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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벌거숭숭이 Aug 01. 2024

사라져 혹은 사라져 줄게.

기리노 나쓰오의 소설 아웃

도시락 공장은 깨끗하고 소란하다.

전체 소독을 하고 손에 상처가 났는지 확인을 하고 방진복을 입고 근무를 한다.

컨베이어 벨트 위를 도시락 통이 바삐 다니고 있다.

정해진 용량만큼의 음식을 도시락에 담아낸다.

사람도 기계처럼 반복적인 활동을 하기 때문에 짝을 이루어서 작업한다.

오래 공장에서 일하는 요시에를 선생님이라 부르고, 그 뒤로 오로지 도시락만 보며 묵묵히 일을 하는 마사코, 몸은 굼뜨지만 눈치가 빠른 구니에, 예쁘장한 야요이가 한 팀이 되어 작업을 진행한다.

해가 뜰 무렵, 작업이 완료된다.

그런데 오늘은 시작부터 야요이의 표정이 좋지 않다.

집중력이 흐트러진 느낌이다.

멍하니 있다가 돈가스 소스 통에 걸려 넘어지게 된다.

작업복이 돈가스 소스로 범벅이 된다.

그럼에도 야요이의 멍한 표정에 마사코는 걱정이 반, 짜증이 반 섞인 눈초리로 바라본다.

넘어졌다 일어나면서 살짝 보인 야요이의 배에 퍼런 멍이 들어있다.

이내 못 본 척 고개를 돌리지만, 아마 가정폭력이 있었지 않았나 생각만 할 뿐이다.

도시락 공장의 야간 작업자인 이들은 퇴근 후 바삐 돌아가 가족들의 식사를 준비하는 똑순이 주부들이다.

아르바이트생인 구니코를 제외하고는 돌보아야 할 자식도 있다.

요즘 소원한 사이인 남편과 일말의 사건으로 인해 강제 퇴학을 당한 충격으로 실어증에 걸린 아들과 함께 사는 마사코는 오늘도 귀가가 허무하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고,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남편은 직장으로 출근하고, 아들은 아르바이트를 가기 위해 외출하고 난 뒤.

갑자기 전화 한 통이 걸려온다.

오늘 산만해 보였던 야요이에게서 말이다.

나 남편을 죽였어.

엄청 친한 사이는 아니지만, 근래 함께 작업하는 일이 많아진 동료다.

어떤 의도에서 자기에게 이런 말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사코는 그녀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기다려.

곧장 차를 타고 그녀의 집으로 간다.

한 남자가 허리띠에 목이 졸린 채 쓰러져있었다.

공동으로 모으던 재산을 도박과 여자에게 쓰기 위해 탕진한 남편과 말다툼하다 벌어진 일이라고 한다.

혼란스러워 보이는 야요이를 진정시킨 뒤, 마사코는 야요이에게 시체를 본인이 처리하겠다고 말하고 그를 트렁크에 싣고 바로 출발한다.

당장에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일단 출근을 해서 찬찬히 생각해 본다.

스승님인 요시에는 퇴근이 힘들다.

남편은 일찍 죽고, 지독하게 시집살이를 시킨 시어머니는 거동이 불편하다.

치매증세까지 합세해 다루기 굉장히 힘든 상태의 시어머니는 요시에를 보자마자 소리부터 친다.

기저귀 갈아다오, 배고프다. 너는 매일 날 버릴 생각이냐.

어릴 때는 곧잘 도와주던 딸애도 중학생이 되고, 친구들이 생기니 밖으로 나다니려고 하고 좀체 도와주질 않는다.

밤새 일하고 왔지만, 쉴 수가 없다.

돈을 더 벌기 위해 야간타임으로 갔지만, 병든 시어머니, 딸아이의 학비만 해도 늘 빠듯하다.

모두들 자신에게 기대기만 하는 게 몸서리 쳐지지만, 성정이 부지런한 요시에는 자신 앞에 주어진 일을 불평하는 것보다 해내는 것이 우선인 사람이다.

공장에 출근한 마사코는 요시에를 조심스레 부른다.

야요이가 남편을 죽었고, 그 시체를 처리하는데 함께 하자고.

요시에는 무서워서 바로 거절한다.

하지만 요전에 마사코에게 빌린 딸애의 수학여행비가 발목을 잡는다.

빌려준 돈은 돌려주지 않아도 되고, 또 야요이에게 돈을 더 받아주겠다고 말한다.

당장에 돈이 급한 요시에는 결국 마사코의 제안에 수긍하고 만다.

그렇게 퇴근을 하고 집이 빈 것을 확인한 마사코는 요시에와 함께 시체를 들고 화장실로 향한다.

한창 작업을 하는 도중에 구니에가 찾아온다.

허영심이 많지만, 능력은 없는 구니에는 눈치는 빠르지만 생각이 짧다.

자신의 능력보다 과한 사치로 인해 사채빚을 내고 사채업자에게 독촉당하는 중이었다.

당장 코앞에 다가온 상환일에 급하게 마사코에게 돈을 빌리러 마사코의 집에 찾아온 것이다.

잠깐 고민했지만 마사코는 문을 열고 말았다.

얼떨결에 공범이 추가되었다.

작업은 거의 끝마무리가 되었고, 역시 돈이 궁했던 구니에는 소분된 봉투 15개를 받고 시체처리에 동조하게 된다.

부지런한 요시에와 총명한 마사코는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잘 처분했지만, 돌아다니는 것도 귀찮았던 구니에는 쉽게 공원 쓰레기통에 유기한다.

결국 구니에의 짧은 생각 때문에 사체 발견이 빨리 되었고, 곧 경찰이 야요이를 찾아온다.

