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딴짓 Jan 12. 2024

포토에세이 - 그 사람이 있어서

사진첩에 담긴 지난 한 달간의 사진 중 하나에 대해 쓰시오 


오늘은 그냥 가볍게 글을 끄적이고 싶다. 겨우 10일째 쓰면서 벌써 지친 거냐고 물으신다면 네 그렇네요,라고 멋쩍게 웃겠다. (글쓰기 커뮤니티에서 매일 글쓰기를 하고 있습니다.)




분명 여행책인데 리베카 솔릿이 쓰니 문장 하나하나를 슥슥 넘기기가 어렵다. 집요한 관찰과 분석이 담겨있는 그녀의 초기 작품. 배수아는 또 어떤가. ≪작별들 순간들≫에서 그녀가 나열해 놓은 표현들은 너무 영롱해서 목에 턱턱 걸린다. 오늘 아침, 두 여전사의 책을 양손에 쥐고 그들의 진주 같은 문장들을 힘겹게 주어 담다가 불현듯, 버거워진다. 어느 순간, 진주가 수박으로 바뀐다. 광활한 수박밭에 끝없는 수박 수박 수박들. 언제 다 수확해… 그러다가 다시 보니 수박이 대포의 탄알로 바뀌어 있다. 으악. 튀어!!!



그렇게 거장들의 책을 휙 집어던지고 이 책을 펼쳤다. ≪참 괜찮은 태도≫. 2019년부터 ‘유 키즈 온더 블럭’의 다큐멘터리 디렉터로 일하고 계신 박지현 님이 쓰셨다. 앞서 그녀는 ‘다큐멘터리 3일’이라는 프로그램을 12년간 진행하면서 다양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관찰하며 세밀하게 기록해 왔다. 전문 작가가 아니므로 이 책에는 그 어떤 유려한 표현이나 대단한 통찰은 없다. 표지도, 내지도, 내용도 어디 하나 튀는 부분 없이 담담하다. 그녀가 현장에서 만난 이들의 말, 현장의 분위기, 그리고 그녀의 생각 몇 줄이 덧붙여져 있을 뿐이다. 세상사 희로애락을 기술한 책이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VJ의 렌즈는 조용히 따뜻하다. 소화가 잘 되는 고운 책. “이거지…” 나는 뭉클해지다가 조금 울다가 그렇게 가만히 책을 품에 안았다. 





할머니는 산동네 판자촌 집에서 8남매를 키우고 출가시켰다. 이제는 시력을 잃고 아무도 찾아오는 그 집에서 홀로 사시는 분. 저자 박지현은 ‘다큐멘터리 3일’의 마지막 날 촬영을 끝내고 할머니께 작별인사를 했다. 할머니는 기어이 배웅을 하러 나왔다. 한 걸음 한 걸음 벽을 짚으며. 




내 여기, 벽에 창틀 있는 여기까지밖에 못 가. 더 나가면 내가 돌아올 수가 없어. 그럼 잘 가고, 가서 재미나게 하는 일 잘하고 잘살아. 그래도 내가 여기서 보고 있을게. 내가 앞은 안 보여도 그래도 니 골목 끝으로 나갈 때까지 보고 있을게.”



외로운 어느 날 혼자 길을 걸을 때면 오래도록 나를 지켜보고 있었던 할머니가 더욱 그리워진다. 분명 3일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는 그것이 우정이 아니었다고 말하지 못하겠다. – 책 내용 중



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글쓰기를 하고 있다. 오늘의 글쓰기 주제는 ‘포토에세이’이다. 






낮 최고 기온 영하 6도,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운 어느 날, 우리는 예정했던 에버랜드 방문을 감행했다. 사회 친구. 그것도 쉽사리 껄끄러워질 수 있는 10대 자녀의 학부모로 만난 사이. 게다가 셋 다 서로 다른 학년. 알게 된 지 3년, 여전히 서로의 나이도 정확히 모르는 이 조합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분명 시작은 미비했는데 그렇게 우리는 은은하게 함께 하고 있다. 우리는 24시간이 모자랄 만큼 일에 붙들려 있는 직장인이다. 아픈 부모를 돌봐야 하는 자이며, 학교폭력이 있을 시 당장 학교를 그만 둘 각오를 했던 긴장이 있는 자이며, 그 학교에서 중3 때 튕겨 나온 아이의 엄마이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에게 주렁주렁 매달려있는 역할을 다 떼어 버리고 우리끼리 에버랜드를 접수해 보자고 나선 자들이다. 




‘당신이 옳다 그것이 뭔들.’ 

우리가 서로에게 지속적으로 날리는 메시지를 요약하면 이 문장이 될 것이다. 그들이 건네는 다정함 앞에 나는 나의 꿈을 수줍게 고백한다. 그러면 그 꿈은 격려받고 특별해진다. 그들이 건네는 다정함 앞에 나는 나의 과오를 고해성사한다. 그러면 그것은 조금, 때로는 꽤 가벼워진다. 대단한 것이 아니다. 사람이다.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 그냥 내 옆에 있어주는 존재이다. 





“제가 오랫동안 이 일을 하면서 알게 된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정하다는 겁니다.” 

저자 박지현의 확신에 찬 표현을 전달해 본다. 다정함의 힘이 오늘 당신께도 전달되길 바라며.  

작가의 이전글 [단편소설] 졸업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