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긴 한데
"얼마나 겁이 많은 지 몰라요!"
"겁이 많아서 방에도 못 들어온다니까요?"
"낯선 사람 보면 발발 떨어요."
"택배 박스 큰 것만 봐도 다리를 떤다니까요, 하하하..."
내 말을 들은 상대방 견주의 얼굴에 의외라는 듯, 그러면서도 안도하는 듯한 표정이 스쳤다.
뒤돌아서는데 씁쓸한 기분이 내 얼굴을 강타했다. 나는 왜 그렇게까지 내 아이를 깎아내렸을까. 그냥 "내성적이에요" 한 마디만 하면 될 것을 왜 그렇게 허겁지겁 문장을 보탰을까. 우리 애를 슬쩍 내려보았다. '미안!'
그런데 이건 무척 익숙한 기분이다. 그러니까 내가 남들 앞에서 내 아들들을 겸손하게 언급한다고 하면서 깎아내린 후에 스멀스멀 올라오곤 했던 그 감정들.
"외롭다고 강아지를 입양하면 절대 안 됩니다. 심심해하는 자녀에게 붙여 줄 목적이라면 안 됩니다. 가족이 되어 끝까지 함께 할 수 있을지 생각하십시오." 반려견 행동전문가 강형욱이 말했다. 그렇다면 나의 의도는 불순하다.
큰 아들은 동물을 무척 좋아했다. 고양이, 거북이, 물고기, 새 등등을 키우고 싶다고 끈질기게 졸랐다. 그러나 나는 내 한 몸, 내 애들, 내 집안 돌보기도 빠듯한 직장맘이었다. 생물에 대한 사랑도, 식물 하나 가꾸는 재주도 없는 자였다. 나에게 더 이상의 '돌봄'을 요구하지 마 - 나는 선을 그었다.
십 대에 들어선 아들과의 갈등이 커지자 주변에서는 사춘기 아이에게 반려동물이 큰 도움이 된다며 반려견 키우기를 권해왔다. 손사래를 쳤다. 그러나 어느 순간 나는 인스타그램에서 유기동물센터를 팔로잉하고, 유기견에 대한 책을 읽고 있었다. 그렇게 내 마음은 여전히 부담스러워하면서도 동시에 뭔가를 조금씩 준비하고 있었다.
사실 작고 귀엽고 사랑스럽고 그러면서도 훈련이 된 암컷 새끼를 원했다. 아니면 나와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아줌마(?) 개도 좋을 것 같았다. 그러나 한 해에 8만 마리의 개들이 안락사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서는 더 이상 따질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당장 입양 할 자신은 없었다. '아산동물연대'를 통해 임보, 즉 임시 보호를 하게 된 아이는 2살, 사람 나이로 24살인 청년 진도믹스였다.
집안에 남자만 셋인데 강아지마저 수컷이구나. 에휴 내 팔자. 피식, 싱거운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렇게 강아지, 아니 개를 데리러 전 임보자와 약속한 장소로 나섰다. 그러니까 그 녀석은 임시 보호 거처를 떠돌고 있던 것이다. 참 딱한 개팔자구나. 그렇게 청소년 아들을 위한 불순한 의도에 유기견들에 대한 딱한 (그러나 간절하지는 않은 애매한) 마음을 지닌 채 그 녀석과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