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수업 세 번째 이야기
지적받는 기쁨을 알게 되었다.
어릴 땐 그렇게 누군가의 조언과 평가가 싫었는지.
모든 잔소리로부터의 해방을 꿈꾸었다.
잘하고 싶고, 괜찮은 사람이고 싶어서, 오롯이 내가 생각한 대로 만들고 싶었다. 그 결과물에 대해서는 관심 없이 완성했다는 결론만 원하는 사람이었다.
과연 내가 하고픈대로만 한다고 좋은 결과를 만날 수 있을까.
만족스럽지만은 오늘을 살고 있기에 나는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
시의 시작은 쉬웠다. 하지만 내가 쓴 것이 시인가, 하는 의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시를 제대로 배운 사람에게 평가받고 가르침을 듣는 것.
선생님이 원하는 방향으로 출력해 냈을까.
시화수업 세 번째, 오늘은 어떤 지적을 받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학교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다.
인문관이 주는 면학분위기가 좋아 수업시간보다 1시간 일찍 학교에 도착한다.
계단이 있는 중앙홀의 창가에 테이블과 고정된 의자가 있어 편하게 공부하기에 좋다.
평소에 내가 글을 쓰는 방법을 시에도 적용한다. 시에 대한 생각을 끊임없이 하다가 몰아서 써 내려가는 것.
어제 교수님이 지적한 내용들을 바탕으로 천천히 수정해 나간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시적대상을 묘사하면, 조금 더 하얗고 사랑스럽고, 애살있게 애교 부리는 모습을 표현하고 싶다. 나의 껌딱지, 삶에 대한 의지를 담은 발걸음, 해바라기.
아직은 '시'라기보다 짧게 함축된 산문같이 느껴진다.
억지로 음률을 맞추는 느낌이지만, 이 거친 느낌 또한 시를 처음 쓰는 사람의 서투름이 아닌가.
어색한 것이 두려워 시작조차 하지 않는 사람이 되지는 말자. 못해도 해내면 되는 것이다.
어떻게든 출력시키는 것이 내가 해야 하는 일이다.
그리고 혼자서만 꽤 만족스러운 출력물을 열심히 써내려 나간다.
집중력을 발휘하고나니, 수업시간까지 시간이 넉넉하게 남았다.
인문관 계단을 오를 때 보았던 사진전을 야무지게 둘러보기로 한다. 배움의 광장에는 언제나 볼거리가 넘친다.
사진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사진전시는 완연한 작품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중에 내 눈에 띈 작품이 바로 [가면]과 [누가 그들을 길들였는가]이다.
가면. 하루에도 몇 번씩 나도 얼굴에 가면을 덧씌운다. 친절한 나, 까칠한 나, 슬픈 나, 외로운 나, 세상 즐거운 나. 그 속에 진짜 나는 무엇일까. 솔직해도 상처가 되는 세상에 철저히 나를 가면 뒤에 숨겨둔다.
레고의 얼굴들만 모아놓은 사진에서 나를 투영해 본다. 저런 통찰력과 곧은 시선이 각자의 작품으로 완성되는구나.
색색이 아름다움을 발산하는 잉어들을 찍어 놓은 사진.
[누가 그들을 길들였는가]. 이 잉어들은 언제부터 이곳에 있었을까. 스스로도 살 수 있던 녀석들이 누군가로부터 길들여짐을 당하고 있다. 스스로가 길들여지는지 조차 모를 존재들. 만약 어떠한 기회로 방생이 된다 하더라도 이 잉어들을 자생할 수 있을까.
길들여짐은 누군가로부터 사랑받는다는 증명이 될 수 있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자아를 잃게 되는 방식으로 볼 수도 있다. 사진 한 장에 담긴 철학을 조금이라도 읽어보려 노력해 본다.
예술은 심오하고, 간단하면서 어렵고, 설명하다 보면 언제나 안드로메다로 향한다.
그리고 나는 즐겁게 세 번째 시화수업을 듣기 위해 409 강의실로 향한다.
오늘은 시를 쓰는 날이 아니다. 아날로그 드로잉을 배우는 시간이다.
일러스트레이터 노콩 작가님의 필모그래피를 보면서 강사님에 대한 신뢰도를 높인 후에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 콜라주에 대해 배우고 감상한다.
콜라주란 별개의 조각들을 모아 붙여, 새로운 이미지로 만드는 기법이다.
풀칠하다는 의미의 coller에서 유래한 프랑스어로, 각자의 상상력을 뽐내기에 제격이다.
