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딴짓 Feb 21. 2024

당신의 밤양갱은?

딱 한 개만 말해봐요

케이팝 콘텐츠를 활용한 어학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 직업의 좋은 점은 새로 나온 곡을 매일 들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듣고 싶은 것만 들을 수 있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어쨌든 좋은 점이에요.


 

비비(BIBI)의 신곡 '밤양갱(Bam Yang Gang)'의 인기몰이가 심상치 않습니다. 2월 21일 오늘 오후 5시 기준 국내 유튜브 인기 급상승 곡 1위네요! 뮤직비디오 전체 인기 순위에서도 6위고요.


사랑하는 연인과 헤어지면서 독백처럼 읊는 비비의 경쾌하고 슬픈 이야기에 가만가만히 귀를 기울이게 되네요.



떠나는 길에 니가 내게 말했지

너는 바라는 게 너무나 많아


나는 흐르려는 눈물을 참고

하려던 얘길 어렵게 누르고

'그래 미안해'라는 한 마디로

너랑 나눈 날들 마무리했었지





너는 바라는 게 너무나 많아


아냐 내가 늘 바란 건 하나야

한 개뿐이야 달디단 밤양갱





내 이야기일까요?! 나도 그랬어...라고 조금은 우물거리고, 조금은 흑흑거리게 되네요...


대략 이런 말로 들렸어요.



밤양갱뿐이었는데.

내가 바란 건 그거뿐이었는데.

너는 왜 듣질 못하니.

아니면 내가 제대로 말하지 못한 걸까.



그랬네.

우리가 함께한 수많은 시간 속에서도 정작 소중한 건, 기억나는 건 밤양갱.

그거라는 걸 이제야 나는 알았어.


'밤양갱' audio 공식 이미지




하루종일 이 곡만 들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무릎을 탁! 쳤어요.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동시에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뮤비로만 봤을 때는 비비의 미모와 연기력, 그리고 초반에 잠깐 출연한 장기하의 이미지가 강력해서 그 생각만 났는데 오디오로 재차 듣다 보니, 와... 이 단순한 가사를 이렇게 전달하네요? 길지 않으니 다 다루어 볼게요! 



떠나는 길에 니가 내게 말했지 

'너는 바라는 게 너무나 많아

잠깐이라도 널 안 바라보면 

머리에 불이 나버린다니까' 

나는 흐르려는 눈물을 참고 

하려던 얘길 어렵게 누르고 

'그래 미안해'라는 한 마디로 

너랑 나눈 날들 마무리했었지 


-> 여자는 흐르는 눈물도 참고, 하려던 얘기도 억누르고, 오히려 '미안해'라고 사과까지 하면서 아무 말 못 하고 이별을 (당)합니다. 처음에 들었을 때는 이 부분 가사가 너무 애절했어요. 그래서 굳이 슬프게 부르지 않고 꽤 담담한 톤으로 불렀는데도 역설적으로 더 슬프게 들렸습니다. 그런데 웬걸, 여러 번 들으니 그건 그저 여자의 '지나간' 팩트에 대한 독백이었어요. 그때 있었던 일은 기술되어 있지만 그걸 이야기하는 현시점에서는 감정이 없으니 정말 담백하게 부른 거죠. 심지어 경쾌한 북소리까지 곁들이면서요! 






달디달고 달디달고 달디단 밤양갱 밤양갱 

내가 먹고 싶었던 건 달디단 밤양갱 밤양갱이야 

떠나는 길에 니가 내게 말했지 

'너는 바라는 게 너무나 많아' 

아냐 내가 늘 바란 건 하나야 

한 개뿐이야 달디단 밤양갱 


-> 이 부분 뮤비 보면 이 여자(비비)를 도와주려 마법사 같기도 하고 마녀 같기도 한 다른 여자가 비비의 꿈속에서 속삭입니다. 영상에서는 비비가 1인 2역을 하는데요. 여자의 또 다른 자아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마법사는 여자에게 확인하듯 '너는 바라는 게 너무나 많아'라고 속삭여봅니다. 하지만 꿈속에서 조차도, 즉 무의식의 세계에서도 여자는 '아냐, 내가 늘 바란 건 하나야'라고 읊조리듯 그러나 분명하게 이야기해요. 확신이죠.  


달디달고 달디달고 달디단 밤양갱 밤양갱 

내가 먹고 싶었던 건 달디단 밤양갱 밤양갱이야 


상다리가 부러지고 

둘이서 먹다 하나가 쓰러져버려도 

나라는 사람을 몰랐던 넌 

-> 여자의 목소리에서 확신의 말을 들은 마법사는 그녀를 도와주기로 합니다. 아니, 둘이 같은 자아라고 본다면 스스로를 돕는다고 봐야겠지요(영상에서 보면 마법사가 자고 있는 그녀를 자신의 장소로 이동시킵니다).  

-> '둘이서 먹다 하나가 쓰러져버려도 나라는 이를 몰랐던' 사람이네요, 그 남자. 아아, 이제 확실히 깨달았어요.   




떠나가다가 돌아서서 말했지

'너는 바라는 게 너무나 많아' 

아냐 내가 늘 바란 건 하나야 

한 개뿐이야 달디단 밤양갱

-> 반복되는 가사지만 제가 제일 좋아하는 부분이에요. 여자의 목소리는 당당합니다. 미련도 상처도 없어요. 오히려 내가 바라는 게 뭔지를 깨닫게 되어 기쁘고 설레는 마음입니다. 자신에 대해 또렷이 알게 되었으니 얼마나 기쁠까요! (이 즈음에는 맨 첫 줄의 헤어짐에 대한 가사는 기억도 안 나네요.) 



책을 읽은 후 해석은 독자의 마음대로죠. 

이 노래를 오디오로 들어보세요. 오디오로 듣고 그다음 영상을 보세요. 







이 곡은 장기하가 작사, 작곡, 편곡 전체를 맡아 진행했는데, 허를 찌르는 그의 위트와 담백함. 역시 장기하, 다 싶습니다. 일전에 그가 쓴 책 <상관없는 거 아닌가>도 생각납니다. 책에서 그는 '공명'이라는 단어를 종종 사용했습니다. 우리가 각자의 소중한 밤양갱 하나를 간직하고, 그것을 타인에게 올바르게 표현할 줄 안다면, 그렇게 서로 다르면서도 우리는 공명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나의 '밤양갱'은 무엇일까.

나의 밤양갱은 '나의 독서에 대한 존중'입니다. 내가 바쁜 직장맘이어도, 설거지가 왕창 쌓여도, 당장 어떤 결과가 없는 독서라도, 아니 세상의 경제 논리로 봤을 때 영원히 무용하더라도 저는 저의 독서가 존중되기를 가만히 바라봅니다.



남편의 밤양갱은 무엇일까.

우리 아이들의 밤양갱은.



오늘 저녁에는 집 앞 편의점에서  양갱 하나 사들고 남편에게 말을 걸어볼까...



여러분의 밤양갱은 무엇인가요? 딱 한 가지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