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고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우리 모두가 살아가는 이야기

by 천둥벌거숭숭이

아주 오랜만에 여유로운 아침을 맞이했다.

다시 새벽 4시 기상이지만, 더 누워있지 않고 벌떡 일어났다.

칠흑 같은 어두운 새벽에 닭은 부지런히 아침을 부르고, 사람들은 이미 일어나 있다.

저녁 8시면 어두워지는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새벽 일찍 일어나 남들보다 이른 하루를 맞이한다.

그들과 함께하는 하루가 즐겁다.

마치 나도 도고의 일원이 된 듯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해 뜨는 데 달 떠있는 하늘의 모습

해가 산을 넘어 서서히 오르기 시작한다.

분홍의 따뜻한 빛이 산의 능선을 넘어올 무렵, 어둠이 사라지기 시작하는 순간을 포착했다.

손톱달이 빛나는 아침의 모습이 찬란하게 느껴졌다.

도고에 와서야 새삼 느끼는 중이다.

하늘이 정말 아름답다는 것을.

천연의 색채에 손가락으로 훔쳐내고 싶은 색깔을 화면에 담아보았다.

예쁜 하늘을 공유해야지.

당신의 아침도 환하게 빛나도록.

이제는 도고상사에 가는 일이 즐겁다

11시 소집 문자가 왔다.

내가 쓰고 있는 글, 혹은 쓰고 싶은 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기 위해서이다.

내가 쓰는 글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다.

주말 후의 도고 사람들은 전원 복귀가 힘들다.

각자의 삶이 있고, 실제로도 주말은 평일보다 짧다.

한 테이블에 모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주말에 했던 일들, 지금 쓰고 있는 글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일단 글을 써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작하지 못한 사람, 이전에 쓰던 글을 썼다고 하는 사람, 주말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는 사람 등, 다양하다.

넘치는 이야기 속에서도 특히, 나의 주목을 끈 이야기가 있었다.

바로 도고창고에서 일어난 일이다.

도고창고 내부 모습

도고에서 도고창고는 핫한 곳이다.

주차장도 넓고, 예전에 창고였던 곳을 활용하여 넓은 공간에 먹음직스러운 빵들이 한가득 있는 곳이다.

글을 쓰기 위해 도고창고에 방문한 어떤 이는 꽤 소란한 테이블에 시선이 끌렸다.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마치 싸우는 듯한 소음으로 다가와서 눈길이 갔다고 했다.

자세히 보니, 농아분들의 모임 자리였다.

언어가 잘 통하지 않으니 자연스레 커질 수 있는 목소리였던 것이다.

호기심이 동했고, 그들을 조금씩 훔쳐보기 시작한다.

소란한 가운데서도 질서 정연한 모습이 보였다.

한 사람이 이야기하면 모두가 그 사람에게 시선을 모으고 몸의 언어에 집중한다.

겹치는 대화가 없다.

말하고자 하는 사람의 말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 사람이 다시 말을 이어가는 것.

지금의 우리에게 필요한 대화 방법이다.

상대방의 말을 끊지 않고 끝까지 들어주는 것이야말로 올바른 대화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쉬운 것을 우리는 상대방의 말에 반박하고, 분석하고, 자기 방어해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손으로 말하는 언어는 우리의 생각보다 표현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단정한 표현을 사용한다는 말이 인상 깊었다.

언젠가 수화를 배워보아야겠다고 다짐했던 일이 생각났다.

올해가 가기 전에는 나도 수화를 배워야겠다.

내가 모르는 이들의 삶을 진솔하게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불편함이 주는 명쾌한 언어들이 듣고 싶어 졌다.


또 다른 이는 서울로 올라가 일을 보고 내려온 이야기를 해주었다.

편의점은 보이지도 않고, 다이소를 가기 위해서는 버스를 타고 순천향 대학교까지 가야 하는 이곳에서 물건을 사는 것은 아마도 도고마트가 최선일 것이다.

수많은 재화들이 넘쳐나고 소비위주의 생활패턴에 지쳐있던 지난날이 바로 엊그제인데, 금세 도고에 적응해 버린 사람처럼 물건들에 회의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나 역시도 이곳에 와서 특별하게 산 물건이 없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물건들에 대한 생각을 1도 하지 않았다.

필요하진 않지만, 갖고 싶은 무용한 것들에 대한 소비에 경각심이 일었다.

금세 모두가 도고에 스며들어 버린 것이다.


낮에는 강렬한 햇살을 피해 숙소로, 카페로 가서 글을 쓰는 시간을 가진다.

저녁이 되면 금세 불이 꺼지는 마을은 밤을 더욱더 어둡게 하고 밤하늘의 별을 찬란하게 만든다.

하늘을 가득 덮은 별을 볼 수 있고, 운이 좋다면 떨어지는 유성을 보며 소원을 빌 수도 있다.

