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 군위, 안동, 영주, 칠곡을 1박 2일 완주하며 힐링하기
인생의 8할은 운이다. 나머지 2할은 운을 기꺼이 맞이할 용기에 있다.
2인, 혹은 3인이 쓰게 된다는 호텔의 객실. 엄마와 나,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은 누가 될 것인가.
호텔이 처음이라는 엄마에게 카드키를 쥐어준다.
평소 엄마와 함께 여행을 자주 다니는 편이지만, 숙박을 하면서까지 오래 한 곳에 머물었던 적은 없다.
작은 체형의 언제나 사람 좋은 미소를 하고 있는 엄마에게는 고질병이 존재한다.
바로 갑갑한 것을 싫어하는 것이다.
좁거나 환기가 잘 되지 않는 곳에 가면, 여지없이 눈을 가늘게 뜨곤 한다.
그래서 엄마와의 여행에는 반드시 내가 직접 다녀와서 좋은 곳만 데려가는 편이다.
처음 가는 가을소풍의 숙소가 호텔이라니, 엄마의 설렘은 피곤을 이긴다.
그리고 우리는 운이 좋게도 3인 방을 엄마와 나, 단 둘이 쓰는 호사를 누리게 되었다.
긴 로비를 지나 카드키를 대면 문이 열린다. 우리의 밤을 안락하게 지켜줄 보금자리. 깊은 밤과 시원하게 열린 도로가 우리를 반긴다.
킹배드와 싱글배드의 주인은 이미 정해졌다. 갑갑증 여사의 안락한 밤을 책임져주는 킹배드가 기특하다.
다가가면 열리는 변기가 지금 이곳이 호텔임을 실감 나게 한다. 너 꽤 친절해서 마음에 든다.
차례로 샤워를 마친 후, 하루의 소회를 나눌 힘조차 없다.
감기는 눈과 포근한 이부자리는 잠을 종용한다.
아주 오랜만에 중간에 깨임 없이 푹잠을 잤다.
아침 7시 50분 로비에서 만나려면 일찍 일어나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러한 강박은 6시부터 눈을 뜨게 만들었다.
7시에 조식 도시락이 문 앞에 놓인다고 하니, 씻고 옷을 갈아입고 얌전히 밥을 기다린다.
눈치 싸움의 승자. 6시 50분에 도착한 도시락을 바로 가져온다. 나와 온 것이 다행이라는 엄마는 10분 더 여유롭게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모두가 같은 메뉴. 그렇다면 구성이 전 연령을 아울러야 한다.
적당한 간이 좋았던 쌈밥 3점, 훈제닭이 올라간 샐러드와 토마토를 베이스로 한 야채주스. 건강과 맛, 그리고 포만감의 균형이 조화로운 아침식사다. 엄마와 나, 단 둘 뿐이지만 도시락이 3개 왔기 때문에 쌈밥은 엄마에게, 샐러드는 내가 두배로 차지하게 되었다. 엄마의 짐꾼은 에너지를 배로 채우고 든든한 지팡이가 되겠습니다.
숙소에서는 오로지 잠만 잘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고요하고 깔끔하고 포근한 것이다. 덕분에 잘 쉬고 갑니다.
약속한 시간에 로비에 도착했지만, 버스가 도착하지 않았다. 덕분에 로비를 여유롭게 돌아볼 시간을 가졌다.
안내데스크에 걸려있는 3점의 작품은 안동의 대표 관광지를 예술적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안동 하회마을과 병산서원, 도산서원과 월영교. 하늘에서 내려다본 모습이지만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안동에 와서 호텔에 묵은 것만으로도 안동을 다 돌아본 기분이 든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오늘의 일정에서 안동은 이제 안녕이다.
잘 쉬다 갑니다. 또 봅시다 안동.
[누군가의 영주]라는 프로그램 덕분에 봄의 소수서원을 만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완연한 겨울에 다시 만나게 되었다.
선비촌 전체가 공사 중이라 소수서원과 소수박물관만 볼 수 있었지만, 저는 이미 다 보았지요.
고구려, 신라, 백제, 고려, 조선, 그리고 양반과 평민의 집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 정비를 마치면 더 사실적으로 묘사된 옛집들을 볼 수 있겠지. 또 와야 할 이유가 하나씩 늘어간다.
