여서 찬란했던 수업이었다.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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