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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딴짓 Feb 14. 2024

나는 니 엄마가 아니야 - 2편

아니긴 한데

"크, 크다....."

이름, 군밤. 나이 2세, 사람 나이로 스물넷 청년. 하수구에서 꼬물거리고 있던 세 형제는 동물 구조 센터를 통해 구조되었다. 이후 군밤이는 애견 카페에 머물다 젊은 여성과 6개월을 지냈다. 그분이 어학연수를 떠나며 새로운 임시 보호자가 필요했고, 그렇게 군밤이는 우리 집과 이어졌다. '아산 동물 연대'는 순둥 순둥한 군밤이가 개를 처음 키워보는 우리 집에 적절할 거라고 판단했다. 맞지 않는 개를 보냈다가 파양 되면 안 되니까. 사진으로만 보았던 군밤이를 실제 본 순간, 우리 부부는 흠칫했다. 생각보다 컸다. 믹스라 대형견처럼 크지는 않았지만 중형 사이즈도 우리에게는 낯설었다.  

 


어린 시절의 군밤

 




군밤이는 숨을 죽이고 거부도 못한 체 우리 차에 올랐다. 다리를 바들바들 떨었지만 찍 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 군밤이를 거실에서 재운 첫날, 나는 잠을 설쳤다. 전 임보자께서는 군밤이와 침실에서 함께 잤다고 했다. 낯선 곳에서 혼자 자는 첫날, 혹시 늑대처럼 포효하지는 않을까, 거실 소파를 물어뜯거나 벽에 마킹, 혹은 똥지랄을 해놓지 않을까...... 그러나 이 전 임보자님의 꼼꼼한 기록에 언급된 것처럼 다음 날 만난 군밤이는 천사같이 거실에 누워 있다가 내가 빼꼼 방문을 열고 나오자 꼬리를 흔들며 조심스레 다가왔다.    

전 임보자께서 작성하신 임보일기 중





반려견 훈련사 강형욱에 따르면 진돗개는 자신의 성향을 주인에게 맞춘다고 한다. 주인이 활달하면 덩달아 활달하고, 주인이 내향적이면 하루종일 집에서 조용히 있는다고 한다. 조용하고, 사람 좋아하며, 혈통 상 질병이 없는 진돗개는 개 키우기 난이도에서 '털 빠짐 외에는 난이도 자체가 없다'라는 것이 강형욱의 말이었다. 그럼에도 너무 자기 개를 편애하지 말고 장점 아닌 단점도 인정하라는 것이 강형욱의 말이었지만...... 우리 집에 하루 만에 적응한 군밤이는 완벽 그 자체였다. 내가 손을 뻗으면 다가와 친근하게 굴고, 내가 일하느라 하루종일 바쁘면 거실에 멀찌감치 떨어져 누워 있었다. 컹컹거림도 들러붙음도 없었다. 늦잠 자느라 아침 늦게까지 방문을 열고 있지 않으면 안방 문 앞에 누워 조용히 나를 기다렸다. 그뿐이었다.  측은하고 고마웠다.



"개 키우는 게 이럴 줄 몰랐어."

대단한 인류애도 생물 사랑도 없이, 반려동물 키우기에 대한 막연한 부담감만 갖고 있던 우리 부부의 고정관념을 완벽하게 깨부순 아이였다. 한 가지, 자기 주변을 깨끗하게 하는 진돗개의 습성 상 군밤이는 절대 실내 배변을 하지 않았다. "야외 배변이 어려우면 배변을 3일을 참기도 합니다." 강형욱의 말이었다. 급하다고 실내에 소변을 흘리는 실수를 절대 하지 않는 깔끔한 아이. 그렇게  하루 두 번, 군밤이와 나의 산책이 시작되었다.



