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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딴짓 Jan 02. 2024

아직도 그 얘기라 죄송합니다

저는 정리가 안 됐어요


나는 그의 예민하고 앙탈을 부리는 듯한 연기를 좋아했다. 얄미우면서도 한번 더 그 표정을 보고 싶어서 화면을 흘깃거렸다.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절대 모르는 자가 아니었다. 다방면에서 활발히 활동해 온 배우였고, 지난 세월 드라마, 영화, 예능 프로그램에서의 그의 모습은 어느덧 나의 삶에 스며들어 있었다. 새해를 4일 앞둔 날, 이선균의 사망 소식은 충격적이었다.




그가 마약을 했다는 기사를 보고 나는 실망감과 함께 이후 업데이트되는 소식을 외면했다. 딱하다는 마음도 들었지만 더 이상 뉴스를 들여다보지 않았다. 그에게 집중되는 시선을 나라도 거두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솔직히 피곤했다. 그것이 엄연한 외면의 행동이었다는 것을 나는 그의 사망 직후 깨달았다.




뒤늦게 알았다. 경찰 쪽에서 수사 정보를 흘렸고, 이후 악마 같은 기사, 방송과 네티즌들의 무차별 공격이 있었다는 것을. 검증되지 않은 영상이 돌고, 유튜버들이 집에 난입하고, 그가 협박범들에게 시달리고 있었다는 것을. 취소된 광고와 영화 등으로 물어줘야 할 위약금은 100억이 넘었고, 비공개하다시피 진행하는 정치인들의 마약 수사에 비해  그는 검사 결과 음성으로 나온 상태에서도 포토존에 세워졌고 19시간 동안 심문을 받는 등 강도 높은 수사가 있었다는 것을.




어떤 식으로든 그가 유흥업소 주인의 집에서 무언가를 흡입했다는 행위는 부적절했음에 분명하다. 그러나 너무 가혹했다. ‘그래도 버티지… 나쁜 놈들은 잘도 버티는데… 가족이 있는데 조금만 버티지…’ 안타까운 마음에 여러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지만 감히 그 상황을 상상하기도 어렵다. 솔직히 나라도 죽었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떨쳐내기가 어렵다.






그의 사망 직후 우르르 쏟아졌던 후속기사는 주로 무너진 그의 아내의 표정을 클로즈업한 것이었다. 대통령실 의전비서관 자녀의 학교폭력 사건이 터진 날 하필 이선균 수사가 착수된 게 우연의 일치인지, 이 비극에서 무엇이 잘못이고 우리는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그때부터 나는 허우적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덜컥 겁이 났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 자살률 1위이다. 우울증 수치도 최고 수준일 것이다. 이번 일로 그의 가족뿐만 아니라 그와 동종 업계의 사람들, 그리고 주변에서 죽음을 보았거나 죽음을 묵상하고 있을 많은 이들, 청년들은 어찌하고 있을까 생각하니 젖은 이불처럼 몸이 축축 처졌다. 나 또한 어쩔 줄을 몰랐다. 일상적인 독서를 이어갈 수 없었다. 내 눈이 긴 글을 읽어내질 못했다. 나는 더듬더듬 기어가 시를 찾아 읽고 브런치에 짧은 글을 남겼다. 글에 하트가 달렸지만 그뿐이었다. 뭔가 같은 마음을 나누고 연대하고 있다고 느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내가 겪고 있는 감정에 대해서라도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 몰랐다. 다들 일상을 이어갈 수밖에 없지만 가슴속에는 무거운 돌덩이가 있을 거야, 내게 보이지 않을 뿐이야,라고 생각해보려고 했지만 그래도 이상했다. 너무 조용했다. 그 많은 글쟁이들은 다 어디 간 거지? 논객은 다 죽었나? 자기 계발에 대해서는 탈진할 지경까지 매달리면서 왜 이럴 때는 한없이 조용해지는 거지? 나는 화가 나고 무기력해지다 또 화가 났다. 사실 나는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그동안 크고 작은 참사의 상처가 해결되지 못하고 벌어진 채 방치된 것을 참 많이도 보았다. ‘다음번에는’이라는 말은 너무 거지 같지만 다음번에는 반드시 ‘마녀사냥 STOP’이라고, ‘강압수사 NO’라고 말할 거라고 나는 다짐했다. 피로한 사회라고 뉴스를 외면하지 않고 꼭꼭 살펴보겠다고 다짐했다. 팔로우도 별로 없는 SNS를 하고 있지만 내 목소리를 내겠다고 다짐했다. 다짐했으나 허탈했다.   






말하는 김에 조금 더 덧붙여 본다.


정강명 작가는 그의 책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에서 북한 인권의 실상에 대해서 언급했다. 2023년 현재 북한에는 서울 크기 만한 정치범 수용소에 10만 명 가까이가 수감되어 있으며, 매일 공개처형, 고문, 성폭행이 일어나고, 한 해에 5000명 정도가 그 안에서 사망한다고 한다. 이 세계 최악의 인권유린에 대해 해외 언론은 지속적으로 비중 있게 다루고 있고, 한국인의 피가 단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미국 작가가 북한 인권 문제를 다룬 소설로 2013년에 퓰리쳐상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해 한국 문학계는 전 세계에서 가장 조용하고, 정 작가는 비판적인 어조로 덧붙였다.  


내게 북한 주민은 남이다. 그러나 바로 옆에 있는 남이다. 그들은 나의 이웃이다. 나는 민족이라는 개념을 탐탁지 않게 여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에 대한 도덕적 의무감을 느낀다. 내 옆집에 사는 남자가 아내를 폭행하고 자식을 굶길 때, 내게는 도덕적 의무가 생긴다.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의 의무'다. 옆집가족이 내 친척인지 아닌지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아우슈비츠가 들어설 때 유럽인들에게는 모두 그런 도덕적 의무가 있었다. 그런 자연스럽고도 당연한 명령을 받기 위해 굳이 자신들이 유대 민족이라거나 게르만족이라고 가정할 필요는 없었다. 그저 인간이기만 하면 됐다. 나는 나를 비롯한 젊은 한국 작가들에게 새로운 도덕적 의무가 생겨나고 있다고 느낀다. 거대한 억압과 불의 바로 옆에서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그런 의무가 생긴다.  

책 ≪소설이라는 이상한 직업≫ 



어쨌든 나는 이 이야기를 내밀고 싶었나 보다. 결국 나를 위로하고 일으켜 세우는 것은 글쓰기이므로.






덧붙임.


나는 뒤늦게 이선균 관련 의미 있는 목소리를 낸 글들이 페이스북에 꽤 올라왔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래된 SNS 툴이고, 텍스트가 주로 인 공간이라서 더 그런 것 같다. 유달리 촉이 좋은 한 친구가 나의 허우적거림을 감지했는지 페이스북에 올라온 글을 보내줬고 그것은 내게 위로가 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위로받고 내 마음만 추스른 채 잊고 덮고 넘어가는 행위는 그만하자고 여기에 글로 박아 놓고 간다. 사실 너무 많은 정보로 구토가 날 지경이라 어디까지 들여다보고 인지하고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인식만은 놓지 말자고, 무관심해지지 말자고 중얼거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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