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 군위, 안동, 영주, 칠곡을 1박 2일 완주하며 힐링하기
인생의 8할은 운이 다 한다.
덕분에 좋은 기회를 잡아 인문열차에 탑승하게 되었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인문열차를 타고 떠나는 1박 2일 영남권 탐방기.
영남지방에 살지만, 내가 가는 곳만 가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살아왔다.
며칠 전 다녀왔지만 또 가게 된 안동, 선비의 자부심이 느껴졌던 영주, 작년에 대구로 편입된 군위,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숲체원이 있는 칠곡, 그리고 친구가 살고 있는 동네 동대구.
내가 알고 있던 것들을 새롭게 만나는 것이 바로 여행의 묘미다.
인문열차라는 프로그램 이름이 존재하지만, 나 스스로 이번 여행의 이름을 정했다.
바로 [가을소풍]이다.
심지어 이번엔 혼자가 아니라 동행인이 있다. 나의 친구, 아가, 할머니인 바로 엄마다.
300명과 떠나는 소풍이 처음인 엄마에게 가을소풍을 선물한다.
춥지만 좋은 추억을 가득 안고 돌아오길 바라면서 새벽버스를 타고 약속의 장소로 향하며 맞잡은 손이 따스하다.
인문열차를 기다리는 일행들이 얌전히 사람들을 기다린다. 만나자마자 우리에게 주어지는 선물이 꼭 마음에 든다. 베이지색 패딩 목도리와 여행에 꼭 필요한 가이드북. 간단하지만 꼭 필요한 물품이다.
동대구의 추위를 버텨낼 목도리를 감아도 어색한 분위기는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낯선 분위기를 깨는 것은 간단한 질문이다. 어디서 오셨어요?
한마디를 건넸을 뿐인데, 그 사람의 우주로 중력이 이끌려 간다.
선비와 같은 남편과 호기심 많고 사람에 대한 애정이 많은 부인의 짧은 여행이다. 같은 지역에서 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어느새 우리가 되었다.
기다리던 중 어떤 노숙자 한 사람이 다가와 돈 천 원만 달라고 했다. 없다며 돌아서던 나와 달리, 앞에 앉았던 부인은 배가 고프냐며 먹을 것을 사다 주겠다며 가까운 상점으로 함께 달려갔다. 쿠키류밖에 없음을 알고 가게를 나와 건너편 햄버거집으로 가는 모습에 나는 깜짝 놀랐다.
어떠한 조건 없이 타인을 위한 이타심을 숨기지 않는 태도, 햄버거 하나를 결제해 주고 음식이 나오면 맛있게 드시라 하고 미련 없이 가게를 나오던 부인의 모습에서 아우라가 뿜어져 나온다.
저 복을 어찌 다 받으려고. 한편 피하기만 했던 나 자신에 대해 생각을 해 본다.
그리고 이렇게 나오길 잘했다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배울 점과 앞으로 지향해야 할 모습이 그려진다.
눈앞의 돈만 바라보는 것이 아닌 멀리 보는 것. 그리고 지금에 후회하지 않을 행동을 하는 것.
돌아오는 부인을 향해 엄지 척 눈인사를 건네는 것 또한 잊지 않는다.
그렇게 훈훈한 여행의 시작이 꼭 마음에 든다.
우리는 같은 B팀, 함께 할 조원들이 좋은 사람들이라 더욱 신나는 발걸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엄마에게 귓속말을 건넨다.
"우리는 정말 운이 좋아. 엄마랑 함께 와서 더 좋은 일이 생겼어. 시작이 참 좋다. 다 엄마 덕분이야."
만나자마자 밥을 먹는 것은, 상대방의 호의를 사는 것과 같다.
속을 든든히 채운 후 시작하는 일정에 쉬이 지치기는 힘들 것이다. 혹은 지칠 것을 대비하여 미리 에너지를 채워주려는 치밀한 계획이었을까.
미리 구워진 오리불고기의 향을 코로 먹고 눈으로 맡고 입으로 삼킨다.
어느새 한층 가까워진 부부와 함께 먹는 식사에도 다정함이 묻어난다.
옆자리 테이블에는 3명이 먹어 오리고기가 남는다며 접시에 음식을 덜어 주셨다.
덕분에 부족함 없이, 넉넉하게 몸과 마음을 채울 수 있었다.
서로를 위한 배려는 나를 챙기는 것과 같다.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 곁에 있어서 더없이 소중한 식사시간이었다.
버스에 타자마자 주어지는 보온팩을 열심히 흔들면서 사유원을 준비한다.