최초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에는 명종의 친필로 새겨진 현판이 아직도 존재한다. 문화관광해설사분이 추위에도 굴하지 않고 열심히 설명해 주셔서 더 귀에 쏙쏙 박혔다.
풍기군수였던 주세붕이 안향을 기리는 마음으로 위패를 모시면서 소수서원의 전신이 되는 백운동서원을 창건되었다. 신진사대부의 토대가 되는 성리학을 들여온 사람이 바로 안향이다. 소수박물관에 가면 주세붕, 안향부터 시작하여 성리학의 대가, 공자까지 만날 수 있다.
배움의 장. 현재의 대학과 똑 닮은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다. 학문을 배우고 익히는 강학당, 학생들을 위한 숙소였던 직방재와 일신재, 학구재와 지락재. 도서관이었던 장서각, 제향을 위한 전사청과 안향선생을 비롯한 여섯 분의 초상을 봉안한 영정각. 그리고 휴식의 공간인 탁청지, 학자수림, 취한대와 경렴정이 있다. 선비의 덕행인 수행과 풍류가 어우러지는 공간이 바로 소수서원이다.
이제는 선비들의 풍류를 직접 체험할 시간이다.
국립민속국악원 원장님이 사회를 보는 선비풍류가 시작된다. 스산하지만 한이 서린 대금으로 듣는 아리랑이 구슬프다. 국가무형유산 대금산조 이수자의 소리가 역시 남다르다. 잘 몰라서 사람들의 약력을 자세히 보게 된다. 다음으로 이어진 무대는 판소리, 춘향가 중 쑥대머리로 시작한다. 강렬한 시작에 집중력이 모인다. 우리의 문화를 지키는 사람들의 열정과 염원에 듣는 이들 모두가 감화된다.
난생처음 본 거문고, 선비를 대표하는 악기답게 절제와 단정함, 그리고 기개가 돋보인다. 그리고 모든 연주에 추임새와 흥을 불어넣는 고수가 유독 돋보였다.
마지막 피날레를 장식한 진주교방굿거리춤. 모두의 합주와 어우러지는 우리의 춤, 고수의 향기가 물씬 풍긴다. 작은 몸짓에도 대금의 음색, 거문고의 기개와 장구의 흥겨움이 담긴다. 굿거리춤은 덩실덩실 추는 듯 보여도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스러운 몸사위에 흠뻑 빠지게 만들었다. 이런 고품격의 무대를 바로 앞에서 볼 수 있는 호사를 누릴 수 있어 영광스러운 순간이다.
어떤 선비가 이런 풍류를 누렸을까. 덕분에 나는 오늘 선비의 옷을 입고 선비로서의 삶을 즐겨본다.
정해진 시간표에 우르르 이동하는 사람들이 말을 참 잘 듣는다. 학창 시절 우리의 모습이 자연스레 배어 있다.
선비다례시간에는 접빈다례를 전문가분이 직접 시연해 주셨다. 한 명의 지원자를 받아 손님으로 모시고 정성을 다해 차를 대접하는 모습은 어느 드라마에서 본 듯도 하다. 조심스레 묻는 안부에 다정함이 묻어나고, 상대방을 향한 존중이 보인다.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태도가 결정됨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곧바로 소수로 팀을 나눠 직접 다례를 체험하게 되었다. 단정한 모습의 선생님이 권하는 홍차의 맛이 향긋하다. 낯선 사람이지만 안부를 묻고 부담 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게 된다. 나는 여기서도 현지인이 추천하는 부산 맛집이야기를 멈추지 않는다. 체인점이지만 대체적으로 맛이 좋은 영진돼지국밥, 정갈한 한정식 맛집 바보낙지, 해산물을 좋아하시면 일광해수욕장 주변 아귀찜집은 줄 서있는 곳 아무 데나 가시면 된다고 알려주었다. 모든 여행은 먹는 음식이 맛있어야 행복한 기억으로 남는다는 지론을 아낌없이 설파한다.
그리고 선비문화의 마지막, 선비간찰체험이 시작된다.
