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수업 마지막 시간
정해진 일상이 있다는 것은 꽤나 소중한 일이다.
해야 할 일이 있고, 가야만 하는 곳이 있다는 것이 때로는 숙제처럼, 족쇄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일상이라는 틀을 완성시킨다.
한동안 이런 것들을 간과하고 살았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의 간극이 넓다.
자유로웠던 나의 시간들의 휴가가 끝이 나고 있다.
그 끝자락에 만난 시화수업도 어느새 마지막 시간이 도래했다.
시를 완성하지 않았고, 그림에 대한 구체적인 시안을 정하지 않은 채로 집을 나선다.
그래도 좋다. 남은 4시간 안에 만들어 낼 시화는 4시간 후에 내가 완성할 것이기 때문이다.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으면 걱정이 없겠지.
하지만 나는 늘 걱정이 앞서지.
그럴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속을 든든히 채우는 것이 있다.
요즘 샐러드는 식사인가 간식인가.
끓어오르는 식욕을 잠재우기 위해 샐러드를 선택했지만, 배는 채워도 마음을 채우지는 못했다.
나에게 샐러드는 그저 맛있는 본식 전 전채요리였을 뿐.
버스를 타고 부산대에 가는 동안 소화가 되어버렸다. 그렇다면 더 먹으면 된다.
버거킹 와퍼 주니어 2개와 감튀, 사이다 쿠폰을 야무지게 사용하기.
남는 햄버거는 가방에 가져가면 되니까 상관없다.
마음의 허기는 채워도 채워도 금방 비어버리는 깨진 장독 같다.
먹는 중에 버거킹 햄버거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이 그림을 콜라주의 메인으로 써도 괜찮을 듯하다.
콜라주는 내가 원하는 이미지를 잘라 붙이는 것이고, 의미는 내가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생각보다 재미있는 시화가 나올 것만 같다. 역시 배를 채우길 잘했다.
에너지를 채우자마자 활력이 돌기 시작한다.
시화 마지막 시간에 수강생이 현저하게 적었다. 모두들 완성해야 된다는 부담감이 앞서서였을까.
특별히 시를 가르쳐주는 선생님과 그림을 가르쳐주시는 선생님 두 분이 공존하는 시간이다.
시를 쓰면서 콜라주를 위한 색종이를 만들어야 하는 짧지만 농도 깊은 시간을 야무지게 써야 한다.
우선 시부터 완성하는 것이 최선.
주말이라는 단어를 시적으로 표현하면 어떨까. 일곱 번의 밤 중 단 하룻밤?
껌딱지의 다른 말은 어떤 것이 있을까. 해만 바라보는 해바라기?
진부하지만 공감대를 불러일으킬 단어들을 연상시키고 적용해 본다.
신선하지는 않지만 나름 시의 옷을 입은 나만의 시를 써내려 간다.
콜라주에 가려지지 않는 시를 위해 흰 종이에 써서 구름처럼 띄우기로 마음먹는다.
오랜만에 글씨를 예쁘게 쓰려고 하니 쉽지 않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 본다.
혼자가 아니라 다행이야, 전문가의 조언이 큰 도움이 되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토론하고 협업을 통해 프로젝트를 완성하는 것일 테지. 최고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 머지않은 미래에 내가 만날 어떤 날을 마주한 기분이다.
마지막 시간의 테마는 나를 그리는 시화다.
나의 조각을 담아내는 일, 나의 시, 나의 그림.
낮의 활기보다 밤의 고요함을 좋아하는 나, 사랑이란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생각나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나, 애정이 가는 '아가야'와 언어는 통하지 않지만, '아가야'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을 영어와 사전적 해설로 표현해 본다.
말하지 않았을 때는 의문 가득한 이야기들에 의미를 투영한 순간, 그것은 온전한 나의 것이 된다.
작품을 보고 스스로 상상할 수도 있지만, 만든 이의 의도를 이해해 보는 것도 꽤나 즐겁다.
커다란 햄버거 그림을 켄트지의 중간에 붙였을 때, 주변 사람들이 모두 의문을 가졌지만, 나의 설명에 바로 수긍을 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었다.
