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수업 두 번째 이야기
시를 배우고 쓰는 시간에 정해진 4시간은 부족하다.
이제 겨우 시를 알아가기 시작한 아이의 마음으로 배운다.
배움은 어렵고 힘들지만, 그 시간이 지나면 언제나 나를 자유롭게 만든다.
내가 시를 쓸 수 있을까?
깊은 걱정은 기우였고, 흥미로웠던 첫 번째 수업은 다음날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내가 수업을 듣는 부산대학교 인문관 건물이 특별하다는 사실 또한, 시화 수업을 들었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국내에서 최초로 필로티 구조물로 만들어진 문화재정 지정 문화재로 지정된 부산을 대표하는 건축물이다.
지금은 다세대주택, 빌라 등의 형태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필로티가 처음으로 한국에 등장한 것이다.
일반적인 부산 시민으로서 늘 보던 건물의 이야기를 이렇게 들으니 흥미롭다.
부산대학교 본관을 설계한 사람은 대한민국 1세대 건축가, 바로 김중업 건축가이다.
금정산의 지형에 맞추어 휘어진 구조로 만들어진 건물은 부산대학교 본관으로 이용되었지만, 지금은 보수 후 인문관으로 사용 중이다.
영화 [어쩔 수 없다(2025).]에도 나왔다는 말에, 오늘은 일부러 일찍 와서 인문관을 둘러보았다.
지금은 흔한 구조물인 필로티를 최초로 사용한 건축물, 금정산의 지형을 해치지 않고 자연과 어우러지게 만든 건축가의 능력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진다.
익숙한 건물에 이야기가 더해지니 생활 속의 앎이 풍부해진다. 시민강좌의 필요성을 다시금 느낀다.
창 모양 또한 독특하다. 들어가고 나오고, 어떠한 의도에서 이렇게 만들었을까.
학문의 장, 개인이 가진 다양한 역량을 최대한 끌어냈으면 하는 마음이었을까.
배움은 끝이 없다. 오늘은 또 어떤 배움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혼자 하지 않아서 더 좋은 순간이다.
마음대로 쓰는 글은 온전히 나를 담아내지만, 모두를 섭렵할 수는 없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기고 싶다. 그럴 땐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어보는 것이 더없이 좋은 발전을 만든다.
내가 바라본 강아지에 대한 이야기에서, 묘사가 들어가면 좋겠다. 반복되는 '부사'를 줄이면 좋겠다.
선생님의 조언을 그대로 흡수하고 적용시켜 본다.
그저 글로만 존재했던 어느 한 존재가, 어느새 아기처럼 아장아장 걸어 나오는 형상이 그려진다.
아직은 서툴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시의 틀을 잡아가는 것처럼.
그래도 아직 멀었다. 계속 읽어보고 수정하다 보면 더 나은 시를 쓸 수 있겠지.
아직 시는 완성되지 않았지만, 다음 수업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작고 소중한 존재를 어떻게 그려내야 더 사랑스럽게 보일까.
시 쓰는 걱정, 그림 그릴 걱정이 한가득이다.
생각으로 머릿속이 포화되었을 때, 서울에서 볼일을 보고 내려온 지각생이 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시를 썼다는 그이는 시화 첫 수업시간의 소회를 시로 써왔다고 한다.
그렇다면 함께 들어보는 것이 인지상정.
[마피아게임]에 빗대어 참여자들에 대한 서사가 함축적으로 담겨있다.
제주도 4.3 사건의 피해자인 엄마에 대한 이야기, 어반스케치, 시어머니와의 동거, 남편과의 다른 생활습관으로 벌어지는 갈등 이야기, 그리고 내가 쓴 강아지이야기가 담겨있다.
다들 일반 시민이라고 하지만, 분명 이 중에 마피아는 있다.
분명 누군가는 자신의 흔적을 남길 테지, 자신의 흔적을 완벽히 지우는 연기를 하는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모두들 자신이 일반시민이라고 말했지만, 모두가 뛰어난 서사와 그럴듯한 시상에 진짜 시민인 나는 위축되었다.
마피아게임에 빗대어 우리를 표현한 사람 또한 마피아가 아닐까.
감탄과 동시에 그다음 수업이 진행되었다.
