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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딴짓 Nov 25. 2023

아이슬란드 대통령 영부인을 흠모하다

엘리자를 위하여 


“엘리자가 내 댓글에 댓글을 달았어!!!”

“엘리자가 누군데?”

내가 흥분해서 소리를 꽥 지르자 남편이 물었다.




엘리자, 올해 만난 내 인생 책의 저자.

여성 평등을 위해 오늘도 여성들과 연대하며 나아가고 있는 사람.

다섯 아이의 엄마인 47세 여성.

캐나다 깡시골에서 살다 대학시절 아이슬란드 남자와 사랑에 빠져 이민 온 여자.

루이비통과 베르사체를 구분하지 못하며 국가 간 행사 때에도 아이슬란드의 ‘아름다운 가게’에서 산 옷을 입는 사람. 

그리고 현 아이슬란드 대통령 영부인.




아이슬란드 여행이 확정되고 관련 책을 몇 권쯤 읽었을 때 그녀의 책 <스프라카르>을 만났고 그것은 나에게 엄청난 발견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내 눈은 놀람과 기쁨으로 점점 커졌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가 아니라 실패 자체를 찬양하는 나라’ 아이슬란드. 인구 당 책 구매율 전 세계 1위, 전 국민의 상당수가 아마추어 작가 혹은 음악가, 내가 사는 도시의 3분도 1도 안 되는 총인구 30만 중 3만 명이 책을 내 본 적이 있고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있는 나라. 그런 아이슬란드가 20년 동안 잘 잡히지 않았던 내 맥박을 뛰게 했고 나는 무작정 아이슬란드행 항공권을 질렀다. 나는 아이슬란드를 직접 보고 느끼고 싶었다. ‘훌륭한 보통 여자들의 연대’라는 나의 막연하고 오래된 꿈에 아이슬란드가 그 시작이 되면 좋겠다,라는 역시나 막연한 꿈을 꾸면서.



2016년, 정치 경험이 전무한 구드니는 사회분석가로 TV에 첫 출연한다. 정치에 대한 탁월한 분석과 공정한 프로그램 진행으로 사람들의 눈에 띈 그는 그 해 대통령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하게 되고, 당선된다. 그리고 지금까지 8년째 대통령직을 이어가고 있다. 다섯 아이의 엄마인 엘리자는 그렇게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대통령이 되고 자신은 영부인이 된다. 이게 무슨 일이냐며, 그녀의 고향인 캐나다에서는 오타와의 농장 출신인 그녀를 급하게 취재했다. 그렇게 혼미스러운 몇 달을 보내고 그녀는 생각한다. ‘그런데 내 남편이 대통령이 됐다고 내가 왜 직장을 바꿔야 하지?’ ‘왜 사람들은 나의 신데렐라 스토리에만 관심이 있지?’ ‘가만, 내가 가진 상황을 좀 더 여성 사회에 좋은 방향으로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




그녀는 상황이 이렇게 되기 수년 전부터 이미 아이슬란드 여성 북클럽 등 몇 가지 여성 연대를 해오고 있었다. 처음부터 페미니즘을 울부짖은 것이 아니다. 아이 딸린 이혼남 대학생과 사랑에 빠져 언어가 통하지 않는 아이슬란드로 무작정 날아왔을 때처럼 그녀는 재미있고, 따듯하며, 강인한 영혼에 이끌려 왔고 그렇게 스프라카르, 즉 아이슬란드의 ‘비범한 여성’들에 조금씩 빠지기 시작한다. 이 책은 그녀가 만난 스프라카르들의 이야기이며 ‘대통령의 영부인’은 그녀가 현명하게 이용한, 하지만 프로필의 마지막에 앙증맞게 기재한 칭호이다.




아이슬란드 여성들로부터 일종의 배움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책을 통해 알게 된 그녀들의 모습은 지금 여기의 나와 너무 다른 혁명 수준이라 같은 지구의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았다. 아이슬란드도 1970년대 중반까지는 불평등이 심했다. 이에 여성들은 1975년에 직장과 가사에서 동시에 손을 놓는 ‘여성휴업’을 선포했다. 1980년에는 유럽 최초 여성 대통령이 탄생하여 16년 동안 대통령직을 수행했다. 2016년 대통령 선거에서 구드니에게 아쉽게 진 토라는 선거운동 중간에 2주간 휴가를 다녀온다. 셋째 아이를 출산하기 위함이었다. 아이슬란드에서는 약 30%의 여성만 결혼 후 아이를 낳는다. 당시 토라도 당시 구 남자 친구의 아이를 출산했다. 아이슬란드에서는 남녀 불평등을 막기 위한 법제화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기업 이사진의 40%를 여성에게 할당하는 법이 적용되고 있다.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88%로 OECD 1위이다.




아이슬란드에 대해서 내가 알게 되고 알아 가고 있는 사실이 너무 많아서 숨이 가쁘다. 나는 이번 달 인스타그램을 시작했고 엘리자를 찾아내어 그녀가 올린 글에 하트를 달고 댓글을 썼다.




"여기 코리아에서 코리언 아줌마 한 명도 당신의 책을 읽고 있어요!"




남편은 정치인이든 정치인 와이프든 누구나 이미지 관리를 위해 인스타를 한다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나는 인스타 햇병아리 아닌가. 그녀가 달아준 "책을 읽어줘서 고마워요"라는 짤막한 댓글 하나로 초 흥분 상태인 나를 내버려 두길.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생각해 본다. 그녀는 대통령 부인으로서만 전면에 서 있는 것이 아니다. 그녀는 성평등의 완벽한 실현을 위해 지금껏 그래왔듯 여성들에게 러브레터를 보내고 있으며 동시에 자신에게 쏟아지는 관심을 현명하게 이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내 자리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 어느 때보다 '지구촌'이라는 오래된 단어를 실감하고 있는 지금, 나는 한국인으로, 엄마로, 여성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막연히 외국인 아줌마 친구를 사귀고 싶은 은밀한 욕심에서 벗어나 일단은 내가 책을 통해, 그녀를 통해 배운 것을 당장 내 삶에 적용해 봐야 하지 않나? 그리고 내가 내일 만나 수다를 떨게 될 내 이웃집 친구한테부터 이 이야기를 전달해봐야 하지 않나? 그렇게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오늘 아침도 혼자 지지고 볶고 머릿속이 바쁘다. 이제 모닝커피 한잔 음미하러 가야겠다.



몇 개월 전 글쓰기 커뮤니티에서 작성한 글입니다. 

썼던 글들을 종종 포스팅해보려 합니다. 

참, 아이슬란드는 현재 화산폭발의 위험에 긴장 상태예요. 

아직은... 괜찮습니다. 

아이슬란드여, 부디 안전하게 잘 버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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