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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딴짓 Mar 22. 2024

나왔는데 갈 데가 없다


3월 말이 다가오는데 뜬금없이 사나운 바람이 휘몰아치던 날. 화가 잔뜩 난 와중에도 바깥 날씨에 망설여지는 마음으로 겨울 목도리를 칭칭 감았다. “어디 가?” 거실 소파에 앉아 스마트폰이 한창이던 큰 아들이 물었지만 말없이 현관문을 열었다. 다급했던 걸음걸이와는 달리 막상 아파트 1층에 서자 걸음이 뚝 멈추었다. 갈 데가 없다.




고등학생인 아들이 피곤하다며 아무렇지 않게 결석한 날. 처음 있는 일도 아니건만, 밥만 차려주고 자취생처럼 대하라고, 그렇게 말끔하고 세련된 솔루션을 여러 번 들었지만 나는 또 휘청거렸다. 그러니까 아무렇지 않게 학교를 째는 아이에게 아무렇지 않게 식사를 차려 드려야 한다는 거지? 혹시 그 솔루션은 ‘학교와 학원을 다니는 일반적인 10대 아이’라는 전제는 아니었을까. 저 얘길 맨 처음 꺼낸 사람의 멱살을 잡고 묻고 싶다.




별다른 설명도 없이 집에 있는 아이에게 말없이 저녁밥까지는 차려주었다. 쿨한 척, 초연한 척, 무뎌진 척. 그러나 신경 쓰고 있던 내 마음은 엉뚱한 데서 터졌다.




어머니, 오늘 OO이 과학수업 안 오나요?


초 5인 작은 아이는 방에서 이불로 열심히 요새를 구축 중이었다. 신학기에 바뀐 학원 시간을 나도, 아이도 깜빡한 것이다.  


죄송해요! 지금 보낼게요!




수업시간 20분이 훌쩍 지난 시간. 아들은 지금 가도 수업이 반은 끝난다며 따로 보충수업을 가겠다고 했다. 다음 날 오후에 같은 수업이 있으니 합류하라는 선생님의 말씀을 전해주자 아이는 발끈했다.


“내일은 안돼. 애들이랑 놀기로 했단 말이야.”


몇 번 더 이야기해 봤지만 아이는 지금도 싫고 내일도 싫다고 고집을 부렸다.  




“큰 거나 작은 거나 지들 마음대로구나. 지겹다 지겨워…”


속으로 생각한 말이 입으로도 튀어나왔다. 옆에서 내 말을 들은 작은 아이는 엄마에게 화를 내야 할지, 죄송하다고 해야 할지, 위로를 해야 할지 방향을 정하지 못한 표정으로 나를 힐끔거렸다.  






카페를 가자. 그런데 어느 카페?


아파트 상가 쪽은 싫었다. 아는 이면 당연히, 그리고 모르는 이라도 사람이 싫었다. 카페가 있는 상가 1층 마트에 들러 아이들 먹거리를 사게 될까 봐도 싫었다. 내 마음은 쫌생이 었다. 심술보가 풍년이었다. 결국 상가 반대쪽이자 탄천 건너 스벅으로 향했다.




어깨를 움츠리고 터벅터벅 걸었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볼까. 타지로 이사 간 다정한 이웃은 이미 한차례 나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었다. 바쁜 저녁시간인데 다시 전화를 하기에는 미안한 노릇. 외동딸 하나라 상대적으로 단출한 초등학교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저녁 먹었니?”


“응, OO이 과외하고 있어서 조금 일찍 먹었어.”


“어머, 잘 됐다. 맞는 선생님 만났구나!”


선생님이 와 계셔서 그런지 친구의 목소리는 조심스러웠다.


“밖에 뭐 좀 사러 나왔다가 그냥 걸어봤어. 또 통화하자!”




전화를 끊고 나니 집에서 말없이 나온 것이 걸렸다. 큰 아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엄마 차 한잔 마시고 들어갈게. 동생에게도 말해줘.'