대학교 교양시간에 들을 수 있는 부산 근현대사의 녹진하면서도 알짜배기 강의가 시작된다.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지점건물이 부산근현대역사관으로 바뀐 것은, 과거를 잊지 않고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닮아있다.
100년 전에는 동래부 부산면이었다. 지금은 부산광역시 동래구. 그간 어떤 일이 있었기에 주객이 전도된 것일까.
일제강점기. 일제의 수탈이 본격화되기에 앞서 자주 드나들었던 곳이 바로 부산항이다. 부산항을 중심으로 일본인들의 거류지가 지정되고, 외국으로부터 교역을 위해 들어오는 물자, 착출 되어 나가는 물자를 포함한 상업과 무역이 활성화되기 시작한다.
행정중심의 동래에서 상업중심으로 인적이동이 발생하게 되고, 점점 부산의 중심이 이동하기 시작한다.
일본인 거류지, 영사관, 경찰서, 병원 등의 근대시설들이 들어서고 미국, 러시아, 영국 등과 수호조약을 맺으며 각국의 거류지들이 왜관을 중심으로 번영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남과 북으로 나뉘게 된 계기가 되는 6.25 전쟁이 발발한다. 다수의 시민들이 살기 위해 피란생활을 해야 했다. 피란수도, 임시수도까지 역임하게 된 부산에서 다시 격동의 변화가 시작된다.
살기 위해 피란 온 사람들을 수용하기에는 시설도, 체제도 열악했다. 신분이 확인된 사람은 시설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전쟁통에 자신을 증명할 길이 없었던 사람들이 갈 수 있는 곳은 허름한 판잣집뿐이었다. 그것도 사람들이 볼 새라 어두운 밤에 날림으로 지은 하꼬방이다.
시민이 시민으로서 대우받지 못하고 스스로를 지켜야 했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부산의 이야기가 재미있다.
나에게는 익숙한 내용이지만, 역사이야기는 언제나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다.
부산근현대역사관에 가면 알 수 있는 내용들을 다시 복습하는 기분.
함께 수업을 듣는 도반들의 절반이 부산대학교 졸업생이고, 배운 분들이라 강의를 해주시는 교수님과의 티키타카가 잘 맞아서 더 즐거웠다. 수업에서 질문은 선생과 제자의 틈을 메우는 마법 같은 언어가 된다.
내가 살고 있는 부산이라는 곳은 항구도시, 피란도시, 임시수도의 흔적을 지금껏 잘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남아있는 근대 건축물들이 귀하다. 대화재가 빈번히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아있는 근대적 건축물들을 상징성 있게 이용하고 있는 것 같다. 조만간에 다시 부산 역사탐방을 시작해야겠다.
수업 4시간이 알차게 구성되었다.
2시간은 자신이 쓴 시에 대한 평가를 받고 교수님에게 평가와 조언 듣기.
다행히 수업 1시간 전에 끄적였던 몇 줄의 시에 대한 평가는 냉철했고, 적극적인 수용으로 얼핏 보면 시처럼 보이는 글을 썼다.
지극히 수필적인 글을 함축적으로 만들고, 그 안에서 상징성과 은유를 담아내는 일.
강아지가 언제부터 나에게 아가야가 되었는지, 내가 그리는 강아지의 모습을 다른 사람도 공감할 수 있도록 수정에 수정을 거듭한다.
내가 쓰는 시는 결코 잘 쓴 시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누구나가 읽을 수 있고 이해하기 쉬운 시이고 싶다.
전문가가 아닌 일반 시민이 쓴 읽기 쉽고 가벼운 시가 내가 지향하는 바다.
누군가가 짧게 자신의 시상 소개하는 시간을 비유했던 마피아 게임이 시작되었다.
시민 사이에서 마피아 찾기.
그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이미 카드는 각자의 손에 쥐어졌다.
모두들 자신만은 시민이라고 진솔하게 외치고 있다.
나의 태생은 시민, 시민이기에 신청할 수 있는 시화수업에 참여하였고, 무엇보다 시를 쓰는 것은 초등학교 수업시간 외에 처음입니다만.
막연하게 문장으로 끝을 맺는, 설명을 통해 설득하고자 하는 글에는 조금 자신이 있지만, 함축적으로 쓴 언어에 은유적이면서 상징성 있는 글을 쓰는 것은 소자에게도 몹시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시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