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학생이고 그분은 선생님인데?
카타르 아시안컵 경기가 한창 재미있게 돌아가던 지난달, 아들이 낯선 이름을 들이밀었다.
"과학 선생님인데 엄마 몰라?"
학부모 활동을 하던 나도 전혀 모르는 이름이었다. 전학 나오기 전의 중학교 선생님이라나.
"사우디랑 하는 16강 때 선생님 집에서 경기 보기로 했어."
"경기가 몇 신데?"
"1시."
"밤?!"
"응."
"선생님이랑 어떻게 연락됐는데?"
"밤에 축구 보다가 어쩌다 톡 하게 됐어. 가서 자고 올 거야."
"누구누구 가는데?"
"나 혼자."
"혼자?"
"나 원래 선생님이랑 친해."
"......"
당황과 의심.
아들이 뛰쳐나오듯 전학 나온 학교. 거기에 친한 선생님이 있었어?
원래도 온다 간다 말이 짧은 예비 고등학생은 그렇게 부모의 허락이 아닌 '나 가요'를 남기고 밤에 떠났다. 선생님의 전화번호를 받아두었지만 전화해서 확인은 절대 하지 말라는 아들의 엄포에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렸다. 패밀리 링크로 연결된 폰을 통해 아들의 위치를 파악한 후에도 내 머릿속에는 다양한 상황의 소설이 써지고 있었다. 흉흉한 세상 아니던가. 그가 선생이 맞기는 한 건지. 그란 존재가 실제 존재하기는 한 건지.
사우디전은 연장전에 승부차기까지 끝내주게 재미있는 경기였고, 아들은 다음 날 저녁에야 귀가했다. 엄마의 감으로 봐서는 뭔가 별다른 일이 있었던 게 아닌 것 같기는 하지만...
3일 후 호주 전.
"나 오늘 선생님네 가기로 했어."
"또???!!!"
한밤에 전화를 걸어온 아들은 선생님께 얻어만 먹어서 죄송하니 치킨을 시켜달라고 했다. 그 참에 아들 옆에 계신 분과 통화를 하고 나서야 나는 편안하게 숨을 내쉬었다. 그간 머릿속으로 조용히 써 오던 스릴러 소설도 중지되었다. 그래, 우리 아들이 그렇게 까지는 아니지...
"엄마, 나 하루 더 자고 갈게."
"!!!!!!"
그렇게 아들은 2박 3일 후 초췌한 모습으로 귀가했다. 선생님이 코를 너무 심하게 골아서 한숨도 못 잤다면서. 아니 그러니까 네 집, 네 방 놔두고 왜?
"우리 집보다 편해."
"선생님이랑 볼링치고 넷플릭스 봤어."
아들이 하루 더 자고 오겠다고 한 밤, 나는 이건 아니다 싶어 선생님께 신세 지게 되어 죄송하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아들이 전학 후 고군분투 중인 상황도 간략하게 덧붙여서. 선생님의 길고 따뜻한 답장이 이어졌다. 아주 어린 제자지만 - 나중에 아들에게 물어보니 아들과는 장장 열일곱 살이나 차이가 났다 - 밤에 자려고 누웠을 때 들려주는 아이의 진솔한 이야기가 고맙고, 같이 대화를 할 수 있어서 너무 좋으시다며, 언제라도 환영이라고 하셨다. 나는 그 메시지를 한참을 들여다보고 어루만지고, 행여 나중에 아들이 보게 될까 삭제했다.
이번 주 내내 아들은 김범수의 '보고 싶다(2002)'와 성시경의 '희재(2003)'를 흥얼댔다. 선생님의 노래 실력이 우리나라에서도 탑이라면서.
"엄마, 선생님 지금 집 앞에 오셨대!"
구정 연휴 마지막 날인 오늘, 아들은 엊그제 주문해 받은 침낭을 둘러메고 콧노래를 부르며 집을 나섰다. 선생님의 코골이가 심해 옆방에서 따로 자기로 했다며. 안 가져간다는 부침개와 식혜를 간신히 들려 보냈다.
부모와도, 또래와도 딱히 마음을 주고받지 못하는 아들이 도망갈 곳이 있어서, 숨어들 곳이 있어서, 그때 함께 있어 줄 사람이 다름 아닌 선생님이어서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사실 그렇게 친밀한 사이는 아닐 텐데 어쩌다 연락이 된 내 아이를 흔쾌히 품어주신 그 마음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아이가 자신의 온 마음을 다 주는 이런 일이 왜 전학을 나오고 나서야 있는 건지, 아쉬운 마음이 살짝 올라오기도 한다. 지금이라도 너무 다행이지만.
황금 같은 겨울 방학이 선생님께도 겨우 보름 남은 상황. 아들이 부디 상식적으로 귀가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