팔공산을 정원의 배경으로 만든,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수목원 중 입장료가 가장 비싼 사유원.
소개만으로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사유원에 대한 이야기는 식당인 몽몽마방에서 시작되었다.
2025년 한국관광의 별 유망지로 선정될 정도로 많은 관심을 받는 곳이다.
태창철강의 유재성 회장이 일본으로 밀반출되려던 300년 이상 살아온 모과나무를 사들이게 되면서 사유원이 시작되었다. 사유원은 말 그대로 생각하게 만드는 숲,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정원,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건축물이 아름다운 곳이다.
건축과 조경, 조명이 만들어내는 절제를 자연이 조용히 품어내는 곳에서 사람들이 치유받기를 바라는 마음이 여기저기서 피어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 알바로 시자의 건축물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전쟁의 상흔을 간직한 바로 그곳에서 생명과 죽음의 순환을 떠올리게 만드는 작품이 묘하게 어우러진다.
입장료가 평일 성인기준 5 만원, 주말 6만 9천 원으로, 우리나라 수목원의 평균 입장료를 상위하지만 조경과 조명, 야외음악회 등등의 관리비로는 부족할 수준이라는 관리자의 전언. 태창기업의 문화사업 일환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잘 관리된 정원을 손쉽게 볼 수 있다.
약 20분간의 사유원 소개를 듣고 나니 더 궁금해진다. 도대체 얼마나 좋을까.
사유원을 나올 때까지 꼭 지니고 있어야 하는 입장종이띠를 장착하고, 사유원 안에 위치한 카페 가가빈빈의 모과차쿠폰을 야무지게 챙긴다.
사유원 곳곳에 숨어있는 설립자의 이야기를 찾는 보물 찾기도 기대하면서 말이다.
매서운 윗지방의 바람을 여기서 온몸으로 느낀다. 같이 간 엄마의 절대 보온을 지키기 위해 옷을 바꿔 입고 핫팩을 두 주머니에 단디 넣어준다. 바람의 노출부위를 최소한으로 줄여도 찬바람은 기필코 바늘구멍을 찾아 저의 존재감을 공고히 한다.
무작정 향했던 길은 어느새 산길로 바뀌어 숨이 가파를 지경.
사유원에 입성한 이상 당신의 상념과 고착화된 고민들을 단숨에 날려버린다는 의미였을까.
가장 먼저 만난 건축물은 바로 자유롭게 거닐고 다니는 집인 '소요헌'이었다.
피카소의 작품과 함께 전시될 기획으로 만들어진 설계작을 직접 창작자와 협의한 끝에 들여온 소요헌은 보는 이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들게 하는 공간이다.
거대한 공간, 비어있음에도 편하지 않고, 작은 틈새로 들어오는 빛이 주는 힘이 거대하다.
코팅되지 않는 철을 소재로 한 오브제는 창업자와 창작자의 콜라보가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산화되어 보여도 단단함이 오래간다. 그것이 오래도록 고수한 그들만의 기술이다.
추위를 피해 들어간 건물 안에서 역사와 인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대화를 나누게 된다.
천년을 산다는 모과나무를 증명이라도 하듯, 모과나무 정원 [풍설기천년]이 모과향으로 가득 차 있었다.
모과는 나무에 달려있을 때는 향이 나지 않지만, 나무에서 떨어지고 나면 그때부터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려는 듯이 강한 모과향을 풍긴다. 이곳에 655년을 살아온 모과나무가 있다. 크고 높게 자란 모과나무가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신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빼빼 말라 보이지만 가장 강한 모과향을 풍기는 바로 그곳이 주인공의 자리였다. 영험한 기운을 풍기는가. 좋은 기운을 받기 위해 한동안 그 곁을 지켜본다.
매서운 추위에도 일정은 무탈하게 진행된다. 야외공연장에서는 가야금 연주가 한창이다. 악기마저 얼어버리는 세찬바람에도 연주자들의 열정이 관객들을 압도한다. 매화꽃같이 붉은 아름다운 꽃을 들고 마치 봄처럼 춤을 추는 무용가의 몸짓이 계절감을 잊게 만든다. 가가빈빈에서 받아온 따끈하고 향긋한 모과차는 사유원을 방문한 이를 향한 다정한 인사같이 느껴진다.
이 모든 것이 합쳐서 인문열차 탑승객 150명과 연주자, 무용가 모두가 한 팀이 되어 사유원에서의 순간을 잊지 못할 기억으로 만든다.
모든 기력을 소진한 사람들은 석양빛 아름답게 물드는 줄도 모르고 버스를 향해 발걸음을 옮길 뿐이다.
