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날
안타깝게도 나는 재택근무 중이다. 네 걸음 거리 방에서 녀석이 자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안타깝게도 아들의 결석은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나는 매번 저격당하고, 휘청거리고, 쓰러진다.
오늘처럼 날이 어둡거나 비가 오는 날에는 아침부터 기분이 싸하다. 학교 째기 딱 좋은 날씨. 게다가 미세먼지 수치가 400을 넘어 하늘이 뿌옇다. 그리고 제길. 역시나.
오늘 아침, 아들의 방에서 스마트폰이 울렸다. 점심에 또 한 번. 두런두런 대화 소리. 아들의 친구다. 다정한 녀석. 학교에 좀 오라고 했겠지. 나는 마음속으로 그 아이에게 다섯 번쯤 고맙다고 얘기했다.
학교를 그만두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받아들인다. 그러나 아침이 밝아 오고, 다들 각자의 자리로 흩어지고, 점심이 되고, 오후가 되고, 아이들이 학원을 가는 그 시간에 신생아처럼 자고 있는 아들을 생각하면 또다시 바닥 깊은 곳에서부터 신음 같은 한숨이 새어 나온다.
어차피 학교에 가도 종일 앉아있는 게 고역일 터. 그래도 꾸역꾸역, 목이 막혀도 꾸역꾸역, 아들은 학교라는 존재를 억지로 삼키고 있을 것이다. 그러다 얹히면, 소화 불량에 걸려버리면 하루쯤 쉬어주며,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내며 또 다른 시간을 벌 것이다. 또다시 꾸역꾸역 삼키기 위해서. 나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차라리 학교를 멋지게 때려치우고 자신이 좋아하는 걸 한다거나 새로운 걸 배워보면 좋을 것이다. 삶이란 게 그렇게 단순 명료하면 좋으련만.
수많은 일들이 있었던 3월인데 아직도 3월이다. 올해가 겅중겅중 뛰어서 순식간에 지나갔으면 좋겠는데, 앞으로 3년쯤은 휙휙 지나갔으면 좋겠는데, 아직도 3월이다.
공항버스를 타고 친정아버지를 만나러 간다. 얘기를 안 하려고 주의했지만 아버지는 어쩌다 손주의 상황에 대해 알게 되었다. 광복, 6.25, 이후 군사탄압과 IMF로 죽을 고비까지 넘기며 치열하게 살아온 80대 노인은 손주를 절대 이해할 수 없다. 아버지는 날 보자마자 손주의 안부부터 물을 것이고 나는 ‘그럭저럭’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럭저럭. 그럭저럭. 외워 둬야지. 누가 물으면 툭 얘기할 수 있게 입에 담아놨다가 딱 그 말만 뱉어야지.
아들이 학교를 안 간 날, 나는 강아지를 산책시키고, 커피를 마시고, 회사 일을 처리하고, 메일을 보내고, 설거지를 하고, 아들 방문을 살짝 열어 엄마 나간다, 지금 몇 시다,라고 한번 아는 척을 하고, 공항버스를 탔다. 아들이 학교를 안 가도 일상은 그대로 진행한다. 그럴 수밖에 없고 그래야만 한다.
다행히 내일은 토요일이다.
1. 아들에 대해 연재 글을 써보겠다고 겁 없이 선포했지만 하필 연재 날 아들이 학교를 째자, 흠. 흠. 흠.
2. 이 글이 나와 비슷한 고민의 지점에 있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가감 없이 허심탄회하게 기록해 나가겠다고 생각했다. 그 시간을 기록하는 것만으로도,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을 거야, 싶은 마음으로. 그래... 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