내 앞에 놓인 종이와 붓, 필요한 것은 안부를 묻는 나의 마음이다.
서예를 하지는 않지만, 곁에 있는 이가 하루 걸러 글을 쓴다. 마음이 어지러우면 글 또한 삐뚤빼뚤 써진다. 흉내 내서 쓰는 글은 그리는 그림이다. 오로지 글에만 마음을 써야 진정한 글자가 완성된다.
급격하게 추워진 날씨, 지금 꼭 필요한 이야기를 써야지. 목도리와 장갑만 있어도 바람을 이겨낼 것만 같다. 내 사람이 좀 더 따뜻하게 지내기를, 순간의 갈증보다 채워지는 몸과 마음을 가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글로 전한다.
선비의 하루를 풍류, 다례, 간찰을 통해 간접체험해 보았다. 함부로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 보다 느긋하게 하루를 살아야 함을 몸소 배우고 실천할 수 있어 좋은 시간이었다.
바쁜 일정을 쫓아가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도래했다. 오늘의 점심은 산채비빔밥, 매끼마다 밥친구가 바뀌는 재미도 쏠쏠하다. 같은 조가 아닌 낯선 사람들, 어디서 왔는지 묻고, 식탁 위의 반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경상도에서 익숙한 반찬이 경기도민, 전라도 사람들에게는 낯선 음식이다. 고추를 반갈라 밀가루를 부어 쪄낸다. 쪄낸 고추를 볕에 말려서 양념한 고추반찬은 신기하게 고추의 매운맛이 사라지고 감칠맛이 나는, 씹는 맛이 있는 별미가 된다. 흔히 보던 반찬에 감탄하는 사람들이 신기하다. 평소 지도에서 보면 대한민국이 작게 느껴지지만, 다른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세상은 넓고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얼마나 하찮고 작은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옆자리에 앉은 어머니는 밖에 나와서도 자식을 생각하게 된다. 아들과 또래의 남자아이를 보면 얇은 외투가 걱정되고 아프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괜히 한마디를 거들게 된다. 머플러가 남는데 빌려줄까요. 건네는 마음이 따뜻하고 참 예쁘다. 낯설지만 훈훈하고, 익숙하지만 새롭게 느껴지는 산채비빔밥의 맛이 사랑스럽다.
인문열차의 마지막 일정, 경북 칠곡에 벌써 다다랐다. 비교적 최근에 조성된 숲체원에는 숲을 천천히 볼 수 있도록 숙소와 강당, 북카페 등등의 편의시설이 있어 힐링하기에 최적의 장소다.
숲체원에 왔으면 숲을 걷는 것이 당연지사. 여기에는 여느 숲체원과 다른 특별함이 있다.
칠곡가시나들과 함께하는 시와 걷는 길. 자연을 보면서 오랜 세월을 살아온 할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함축적인 시에 담겨있다. 보는 재미, 읽는 재미가 있는 길이다.
먹고살기 바빴던 시절, 나이가 들고 관절과 뇌가 굳어갈 시기가 되어서야 글을 배우게 된 어르신들의 진심은 맞춤법을 초월하여 사람들을 공감하게 만든다.
35년생 감금연 할머니의 시. [금반지 그거 뭐].
시집올 때 건넸던 반지는 온전히 할머니 것이 아니었다. 가족에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초월하는 관계가 존재했다. 시동생도 내 가족인가. 그들을 위해 베푼 마음은 사라진 존재에 불과했다. 금반지 그거 뭐. 세상에 가장 당연한 존재가 되었지만, 나는 당연하지 않다. 아무것도 돌려주지 않는 마음에 서운함은 내게만 당연한 것이 되어버렸다. 웃음이 나지만 눈물을 동반하는 아름다운 시에 감탄을 금치 않을 수 없다.
곁에 있는 이에게 감동을 주지 못할망정, 서운함을 느끼게 하지 말자. 다짐하게 만드는 훌륭한 시다.
사색과 건강, 깨달음을 주는 숲산책이 끝나면 케렌시아 치유명상이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본격적인 명상은 처음이다. 80명 남짓의 사람들이 단체로 명상하는 모습도 특별하다.