초보자가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각자의 기량에 따라 다르게 나오기 마련이다.
이런 의미에서 작가님이 선택한 콜라주 기법이, 초보자들에게 조금 더 편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지는 붓과 물감, 잡지와 신문지, 자신만의 색종이를 만드는 시간을 가져본다.
그동안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자신의 감정들을 표현해 내는 사람들, 신문지를 찢어 물감에 찍어내는 기법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스스로 해낸다.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색종이들이 눈에 띈다.
하얀 도화지에는 예쁜 그림만 그려야 할 것만 같지만, 지금은 그 틀을 파괴하는 시간이다.
그리고 오늘 내가 선택한 문구에 맞는 조각들을 생각하면서 붓질을 시작한다.
자유로운 미술시간은, 스스로를 돌아보며 자신을 알아가기에 꽤나 적절한 치료법이 되기도 한다.
작가님이 준비해 주신 좋은 문구들 중에서 마음에 드는 문장을 골라 콜라주로 표현해도 좋고, 자신이 쓴 시를 빗대어 나타내도 좋다.
처음 해보는 콜라주라면, 일단 나의 문장을 찾는 것이 우선순위다.
좋은 말들이 많다.
'작은 시작이 큰 변화를 만든다.', '사소한 순간들이 나를 만든다.' 등등.
이렇게 수많은 단어들을 조각내서 나만의 언어로 만들 수는 없을까.
내 손에 주어진 가위는 많은 것들을 만들어낸다. 조각난 단어들에 내 취향을 더한다.
[괜찮아, 계절은 네 방향으로 움직이는 중이야.]
나만의 문장이 만들어졌다. 기분이 태도가 되어서는 안 되지만, 언제나 기분이 내편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나만의 문장. 이제부터는 그에 걸맞은 색종이를 만들면 된다.
내가 좋아하는 시인 김수영 님의 [구름의 파수병] 시구의 한 문장을 써보기도 하고, 영문 페이지의 잡지를 찢어 물감을 뿌려 데칼코마니 모양을 만들어낸다. 나만의 파랑과 빨간색이 섞인 낙엽 잘라보기.
내 안의 창의성이 꽤 높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사람들의 색종이를 보니 비교가 되지 않는다.
나는 그저 평범한 시민일 뿐이다. 이렇게 다양하고 창작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이렇게도 많다니.
다시 자리로 돌아와 방향을 의미하는 화살표를 신문지 가득 그려 넣는다. 능력이 안되면 노력이라도 해야 한다.
그렇게 나만의 색종이를 이용해 나만의 문장을 그림으로 표현한다.
완성을 한다고 했지만, 설명 없이는 이해가 불가한 그림이 탄생했다.
그래도 처음 만든 콜라주가 꽤 마음에 든다.
선생님 말씀에 경청하는 학생이라 2장의 그림을 완성한다.
괴랄한 그림이지만, 설명이 더해지니 제법 그럴듯해진다.
기본과 평범이 어려운 사람이지만, 그 조각을 더해 자신만의 문장을 만들어내는 나 -> 첫 번째 그림
모든 것을 희석시키고 유유히 흘러가지만 언제나 강한 바다와 위로 곧게 자라는 나무, 기댈 구석이 되고 싶은 나 -> 두 번째 그림
무엇보다 내가 이번에 표현한 콜라주에는 '내가 되고 싶은 나'를 표현해 보았다.
어색하지만 열렬히 호응해 주시는 도반님들에게 큰 위로가 되는 시간이었다.
나의 조각들을 맞추어 그럴싸한 그림을 그려내는 일이 나의 일이다.
스스로의 파수병이 되어 나를 지켜내는 일, 좋아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고 나의 방향을 정하는 일.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것 같지만 나와 맞지 않은 것들을 희석시키고 온전히 나를 가꿔가는 일.
경험하는 모든 것들을 거름 삼아 나만의 속도로 곧게 자라는 일.
괜찮아. 계절은 네 방향으로 움직이는 중이야.
시간을 거스를 수는 없지만, 너는 너의 속도로 걸어가도 괜찮아. 네가 가는 방향이 곧 너의 인생이 될 거야.
멈추어있지 않는 이상 너는 성장하는 거야.
언제나 나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
나를 여는 글, 나를 찾는 색에 걸맞은 시화수업에 나는 완전히 푹 빠져버렸다.
단 하루 남은 수업이 아쉽게만 느껴지는 시화 세번째 수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