"개에게 코는 사람의 눈과 같습니다. 냄새를 맡지 못하게 하는 것은 사람의 눈을 가린 것과 같습니다. 충분히 냄새를 맡게 해 주세요." 이 또한 강형욱의 말이었다. 실내에서는 있는 듯 없는 듯하던 군밤이는 밖에 나가자마자 호기심 많고 활기찬 청년의 모습을 되찾는다. 눈동자가 반짝이며 달리듯 빠른 걸음을 유지한다. 풀밭에 코를 깊숙이 박고 '흠흠' '크음 큼' 소리를 내고 있는 군밤이를 보면 나 또한 자유로워지는 듯하면서도 죄책감이 밀려든다. 이렇게 살아야 되는 앤데.  




"자기가 간 후로 얘가 여기서 20분째 꼼짝도 하지 않았어."

군밤이 임보 5일 차. 남편과 셋이 아파트 옆 하늘 공원에 산책을 갔다가 나는 엘리베이터 옆 계단으로 슬쩍 내려왔다. 동네 마트에 들러 일을 보고 남편에게 전화를 하니 내가 사라진 그 위치에서 군밤이가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뛰었다. 아니다 다를까, 군밤이와 남편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나를 발견한 군밤이는 나에게 겅중겅중 점프를 하고 내 주변을 미친 듯 뺑뺑 돌며 어쩔 줄을 몰라했다. 처음 보는 격한 반응이었다. "아이고 이 녀석아! 여기서 이러고 있으면 어떻게 해! 누가 보면 한 10년 같이 산 줄 알겠다!" 가슴이 뜨거워졌다.      



"나는 엄마가 된 것을 후회한다."

얼마 전 쓴 책에 나는 당당히, 그리고 굳이 저 문장을 못 박았다. 큰 아이 열일곱 살, 작은 아이 열두 살. 그러나 육아는 나에게 여전히 어려운 일이며 엄마로서의 나의 자존감은 자주 흔들리고 무너진다. 누군가를 돌보는 행위는 나에게 맞지 않는 것 같다는 단정과 확신.



"군밤아! 엄마 쪽으로 와야지! 아니, 이모! 아니 아줌마..."

'엄마'라는 단어가 주는 부담감에 오늘도 나는 괜스레 내 말을 정정한다. "스물넷 청년의 엄마라기에는 아직 좀 많이 젊지 않니?"라고 괜히 한 마디 덧붙였다가 그렇게 온전히 마음을 주고 있지 못한 내 속을 군밤이가 다 알고 있는 것 같아 미안하고 머쓱해진다. 개는 인간보다 후각이 40배 더 발달되어 있고, 히 인간이 걱정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 나오는 코르티솔 호르몬(스트레스 중화 호르몬)을 200만 배 더 잘 맡는다고 한다. 그래서 주인이 걱정을 하면 개도 덩달아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군밤아, 혹시 내 속을 읽고 있니? 너는 세상에서 제일 좋은 개야. 내가 물고 빠는 사랑을 하지 않는 것은 나의 성향이니까 너무 서운해하지 말기다......

 



완벽한 개와의 동거 18일 차. 그리고 군밤이의 임보 기간은 두 달이다.

'입양'이라는 단어는 아직 내게 많이 망설여진다. 그래서 나는 처음부터 두 달이라는 한정된 기간을 전제로 군밤이와의 동거를 시작했다. 그 기간 내에 입양자가 없으면 군밤이는 또 다른 임보자에게 보내질 것이다. 진돗개는 해외에서 입양이 꽤 된다고 한다. 군밤이 친구들도 얼마 전 캐나다로 입양되었다. 그러나 한해에 안락사되는 개가 8만 마리. 입양은 꿈같은 일일 수 있다.



이렇게 따뜻하고 똑똑하고 젠틀한 아이를 부디 사람들이 알아봐 주기를. 이 집 저 집을 전전하면서도 바로 사람에게 마음을 내어 주는 군밤이를 꼭, 꼭 알아봐 주기를. 고달픈 삶을 마무리하고 이제는 한 곳에서 마음 놓고 잘 살기를 - 군밤아! 엄마가, 이모가, 아줌마가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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