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고에서 만난 내 취향의 냉면이 소중하다
새벽닭 우는 소리가 정겹다.
낯선 곳에서의 생활이 익숙해져가고 있는 중이다.
사실은 아니다.
꽤나 늦은 시간 잠자리에 드는데도 새벽 4시면 눈이 번쩍 뜨인다.
건강해지는 건지, 덕분에 사색하고 글을 쓰는 나만의 시간이 확보되었다.
차분해지는 시간.
해뜨기 전, 가장 어두운 밤을 지나 오묘하고 부끄러운 분홍빛 하늘이 다가오면.
어느새 해는 금방 밝아져 아침이 온다.
창밖으로 보이는 시간의 흐름이 명확한 순간이다.
귀한 시간.
잠은 줄었지만 나에게는 풍요로운 시간이 늘었다.
아침잠이 없는 것이 때로는 기약 없는 기다림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바로 혼자가 아닐 때.
이것저것 다 하다 보면 분명 부산스레 움직일 테고, 아침의 달디 단 잠에 든 사람들을 깨우고 싶지 않아 활동에 제약이 생긴다.
자유로우면서도 자유롭지 못한 시간이다.
그렇게 하나 둘, 방문을 열고 아침 인사를 나눌 때가 기다려진다.
바로 오늘이 그러한 하루였다.
타지생활은 생경하다.
낯선 이들과의 생활에 하루가 더해졌다.
오늘도 빨래하는 날.
세탁물들이 햇볕을 흠뻑 머금을 수 있는 옥상이 있어서 참 좋은 날이다.
그렇게 부산스레 오전시간을 보내고 나니 금세 배가 고파졌다.
주변 식당을 찾아보고, 담당자분께 맛이 괜찮은 집인지 확인하고 오늘의 메뉴를 정한다.
처음에 정한 식당은 바로 토성식당.
바지락 칼국수와 들깨 칼국수를 파는 로컬 맛집이라고 했다.
마침 숙소 근처이기도 했고, 걸어가기 좋은 거리라 한번 도전해 보기로 했다.
아직도 연탄을 쌓아놓는 집이 있다니.
시골에서는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마주치면 인사를 하게 된다.
그만큼 사람이 귀한 동네라 사람들과의 눈 맞춤이 귀하다.
도고를 재밌게 즐기고 가시라는 따뜻한 말이 참 좋았다.
차단막이 없는 오래된 철길을 지나 식당으로 가는 길이 정겹다.
시골 할머니 댁에 놀러 온 기분이다.
그렇게 사람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고 가다 보니 수요일은 토성식당이 문을 닫는다는 안내판을 가게 입구에서 보게 되었다.
잘 찾아볼 것을.
그래도 덕분에 밥 먹기 전 입맛을 돋우기 위한 가볍고 즐거운 산책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다음 행선지가 바로 정해졌다.
바로 궁전면옥이다.
숙소에서 걸어서 채 5분도 안 되는 거리에 있어서 몇 번을 지나가기만 갔던 곳.
주차공간이 있어 좋은 식당이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안내문구가 인상적이다.
-입안은 환호하고 혀끝은 환장한다 비빔냉면-
그렇게 오늘 내 점심은 묻고 따지고 할 것도 없이 비빔냉면이다.
사장님이 적으신 문구들이 가게 안을 덮고 있었다.
맛의 자부심, 사장님의 재치가 돋보이는 특색 있는 식당이다.
냉면과 국밥과 갈비탕, 심지어 삼겹살까지 있는, 어떻게 보면 없는 게 없는 식당 같다.
모두의 입맛을 아우를 수 있을지.
모든 메뉴의 맛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어도 냉면만은 핫하도다 헛벌냉면-
음식이 테이블에 도착하자마자 군침이 샘솟는다.
향긋한 참기름이 듬뿍 뿌려진 비빔냉면과 진해보이는 육수.
마치 석쇠에서 구운 듯이 기름기 적고 식감이 좋은 맛난 고기까지, 정말 아름다운 자태다.
젓가락을 들기 전부터 마음이 설레었다.
물냉면과 비빔냉면 중 고민이 된다면, 비빔냉면에 육수를 부어먹어도 좋다.
식초와 겨자를 뿌리지 않아도 감칠맛이 풍부한 냉면이다.
자극적인 음식을 먹기 전 단백질 보충을 야무지게 한 후 냉면을 시식했다.
