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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벌거숭숭이 Mar 16. 2024

등산 중에 생각의 의자를 만날 확률은

길치의 산행은 늘 시행착오를 동반한다.

집에서 가까운 곳을 등산하기로 했다.

머리가 복잡하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때는 몸을 괴롭힌다.

몸을 지치게 만들고 나면 다른 것이 재미있어진다.

지루해진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는 나만의 방법이다.

자학적이면서도 건강을 중시하는.

이리저리 블로그와 브런치를 유영하다가 정관에서 신기한 등산코스를 발견했다.

용천지맥이라는 산맥이 연결되어 있어서 길을 잘 찾아서 간다면 백운산정상에서 망월산정산, 철마산정상까지.

3개 산의 정상을 한 번 찍어볼까 하는 호기로운 마음으로 출발했다.

백운산 등산로 입구를 향하는 길

정관에는 여러 산이 있다.

망월산, 용천산은 등산로 입구가 잘 표시되어 있어서 찾아가기 쉽다.

하지만 백운산은 입구를 찾기가 힘들다.

버스정류장 정관고개역에 내려서 보행신호버튼을 누르고 기다리면 신호가 바뀌어서 횡단보도를 건널 수 있다.

성모병리과의원을 지나서 옆으로 올라가다 보면 철마산 테마트레킹로드라는 안내판을 마주할 수 있다.

이 코스로 출발하는 사람들이 많이 없다.

힘든 길이라면 먼저 도전해 보겠습니다!

원래 모를 때가 더 용감한 법이다.

나는 그렇게 용자가 되어 들뜬 마음으로 산행을 나섰다.

백운산 등산로 입구는 임도에서 시작입니다.

임도지만 차량의 출입은 관계자 외 출입금지이다.

오로지 산행을 하는 자들만 들어갈 수 있는 입구였다.

그리고 마주한 표지판.

여기서부터 나는 표지판의 방향을 잘 따라갔어야 했다.

음 백운산 정상 표시가 이상한 방향으로 나있네. 생각만 하고 나는 곧장 임도로 걸어갔다.

계속계속 걸어갔다.

평탄한 길을 쉬지 않고 올라갔다.

서서히 오르는 오르막길이라 힘들지 않고 좋네. 이 길도 좋은데 왜 사람들은 이 길로 가지 않는 걸까.

임도는 평탄합니다.

천천히 산을 즐기며 갈 수 있는 길이구나.

중간중간 오두막이 있어서 도시락 따위를 먹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나는 1시간가량을 마냥 걸었다.

이렇게 가서는 정상까지 3시간은 걸리겠는데?

조금씩 마음이 불안해질 즈음

임도의 끝. 그리고 또 다른 임도의 시작.

오토바이를 타고 오시면 안 됩니다.

임도를 걷다 보니 오토바이 타고 달려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역시 사람은 생각하는 게 비슷한 것 같다.

다른 임도 입구에 서니 불안이 확신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두 갈래 길 중 왼쪽으로 오르는 길을 선택했다.

역시 산은 올라가야 산행하는 맛이 나거든요.

오르막길이 시작되니 마음이 안정되었다.

드디어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임도를 이용해서 서서히 오른 오르막길이 어느 정도 높이는 되었나 보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용천지맥 521.4m 지점에 당도했다.

백운산 정상지점

정상석이 있으면 더 반가웠을 테지만 이대로도 좋다.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그래도 정상을 찍으니 기분이 좋았다.

이제 망월산을 향해 길을 가야 한다.

나는 완벽한 길치다.

산에 들어오면 더 길을 모르겠다.

나보다 먼저 산을 오른 사람들의 발자취를 쫓아간다.

그렇게 오늘도 내 감만 믿고 가다가 낭떠러지를 마주하게 되었다.

이 길이 아닌가 보다.

그때 시각이 막 정오를 지나고 있었다.

다행이다. 산에서 길을 잃었어도 아직 날이 밝으니까. 천천히 내려가다 보면 언젠가는 도착하겠지.

길을 잃음을 인지했던 순간부터 망월산 정상가기는 다음을 기약하게 된 거였다.

왜 내가 가는 길에는 장애물이 많은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분명히 길이라고 생각하고 가는데 나무가 떡하니 막고 있다.

기어서 가다 보면 또다시 낭떠러지.

그래서 다시 돌아왔다.

그러다 마주한 생각의 의자.

잠시 앉아서 생각을 정리한다.

나같이 길 잃은 등산객을 위해 준비된 공간인가.

힘들지만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서 확실히 길로 보이는 곳으로 돌아가자.

정상을 가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무사히 내려가는 것이 목표가 되었다.

무사귀가를 위해 정신을 다시 바짝 차린다.

이번엔 제대로 된 길로 내려가는 것 같다.

안전한 하산을 위한 생명줄을 꼭 잡습니다.

내려가는 길이 굉장히 가팔랐다.

발끝으로 모든 신경이 몰린다.

아주 좋은 등산화를 구매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분명 줄을 잡고 내려가는데도 발이 푹푹 바닥으로 꺼졌다.

드디어 올해 등산 처음으로 엉덩방아까지 찧었다.

다행히 줄을 잡고 있어서 엉덩이로 충격이 그리 크게 받지는 않았지만 놀랬다.

무사히 평지를 밟고 싶다.

등산 선배님들의 노란 표시줄을 따라 엉금엉금 내려갔다.

백운산 하산로지만 정규길은 아닌 듯 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길이 아닌 길로만 골라 돌아온 건지.

어찌어찌 그렇게 하산에 성공했다.

평지를 밟았다는 안도감 뒤에 여기가 어디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의뭉스럽게 내려오다가 바로 도로를 마주하니 안심이 되었다.

내려와서 확인해보니, 내가 올라간 길 바로 옆에 나있는 길이었다.

나는 백운산 등산로 입구에서 출발하여 임도로 산을 뱅뱅 돌아서 정상을 찍고 다시 곧바로 백운산을 내려온 것이다.

계획했던 목표는 달성하지 못했지만, 이 또한 나의 새로운 등산기가 아닌가.

무사귀가에 성취감을 더해야지.

그리고 다음 백운산 등산에는 철저한 조사를 준비해서 계획한 대로 3개 산 정상을 찍고 돌아와야지.

초보는 실수도 즐겁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힘이 빠져서 깊은 휴식을 취했다.

산에서 길을 잃으면 기력이 빠진다.

또 충전해서 다음 길을 가야 하니까.

오늘도 반드시 푹잠 잘 수 있겠지.

깊은 밤 깊은 잠 그리고 체력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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