도심 속에서는 고개를 드는 일이 별로 없었는데, 이곳에 와서는 틈만 나면 하늘 보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렸다.


기대보다 더 즐거웠던 시간이 가고, 곧 점심시간이 되었다.

소수의 인원이 모여지니, 함께 밥을 만들어 먹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모든 것이 새로운 것이고 흥미로운 경험이다.

도고의 고기맛집인 시장정육점에서 두루치기용 고기를 구매하고, 도고마트에서 양파와 고추장을 구매한다.

요리에 자신 없는 나지만, 보조는 자신 있다.

당당히 쌀을 씻고 물을 맞추고 압력취사 시작.

누군가는 양파껍질을 까서 채를 썰고, 누군가는 고기양념을 만든다.

다른 이는 당근을 썰고, 또 다른 이는 양파 담을 접시를 건네고, 여분의 수저를 옆자리에 놓아준다.

철저한 분업으로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모두의 손에 합쳐져서 30분 만에 근사한 점심식사가 준비되었다.

두루치기와 미역국 정식

매콤 칼칼함이 특히나 매력적인 두루치기와 자연의 향을 흠뻑 머금은 미역국의 맛이 좋다.

5명이 테이블에 도란도란 앉아 맛을 보고 따봉을 연신 날린다.

식비를 아끼고, 함께 하는 식사시간은 더없이 즐거웠다.

특별한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 밥은 달게 느껴지고, 두루치기의 씹는 맛이 좋다.

소담하게 담긴 반찬이 맛깔나고, 저번에 먹다 남겨둔 소불고기 또한 입맛을 돋우는 귀한 반찬이 된다.

입 안이 가득 차오르는 것처럼, 소소한 행복감도 같이 커져간다.

조금은 서툴렀던 미역국도 정이가고 그릇을 깨끗이 비우게 만든다.

만든 시간보다 짧은 식사시간을 가지고, 설거지를 하고, 싱크대를 닦는다.

누구 한 명 빠지는 사람 없이 아름다운 과정을 다툼 없이 평화롭게 끝을 낸다.

함께하는 식사는 이렇게 즐거운 것이구나.

또 이렇게 하나를 배운다.

오후의 도고는 돌아다니는 사람 없이 고요하다

모든 풍경이 정겹다.

옛 시절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온 기분이 든다.

8월의 크리스마스 영화가 생각나는 은하수 사진관과 골덴 세탁소 가게 이름마저 귀엽다.

사람들로 북적했을 상점가 앞에는 강렬한 햇살만이 굳건히 내리쬐고 있었다.

조용히 걷다 보니 아산 레일바이크라고 적힌 이정표를 보았다.

그렇다.

이정표를 따라가면 철길을 만날 수 있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철길을 이용해 레일바이크를 탈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누군가의 피 땀 눈물로 만들어졌을 철도길이 아직도 남아있다.

중간중간 나무가 삭기도 하고 깎여 나가기도 한 철도의 모습.

지금은 기차가 달릴 수 없는 곳을 놀이기구로 만들어 놓았다.

날이 조금만 더 선선했다면 도전했을 테지만, 레일바이크를 타기에 오늘도 너무 덥다.

떠나기 전까지 날이 선선해지면 좋을 텐데.

일교차가 커진 탓에 감기기운이 있지만, 낮에는 마냥 덥다.

그리고 나는 혼자만의 오롯한 휴식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평화로운 하루를 보냈다.

마치 나도 도고의 사람인 것처럼 하루를 시작하고 오늘을 보냈다.

밤새 소란했던 모임사람들을 욕하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엿듣고, 제집처럼 요리를 하고 청소를 한다.

글을 쓰다가 피곤하면 눕고, 보고 싶은 영상을 보고, 나가고 싶으면 누구 눈치 보지 않고 나갔다.

내가 보내야 하는 하루가 그려지고, 갑작스러운 모임이 생기면 더욱 즐거워진다.

혼자를 좋아했던 내가 이제는 사람들이 궁금하고 함께하면 더 커지는 충만감을 몸소 배우고 있다.

다행이다. 도고에 와서.

여태껏 무엇 때문에 조급하고 불안했는지 모르겠다.

다 잊어버렸다.

여기서 그동안 내가 찾고 싶었던 여유를 되찾은 기분이다.

여유롭게 눈 뜨는 아침, 여유롭게 맞이하는 저녁의 감사함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주변 환경을 바꾸니 더욱더 나에게 집중하게 된다.

그래서 오늘도 좋았다.

당신의 하루도 궁금하다.

소란한 하루를 보내면서도 순간의 여유를 가진 적이 있으신지.

다채로운 아침하늘과 빛나는 밤하늘을 보았는지.

당신의 여유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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