계란이 옹골차서 합격.
보통 양인데도 생각보다 양이 많았다.
새콤달콤 양념이 쫄깃한 면과 어우러져 좋다.
진하면서 상큼한 육수에 담기니 감칠맛은 배가 된다.
거기에 잘 구워진 고기 한 점이 더해지면, 이곳이 식당인지 무릉도원인지 잊게 되는 순간이 온다.
즐거운 식사시간이었다.
맛있는 식사에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곁에 있어서 참 좋은 순간이었다.
때로는 익숙한 환경에서 벗어나 새로움에 도전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렇게 기분 좋은 오후를 맞이할 수 있었다.
듬성듬성 모여있던 비구름들이 점점 사라지고, 맑은 햇살이 내리쬐는 조금은 더운 낮이 되었다.
오늘의 글쓰기 강의는 담당자분의 부재가 있었지만, 다른 분들로 채워져서 강의실이 가득 찬 느낌이 들었다.
글 쓰러 온 나에게 꼭 필요한 강의였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글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잊어서는 안 되는 주안점인 단어사용 방법까지 톺아보는 알찬 강의였다.
특히나 좋았던 것은 나에 대한 글, 도고에서 느낀 생각들을 다양한 장르로 써보기, 이야기의 끝맺음이 나지 않은 글의 끝을 직접 써보는 시간을 가졌던 것이다.
내 글을 쓰는 것보다, 다른 사람이 쓴 글을 듣는 것이 참 좋았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일을 겪었는데도 다른 생각을 가지고 특색 있게 그려내는 이야기가 즐거웠다.
글 쓰는 시간이 10분, 길면 15분 내외였는데도 다들 짧지 않은 글을 썼고, 단 몇 줄의 문장만으로 그들의 삶이 그려지는 순간이었다.
다 마치고 나니 훌쩍 3시간이 지나있었다.
긴 강의시간이었지만, 지루해하는 사람 하나 없이 다들 맑고 빛나는 눈동자를 하고 있었다.
아마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진짜 재밌다.
수업이 끝났지만 쉽게 여흥이 가시지 않았다.
다들 할 말이 많은 눈치였다.
오늘의 소감을 나누고 싶어 하는 분위기.
곧 저녁시간이 다 되었다.
아침잠이 없는 나는 새벽녘에 일어나기 때문에 늘 이 시간이 고비다.
새벽에 글을 쓰고, 낮에 돌아다니고, 머리를 쥐어짜면서 글을 쓰다 보니 체력이 고갈되었다.
그렇게 식사 겸 대화시간을 가지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혼자 숙소로 향했다.
조용한 숙소. 나만 오롯이 남아있는 공간.
더없이 완벽하다.
즉흥적인 글을 쓸 때는 종이에 담아내는 것을 좋아한다.
오늘 수업시간에 쓴 글들을 가져와 노트북에 담아냈다.
처음 썼던 문장의 어색함을 다시 고쳐 쓴다.
그렇게 다시 생각을 정리하고 내 글로 만들어 간다.
낮에 잠시 보다가 멈추었던 영화를 마저 다 보고, 오전에 널어놓았던 빨래를 걷어와서 고이 접어두었다.
공간은 달라져도 생활은 변하지 않는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리고 금방 밤이 찾아왔다.
별 일을 하지 않아도 시간은 가고 곧 사람들이 돌아왔다.
자지 않았냐는 물음에 빙그레 미소만 지을 뿐이다.
밤이 되었다.
얼른 잠에 들고 싶지만, 여흥에 가시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숙소 안을 가득 채운다.
함께 하고 싶은 마음과 눕고 싶은 마음이 동시에 샘솟는다.
그렇게 생각의 갈등에 저울의 추가 기울었고, 결국 11시가 넘어서야 몸을 누일 수 있었다.
잠이 와도 쉽게 잠들지 못한다.
새벽에 들었던 닭 울음소리가 그리워지는 순간이다.
그래도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다.
바로 잠들지는 않더라도 몸은 쉴 수 있으니까.
닭들은 깊은 잠에 빠져있겠지?
새벽부터 부지런히 울어야 하니까.
그런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났다.
이런 생각은 도고에 오지 않았다면 평생 할 수 없는 생각이다.
귀한 시간이다.
귀한 새벽, 귀한 밤, 귀한 사람.
내일의 새벽이 기다려지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