나의 아가야에게 내가 좋아하는 햄버거와 초콜릿을 나누어 줄 수는 없지만, 그 녀석의 몸에 좋은 것들을 해주고 싶다. 사랑스럽고 존재 자체로 빛이 나는 아가야는 나에게 별과도 같다.
나의 천연색 밤하늘을 수놓는 수만 개의 별빛처럼 어느 곳에서도 나를 바라봐줄 것만 같다.
그래서 언제나 보고 싶다.
아무런 조건 없이 나를 사랑해 주는 너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무한하다.
아직 너에게 못해준 것들이 많아서 행복한 사람이다.
너는 나에게 그런 존재다.
이름을 불러주지 않지만, 너를 향한 애정의 마음은 그보다 더 빛난다.
그런 마음을 담아 시를 완성하고 그림을 마무리한다.
단 4번의 수업이지만 마지막 수업시간에 오신 분은 미리 적어온 시에 그림을 그리고 훌쩍 떠나셨다.
인사를 나누기도 전에, 마치 왔다는 것을 체감하기도 전에 달아나버리는 가을처럼. 낙엽이 떨어지는 속도처럼 왔는지도 모르게 사라지셨다.
곧 구순을 맞이하는 하나꼬, 춘자 씨를 시에 담아내고자 하셨던 어머님은 예정된 가족여행을 떠났다. 그래서 그의 남편이 대신 와서 출력한 시를 액자에 끼워 넣고 함께 콜라주 색종이를 만들었다.
이렇게 사람들을 만나고 각자의 사랑을 보는 것만으로도 인생이 풍부해짐을 느낀다. 동갑의 부부는 그렇게 서로를 응원하고 함께 시간을 공유하고 있었다.
최선을 다해 하루를 살아내고 있지만, 버텨내는 일은 언제나 힘겹기만 하다. 그런 자신의 마음을 뿔에 비유하여 멋진 시를 완성하신 울산에 거주 중인 어머님.
8개월을 버텨내어 간신히 얻어낸 휴가를 사라지게 만든 주범인 남편과 시어머니, 희생을 강요하는 가족들에게 뿔이 났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짐짓 모른 채하는 사람들이 밉다. 하지만 고운 천성은 그대로 순응하고 살게 할 뿐이다. 하지만 그녀는 뿔이 났다.
전문적이지 않은 시 구절에 그녀의 마음이 녹아난다.
그리고 그녀의 바람이 마지막 구절에 담겨있다. 자신을 이해해 주는 남편, 미안한 마음을 숨기지 않는 사람들.
상처받은 사람이 바라는 것은 위로의 마음, 이해, 공감처럼 작지만 큰 힘을 주는 것들이다.
그녀의 뿔이 더 뾰족해지지 않고, 그 뿔을 숨기지 않는 사람이 되면 참 좋겠다.
내 마음속의 1등. 언제나 응원하겠습니다.
서로의 속도는 다르지만, 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다.
시화 한편을 완성하기에 촉박한 시간이었지만, 작품을 2개, 3개 만든 사람도 있다. 대단한 사람들이다.
<이름보다 먼저 온 마음>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너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시 구절이 생각난다.
하지만 나는 너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는다. 너는 언제나 나의 아가야.
우리는 말보다 몸짓, 눈짓으로 대화를 나눈다.
너의 외로움을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함께 할 때 너를 외롭게 하지 않을게.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생각나는 존재에게, 일부러 네가 좋아할 것들을 찾아보고 생각해.
부쩍 추워진 날씨에 네가 입을만한 옷들을 찾아본다. 이번에 구매한 옷이 너에게 맞지 않는다면 직접 만들어줄 생각이야. 하지만 나는 너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네가 나에게 하는 것처럼.
그저 쓰다듬어주기를 바라며 목을 내미는 너에게 나는 내 손을 줄 뿐이다.
나는 그것이 사랑임을 안다.
나의 시화는 꽤나 조잡한 그림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너를 향한 사랑과 나에 대한 믿음이 담겨있다.
나를 그리는 시화, 지금의 나는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
누군가의 블루스처럼, 혹은 다른 이의 뿔도 사랑으로 채워지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