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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벌거숭숭이 Feb 12. 2024

설날에 하는 등산은

용의 해에 용천산 등반

다이어리에 적은 목표를 하나둘씩 이루고 있는 중이다.

아무 생각 없이 적어 놓은 나와의 약속을 지키는 것은 쉽지는 않다.

하지만 시작이 중요하다.

아침을 야무지게 챙겨 먹고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너무 씨게 마음을 먹었는지 혀까지 씹어서 아침부터 피를 봤다.

정신을 바짝 차리게 되었다.

용천산 입구는 왼쪽입니다.

두 번째는 어리숙하지 않다.

헛걸음하지 않고 바로 안내판을 보고 병산 가는 길을 오른다.

산을 오를 때마다 머릿속에 이야기가 샘솟는다.

고작 두 번째 산행인데 익숙해지고 있다.

헉헉 거리지만 삼각점까지는 20분이면 훅 간다.

경험해 본 길은 나에게 아는 길이 되어 이전보다 쉽게 간다.

용천산 삼각점은 기분 좋은 미니 정상이다.

쉽게 올랐다는 기분이 들어 자신감이 샘솟기 시작한다.

애초에 목표로 했던 대천사까지의 산행이 아닌 병산마을까지로 종착지를 변경하기로 했다.

용천산 삼각점에서 병산마을까지

급경사를 오르고 나면 어느 정도 오르막은 평지와 같이 느껴진다.

인생이 산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들다가도 그 힘듦을 견디고 나면 어느 정도의 고난과 역경은 쉽게 느껴지는 순간도 있는 법이다.

바람이 불어온다.

나의 힘듦을 씻겨주는 맑은 바람이다.

그렇게 하루를 버텨나가고 살아내는 것 같다.

조금만 더 가면 더 높이 갈 수 있겠지.

그러다가 다시 또 커다란 바위를 만나고 긁히고 헉헉대며 잠깐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그래도 모든 것은 앞으로 가기 위한 과정이니까, 모든 것이 필요한 과정 같이 느껴진다.

용천산 등산길 친환경 의자

힘든 산행 중에 만난 나무의자.

가는 길 중간에 떡하니 놓여있었다.

누운 나무는 이 길을 지나는 이들에게 휴식을 주는 의자가 되어있었다.

단단하고 편했다.

고맙다.

잠깐의 휴식을 취하고 또 앞으로 전진한다.

용천산 꺾인 나무는 힘든 길의 입구

용천산 올라가는 곳곳에 입구인 듯한 색다른 나무들이 많다.

특히나 이 나무는 꺾여 있어서 가다가 이 길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중간중간 보이는 노란색끈(등산모임사람들의 발자취)이 등산로라는 것을 알려준다.

앞의 길은 힘들다. 그래도 갈 것인가 하는 안내표 같다.

산은 친절하기도 하다.

기분 좋게 올라가다가 다시 거친 바위를 마주친다.

몇 번을 쉬다 걷다 쉬다 걷다를 반복했다.

바로 앞만 보며 정신없이 걷다 보니 결국 정상을 만나게 되었다.

용천산 정관고개(정상은 아님)

처음엔 이곳이 정상인 줄 알았다.

내려다보는 경치가 참 좋았다.

용천지맥에서 내려다보인 정관과 양산의 모습

역시 눈으로 보는 것이 훨씬 좋다.

그래도 용천산을 오르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으니 영상을 남기기로 했다.

사람도 없고 고요하니 사색에 잠기기도 좋고, 여러모로 참 좋았다.

그러나 여기가 정상이 아니었다.

계속해서 높이높이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바위산을 힘겹게 올라보니 진정한 정상을 마주하게 되었다.

소박한 용천산 정상의 모습에 미소가 지어진다.

누가 새겨놓았을까.

크게 깎아 놓은 석상보다 더 값진 정상의 모습이었다.

특히나 올해는 더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다.

내가 기대한 모든 일이 이루어지길.

산 정상의 정취에 흠뻑 취해있다가 정신을 차리기에 좀 시간이 걸렸다.

이제는 내려가는 것이 문제다.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내려가는 길은 안내판이 보이지 않았다.

정관 병산마을로 내려가야 하는데 너무 멀리 온 듯한 느낌도 있었다.

직감을 믿어야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조난당한 것인가.

짧은 순간에 굉장히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여기서 길을 잃었더라도 아직 정오밖에 되지 않았으니 돌아가더라도 나는 갈 수 있을 것이다.

혹여나 사고가 생긴다면, 나는 어디라고 말을 할 수 있을까.

만약 그렇더라도 나를 구해주러 올 사람들이 힘들지 않도록 더 내려가야 하지 않겠나.

그럴 정도로 힘든 내리막길을 걸어갔다.

사실 걸어갔다기보다는 곳곳의 가는 나뭇가지를 잡고 밑으로 구르듯이 내려갔다.

이게 길이 맞나 싶을 때쯤 노란 띠를 보고 조금은 안심했지만 그래도 이상했다.

그러다가 발견한 누워있는 표지판

용천산 등산로에서 만난 만나서는 안 되는 표지판

마음속의 불안감이 더 커져갔다.

잘은 모르지만 왠지 군사훈련 중에 만든 요새 같은 곳에 앉아 있다가 여기가 어디인가 폰으로 위치를 추정하고 있는데 들개들이 다가왔다.

헉 하고 놀랬지만 짐짓 놀라지 않은 척 개들에게로 갔다.

그런데 개들이 천천히 앞으로 가는 것이다.

왠지 나에게 길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혼자서는 가지 않을 길을 가게 되었다.

중간에 내가 흘렀던 흔적이 있는 길로 넘어서 쫓아가다 보니 길이 나왔다.

길 잃은 조난자에게 온 기적이었다.

그렇게 나는 애초에 목표로 했던 정관 병산마을로 가지는 못했지만, 양산 덕계로 내려오게 되었다.

용천산 하산 중 만난 양산 덕계 성심병원

등산로가 맞나? 싶은 길을 내려오면 차도가 나온다.

그래도 무사히 내려왔다는데 큰 의미를 두고 싶다.

오르는 길보다 내려오는 길이 더 힘든 산을 겪었다.

그래도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차들이 씽씽 걷는 차도로 무사히 내려오게 되었다.

바로 앞에서 부산으로 가는 버스를 만나게 되었지만 다리에 힘이 없어서 차를 잡을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더 걸어가서 월평마을까지 가게 되었다.

용천산 하산의 끝 월평교차로

아는 길을 만나면 마음이 놓인다.

설날의 끝자락이지만 차가 많고 막히기도 한다.

하지만 마음이 한없이 편해진다.

이제는 쉬면 되니까. 나는 오늘 힘든 산을 올라갔다가 무사히 내려왔다.

그 하나에 만족하는 하루를 보낼 수 있으니까, 길이 막히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일인 것이다.

점심시간이 훌쩍 지났지만 배가 고프지는 않았다.

하지만 체력을 보충해야 하기 때문에 밥을 챙겨 먹었다.

내가 나를 스스로 챙겨줄 때의 보람을 느끼는 요즘이다.

오늘의 산행은 많은 생각을 안겨 주었다.

짧게 요약하자면,

인생은 풍파의 연속이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는 법이다.

힘써 오르막을 올랐을 때는 정상을 충분히 즐기고 내려올 때는 더 힘을 내서 안전하게 내려와야 한다.

하던 일의 마무리를 정성 들여할 때 유종의 미는 더 가치 있는 것이다.

마무리를 더 정성 들여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역시 좋은 산이다. 용천산은.

올 때마다 큰 가르침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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