동네에 있는 스벅의 넓은 공간은 텅 비어있었다. 저녁 8시. 나처럼 홧김에 집을 나온 엄마는 없나 보다. 다들 식구들 저녁 먹이고 과일 깎아주고 있나. 뭐, 그러거나 말거나.    




이 시간에 카페인 들어간 음료는 마시면 안 될 테지만 따뜻한 음료는 죄다 카페인 음료. 뜨거운 밀크 티를 한 모금 넘기자 답답했던 마음이 한 모금 넘어갔다. 또 한 모금. “휴우.” 그제야 한숨이 나왔다.




뭔가라도 끄적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미처 종이를 챙겨 오지 못했다. 비치된 티슈에 글씨를 갈겨썼다. 한 장, 두 장, 세 장, 네 장… 마지막 다섯 장에 이르자 내 손은 ‘그렇다고 아이에게 그렇게 말할 필요는 없었다’라고 쓰고 있었다. 아이가 바뀐 학원 시간을 깜빡할 수도 있는 거였다. 수업 시간이 상당히 지났으니 오늘은 가기 애매하다는 말도 일리가 있었다. 다음 날 친구들과의 만남도 당연히 가고 싶어 할 터였다. 학원 선생님께 혹시 다른 날 보충이 가능한지 내가 여쭤볼 수도 있는 거였다.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면 그다음 순서는 나 스스로의 부족함에 대한 자괴감이었다. 이미 그러한 감정이 아까부터 대기하고 있었다. 스톱! 나는 거기에서 멈추었다. 인내심을 잃은 후에도 아이들과 함께 있었다면 큰 소리가 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자리를 피했다. 탈출했다. 나와서 숨을 쉬었다. 잘했다, 잘했어!






결국 앙구스티나 중위는 죽고 말았다. ≪타타르인의 사막≫에 이제 막 쏙 빠져들 찰나,


“죄송합니다만 10분 후 마감이라서요.”


스타벅스는 최소 10시까지는 하는 줄 알았는데 9시 마감이라니. 말도 안 돼. 다음에 밤 시간에 집을 나온다면 어디를 가야 할지 고민을 하며 길을 나섰다.




탄천을 가로지르는 육교 위에는 폭포수가 내리꽂는 듯한 강한 물줄기 소리와 함께 거센 바람이 불어 머리카락이 마구 휘날리며 얼굴을 때려 따가웠다.


“그래! 싸대기를 때려라, 때려!”


그렇게 화도, 불안도, 조바심도, 미안함 조차도 회오리 같은 바람에 깡그리 날려버리고 싶었다. 시원했다.







내가 속해있는 글방의 오늘의 글쓰기 주제는 ‘두려움’이다. 아이가 학교에 안 갈까 하는 두려움, 가는 게 또 무슨 의미일까 싶은 마음, 아이가 무기력하게 될까 하는 두려움, 아이의 친구 관계에 대한 두려움… 앞으로도 두려울 일은 계속 생길 것이다. 그러나 가장 큰 두려움은 이 모든 상황을 엄마인 내가 의연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면 어떻게 하나 싶은 두려움이다. 차라리 아이가 학교를 그만두었으면 하는 생각도 드는데 아이는 어정쩡하게 학교에 붙어 있다. 본인도 별도리가 없으니 그러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나는 내 마음을 잘 붙들고 있어야 한다.





두려움이 내 안에 가득 차 폭발하지 않도록 안전장치 몇 가지를 재점검해 본다. 구멍을 숭숭 뚫어 두어 격한 감정이 흘러넘치지 않도록 하겠다. 내 주변의 여인네들은 나의 탈선을 막는 사회적 안전망이다. 무엇보다도 엄마로서의 자질에 대해 스스로에게 가하는 고문과도 같은 심문을 멈추겠다. 오늘 나는 잘했다.





두려움아, 나는 네가 정말 정말 싫어. 하지만... 네가 별 수 있냐? 오래 걸려도 결국 네가 이긴 적은 단 한 번도 없어. 이게 팩트야. 알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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