명상을 업으로 한다는 담당자님의 말에 재치가 넘친다. 저는 종교에 빠지지 않았고 정신적으로 아프지 않습니다. 명상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어떻게 하면 명상을 잘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사람의 생각이 담긴 시간이다. 라이브로 듣는 연주에 이야기를 더한다. 좋은 차를 마시며 향으로, 어금니로, 장기로 느껴본다. 내 몸의 소리를 듣고, 나의 마음에 귀를 기울인다. 가만히 앉아만 있지 않고 몸을 움직여본다. 손끝의 기를 느껴보고 온몸을 어루만져본다. 색다른 명상으로 소란한 마음을 씻어본 시간이다.
1박 2일 동안 경북지방을 바쁘게, 하지만 알차게 돌아보았다. 언제 이런 호사를 누려보나 싶게 많은 대접을 받았다. 부자의 정원을 보는 일은 언제나 흥미롭다. 입장료가 5만 원인 정원을 언제 또 가보겠나. 야외에서 벌어지는 가야금공연은 흔치 않다. 손가락이 꽁꽁 얼어 연주가 쉽지 않아도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의 모습, 함께 추위에 떨며 서로를 위로했던 마음들을 잊지 못할 것이다.
300명 앞에서 자신이 쓴 책에 대한 이야기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올해의 책으로 선정될 만큼 좋은 글을 썼지만, 많아진 인기만큼, 질투와 시기를 아끼지 않는 사람들의 공격에 상처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과 마주할 수 있는 이유는 자신을 좋아해 주는 사람들을 잊지 않는 마음이다. 고민에 공감하고 진심을 다해 자신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용기는 서로를 위로하게 만든다.
과거는 현재를 알 수 있는 지침서이자 거울과 같다. 세계가 인정하는 문화유산을 가까이하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 존재만으로도 많은 이야기를 전해주는 유적지, 특히 박물관을 어려워하지 않는 마음이 필요하다. 공부를 위해서는 휴식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선인들이 말해준다. 옛말에 틀린 말이 없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자.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지키기 위한 노력이 최선이다.
모든 일정에 섬세함이 담겨 있었고, 빽빽한 스케줄에도 쉬이 지치지 않았다. 300명이 특별한 일 없이 무사히 일정을 완료했다. 모두가 기특하고 대견하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모집했던 300명 한정의 인문열차가 각자의 속도에 맞추어 마무리된다.
엄마와 나는 인문열차가 아닌 다른 기차를 타고 집으로 향한다. 첫날에 첫인사를 나눈 다정한 부부와 같은 기차를 타게 되었다. 노숙인에게 햄버거를 건네주었던 어머님이 간단하게 한 끼 하자며 빨리 나오는 식사를 찾으셨다. 우리의 식사는 4분 만에 완성되는 역전우동. 기차를 기다리며 먹는 역전우동이 처음이다.
갓 나온 뜨거운 우동보다 따뜻한 마음을 대접받았다. 부산에 살면서 언젠가 만날 수도 있는 인연을 마음에 되새긴다. 나도 이처럼 좋은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운으로 시작된 여행이 무사하게 끝이 났다. 무엇보다 곁에 있는 엄마가 피곤함에도 미소를 잃지 않았던 가을소풍이 소중하다. 이번 소풍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가 다채롭고 새로웠다.
선비 같은 남편과의 삶은 스스로를 강하게 만들고 배려가 익숙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부부가 함께 왔지만 각자 즐기는 여행의 여유를 제대로 아는 사람도 있었다. 가족과 떨어진 채 혼자 온 여행이지만, 낯선 이를 가족처럼 대하는 다정함을 가진 사람의 친절이 보기 좋았다. 세상에는 이렇게 다정하고 좋은 사람들이 많다.
사실 나는 내 곁에 있는 행운을 보지 못하고 멀리 있는 희망만 쫓고 살았는지도 모른다. 진짜 행운이 바로 내 옆에 있는 줄도 모르고.
그러기에 이번 여행이 나에게 더욱 특별하게 와닿았다.
진짜 운을 찾았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운을 잡을 수 있는 용기와 함께 여행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배우고 깨달을 준비가 되어있음을 다시금 확인한다.
그래서 나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