나와 일행들 역시 몸을 잔뜩 움츠린 채 걷다가 단지 숨 고르기 위해 올린 고개로 인해 바라본 풍경에 넋을 놓고 말았다. 내 눈에 보이는 모든 풍경들의 화양연화가 지금에 담겨있다.
나에게 사유원은 생각하는 곳이 아닌, 생각을 잊게 하는 곳이었다.
계절의 힘은 위대하다. 아름다웠지만 장기까지 시렸던 추위를 버스에서 녹인다.
모두들 말 잘 듣는 학생이 되어 인솔자의 말을 따른다.
감기라도 걸릴까, 후끈하게 데워진 버스 안은 모두를 열기로 잠식시켰고, 곧 우리는 안동에 도착하게 되었다.
내리자마자 중간 홀로 들어가 자리에 앉으면 식사가 준비될 것입니다. 다 먹으면 치워주시니 가만히 계시면 됩니다. 식사를 마친 후에 바로 성해나 작가님의 북콘서트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완벽한 가이드 투어 여행 같다. 진짜로 앉으니 밥이 나왔고, 소불고기와 시래깃국으로 소담하지만 든든하게 배를 채웠다. 다 먹고 화장실 다녀오니 금방 자리가 비워져 있다. 역시 호텔의 서비스는 조용하고 깔끔하다.
하루 종일 차를 타고 야외활동을 해서 졸릴 법도 했지만, 흥미로운 이야기에 다시 눈빛에 힘이 생긴다.
[혼모노]로 잘 알려진 성해나 작가님의 생각이 그녀의 말에 고스란히 담겼다.
모두들 갑작스레 나타난 혜성 같은 신인작가라고 말하지만, 그녀는 계속해서 글을 쓰고 있었다.
포기하지 않는 마음, 꾸준하게 글을 써 내려간 부지런함이 지금의 그녀를 만든 것이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 글을 쓰지 않아도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꼭 필요한 마음을 설파한다.
시대를 초월하는 관계. 베이비 붐 세대와 X세대, 그리고 MZ세대. 이들을 느슨하게 이어주는 연대가 지금의 문화다. 사람은 자기와 비슷한 사람에게 끌리기 마련이고, 결이 맞지 않은 사람을 배척하고 혐오하곤 한다.
우리는 오늘을 살아가는 같은 인류이기에 공감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러한 고민을 공유하고 이해하는 시간이 참 좋았다. 강연보다 긴 QnA시간, 진짜로 궁금하지만 묻지 않았던 말들이 쏟아져 나오는 모습이 마치 지금의 나와 같다고 생각했다.
물론 책을 잘 읽지 않는 엄마는 처음 보는 광경에 흥미를 곧 잃고 꾸벅꾸벅 졸긴 했지만, 300명과 그들을 인솔하는 담당자들로 홀이 가득 차 있었지만, 그중의 1/3이 그로기 상태에 있었으므로 충분히 자연스러웠다.
미리 숙소에 들어가게 했다면 바로 휴식을 취할 사람들을 알기에 이런 일정을 짰을 테지.
모든 변수를 예상하여 치밀하게 짜인 일정에 감탄을 감추지 못하며 이렇게 인문열차의 1일 차 일정이 마무리되었다. 책에 대한 질문보다 인생에 대한 의문이 가득했고,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들에게서 배움을 느낀 시간이었다.
이미 녹초인 사람에게 주어진 카드키는 천국으로 가는 열쇠와 같다.
호텔 내부는 이미 적당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고 있었고, 드디어 쉴 수 있다는 생각에 모든 긴장이 풀려버렸다.
엄마와 나, 둘 뿐이지만 3인실에 배정되었다. 운이 좋은 엄마 덕분에 편하게 방을 쓸 수 있게 되었다는 말에 그녀의 미소가 과감 없이 빛난다.
이런 여행 참 좋다. 소풍 갈만 하네.
오래도록 기다린 가을소풍을 즐기는 아이처럼, 엄마는 그렇게 맑게 웃어주었다.
그 하나만으로 나는 하루의 피로가 풀린다. 혹여나 엄마가 감기에 걸릴까 벗어주었던 외투, 두 손에 꼭 쥐어주었던 핫팩, 하루 종일 마주 잡았던 두 손은 이미 꽁꽁 얼었지만, 소중한 추억의 조각이 되어 내 마음속 서랍에 수납되었다.
그렇게 인문열차의 밤은 포근하게, 그리고 아늑하게 꿀잠을 재우고 있었다.
(숙소 소개와 영주, 칠곡에서의 이야기는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