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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딴짓 Jan 06. 2024

[단편소설] 졸업


어머니, 동규가 졸업해요.



오늘 아침, 아들의 졸업식에 가기 위해 탄천 길을 건너면서 현주는 여느 때와 같이 그 소나무를 바라봤다. 비록 내 엄마는 돌아가셨지만 밖을 나가면 엄마를 많이 만난다고, 늘 그 자리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켜주는 소나무도 그렇고,라는 친구의 말을 들은 후로 그녀에게도 소나무는 어머니가 되었다. 



졸업 못 할까 봐 걱정했어요. 

현주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아이고, 동규가 졸업이구먼.’

‘동규 엄마 애썼네!’

‘동규도 애썼고.’



다녀올게요. 

마음이 일렁이는 것을 꾹 삼키며 현주는 학교로 향했다. 등 뒤로 여러 소나무의 온기가 느껴졌다. 



올해 신축되었다는 강당에는 이미 3학년 아이들과 부모들로 인산인해였다. 왁자지껄함 속의 밝고 들뜬 분위기에 현주의 마음도 설렜다. 현주의 시선은 강당 중앙에 반별로 앉아있는 아이들에게로 향했다. 



예쁘게 잘 커줬구나. 


아는 아이 하나 없지만 뭉클한 마음이 올라왔고 그녀는 아이들에게 다정한 시선을 건넸다. 비슷비슷한 아이들 사이에서 현주는 한참 만에 동규를 찾아냈다. 눈을 살짝 가린 앞머리 기장에 뒷머리는 자연스럽게 봉긋 올리고 양쪽 귀 옆의 머리는 뜨지 않게 눌러주는 펌. 펌을 한 티가 전혀 나지 않는 것이 포인트라는 그것. 이름이 뭐라더라. 티도 안 나고 돈만 아깝다고 몇 번이나 아들에게 잔소리를 하곤 했었는데, 남자아이들이 죄다 그 머리인 것을 현주는 졸업식장에서야 알았다.



“여러분, 오늘은 여러분의 축제날입니다!” 

교장선생님의 말씀에 아이들이 환호했다. 밴드부와 댄스부가 축하공연을 위해 나올 때마다 아이들은 기립했고 선생님들 이름을 연호하며 사랑한다고 외쳤다. 지난 3년간의 추억이 담긴 자신들의 영상을 보며 뜨겁게 울고 웃었다. 체육 대회, 댄스 대회, 각종 페스티벌 등으로 꽉 찬 영상을 보며 현주는 감격했고 생각이 많아졌다. 

‘일반 학교도 이럴 수 있구나……’ 



올봄, 동규는 집 근처 학교로 전학을 왔다. 대안학교에서도 어려움이 있었던 아들이 일반학교에서 어떻게 버텨낼지 현주는 걱정이 앞섰다. 호환 마마보다 무서운 것이 일반 중학교가 아닐까, 싶어 두려웠다. 아니나 다를까 예상을 넘어서는 많은 문제로 학교 생활은 끊기듯 이어져왔다. 지각없는 날이 없었고 갑작스러운 결석도 잦았다. 아이를 살리는 것도, 찢어놓는 것도 친구라는 사실에 현주는 좌절했다. 8개월만, 졸업만 – 현주는 자신이 이런 생각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만일 중학교를 그만두게 되더라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간절히 졸업을 바랐다. 그런데 오늘의 훈훈한 졸업식 풍경을 보니 기분이 묘했다. 아이들이 스스럼이 없었다. 좋은 학교였구나, 여기. 전국 사립학교 평가 1위라는 그 대안학교. 내가 끝까지 놓치고 싶지 않았던 그 학교가 아니라 처음부터 이 학교를 보냈더라면, 그랬더라면 동규가 덜 외로웠을까. 웃었을까. 행복했을까. 



식순이 끝나고 아들에게 다가간 현주는 멈칫했다. 겨우 몇 달, 아들에게 이렇다 할 추억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들은 감정을 추스르지 못한 채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지금 아들은 어떤 마음일까…… 현주는 말없이 동규를 안아주었다. 몇 달 사이에 훌쩍 커버린 아이. 



졸업식이 끝나고 아이들이 우르르 연단으로 올라갔다. 아이들은 서로서로 사진을 찍느라고 분주했다. 함께 얼싸안고, 장난을 치고, 친구에게 울지 말라고 하면서 같이 우는 아이들. 동규도 친구들과 사진을 찍겠다고 사라진 후였다. 현주의 시선이 부지런히 동규의 모습을 좇았다. 그러나 아이는 누구 하나에게도 선뜻 다가서지 못했다. ‘친구들이 어려워.’ 언젠가 동규가 했던 말이 떠올라 가슴이 저려왔다. 한참을 그저 왔다 갔다 하던 동규가 자기보다 키가 한 뼘은 더 큰 녀석의 등을 살짝 만지는 모습이 보였다. 그 아이가 뒤돌아 보자마자 와락 동규를 안았다. 그 순간 동규는 환하게 웃었고 현주는 울었다. 



이후 두셋의 친구들과 사진을 찍는 아들의 모습에 현주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반 친구들과 단체 사진을 찍을 때 행여 아들이 빠질까 싶었지만 동규는 손으로 하트까지 만들며 친구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함께 우스꽝스러운 몸짓을 하고, 다 같이 이상한 소리를 내고, 당장 내일 또 만날 거면서 꼭 연락하라고 서로 몇 번이나 다짐을 받아내는 이제 고등학생이 될 남자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현주는 왜 동규가 그토록 친구라는 존재에 목말라했는지 알 것도 같았다.  



“아들, 그동안 수고 많았어. 앞으로도 항상 꽃 길만 응원할게. 엄마가 함께 할게.” 

평소 책에만 파묻혀 사는 무뚝뚝한 엄마지만 현주는 오늘만큼은 아들의 찬란한 미래를 여러 번 응원했다. 집에 오는 길, 은근슬쩍 아들의 팔짱도 끼어 보았다. 앞날은 알 수 없겠지만 한 매듭은 지었구나,라고 생각하며.



‘이뻐!’ 

소나무 엄마들이 찡끗거리고 있었다. 현주도 눈을 찡끗했다.   

  

소설 쓰기라는 걸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화자를 3인칭으로 바꾸는 것만으로도 해방감이 느껴져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가끔 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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