불안해 보이기는 하나 야요이는 사체를 절단하고 유기한 사람이라고는 볼 수 없게 마르고 힘이 없어 보였고, 차도 없어서 이동에 불편함이 보였다.

사건 당일 야요이의 남편이 도박장에서 도박장 사장과 다툼이 있었다는 목격자의 증언이 있었다.

경찰은 도박장 사장을 용의자로 특정하고 그를 잡아들이고, 그러한 내용이 뉴스로 나오게 된다.

한 명의 살인자와 3명의 공범. 그리고 등장하는 또 다른 피해자와 가해자.

현실에서 사라지고 싶은 자. 사라졌으면 하는 자들의 이야기가 곧바로 이어진다.


전지적 작가시점.

시점이 캐릭터에 따라 바뀐다.

가장 비중이 큰 마사코.

마사코는 신용금고에서 근무하며 근면성실하게 직무를 수행했다.

직장상사의 옳지 못한 행동에도 당당히 실수를 지적하는 사람이었지만, 직장생활은 녹록하지 않았다.

능력 있는 사람이었지만, 사회성은 결여되었기에 직원들의 따돌림에도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사람이었지만, 갑작스러운 인사이동은 아이를 기르는 엄마는 수용할 수없었다.

결국 직장을 강제로 그만두게 되고 그 후로 남편과의 사이도 더 서먹해져 버렸다.

아이를 위해 직장을 그만뒀지만 그런 아들은 퇴학을 당하고, 그 충격으로 말을 잃었다.

돈이 궁하지 않았지만, 도시락공장 야간반에 들어간 것은 말없이 기계적인 작업만 할 수 있어서이다.

그리고 여기서 일하는 동료들이 마음에 든다.

무료하던 일상에 갑작스러운 전화 한 통.

살인사건.

어떤 일이든 깔끔하게 처리하는 것을 좋아한다.

돈을 받기 위한 일도, 의리로 하는 일도 아니다.

그냥 자기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다.

묵묵하게 작업을 끝내고 여러 봉투에 감싸 소분을 한 후 깔끔하게 배출한 마사코는 완벽했다.

일은 완벽하게 해내는 마사코의 삶은 왜 이렇게 어려운지.

사랑해서 결혼한 사람이 왜 이제는 내가 사라져도 찾지 않을 거라니.

몇 달 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다가, 엄마에게 불리한 이야기를 경찰에게 말하는 아들.

과연 이 집에서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는가.

나는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더 깊은 수렁에 빠져도 그 일에 빠질 뿐이다.


폭력적인 집안에서 자란 사타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마음으로 아버지의 턱을 시원하게 주먹으로 날린 후 가출생활을 한다.

덩치가 있는 반항적인 가출소년이 야쿠자의 길로 가는 것은 쉽다.

그러나 그 안에서도 사건이 있었고, 사타케는 큰 사고를 치고 교도소에 갔다가 지금은 도박장과 술집을 운영하며 밥벌이를 하고 살고 있다.

이국적인 술집이라 종업원들이 대만 여자들이 많았다.

아름다운 용모, 서툰 일본어가 보는 이로 하여금 귀엽게 느껴진다.

자신의 순수성을 모를 때 그 사람이 가장 귀엽다.

특히 가게에서 잘 나가는 안나를 특별하게 챙겨주고 있었다.

사장인 본인이 직접 안나를 에스코트하고 가게까지 안내하고 또, 귀가를 시킨다.

직접 관리하지 않고 매니저를 두고 있지만, 관리는 항상 하고 있다.

그 와중에 안나를 따로 챙기고 하다 보면 하루가 금세 지나간다.

안나는 사타케에게 애정을 갈구하는 듯 하지만, 사타케는 전혀 그럴 마음이 없다.

야쿠자를 나오기 직전 터트린 사건으로 인한 트라우마로 잠식되어 있기 때문이다.

안나는 그저 귀여운 관상용 동물에 가깝다.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은 지켜줘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러한 그의 냉담한 태도에 안나는 그를 떠날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래도 상관없다. 다른 관상용 동물을 데려오면 되니까.

도박장을 관리하는 매니저에게 진상손님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안나를 귀찮게 하는 손님이 도박장에 와서 돈이 떨어졌으니 돈을 빌려달라고까지 한다는 것이다.

전직 야쿠자인 사타케는 술에 취해 폭력적인 진상손님을 한 손으로 제압한다.

그렇게 바닥으로 고꾸라진 진상손님은 분하지만 상대방과 자신의 차이를 느끼고 굴복하고 만다.

그 진상손님이 바로 야요이의 남편이었다.

뉴스에 살인사건이 보도되었다.

익숙한 얼굴. 며칠 전 주먹다짐을 한 진상손님 아닌가.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그 느낌은 현실이 되었다.

이미 교도소에 다녀온 전적이 있는 사타케는 금세 경찰의 타깃이 되었고,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구속 수사를 당했지만, 불법 도박장 운영, 술집 운영에 대한 조사만 받고 사회로 돌아올 수 있었다.

살인사건에 직접 연루된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억울하고 화가 난다.

이제부터 사타케의 목표는 살인사건의 진범을 찾아 괴롭히는 것이다.

시든 풀 사이에서도 강한 자는 살아남아 꽃을 피워낸다.

각 캐릭터마다 특색이 강하다.

자기만의 성향이 강해서 곁의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 마사코, 근본적인 해결보다는 바로 앞에 주어진 일을 수습하기에 급급한 책임감은 강한 요시에, 허영심 많고 책임감 없는 구니에는 주제파악을 못해서 큰일 난 사람이다.

예쁜 용모를 지녔지만 역시 생각이 짧은 요시에, 트라우마에 갇혀 자신을 잠식시킨 사타케.

모든 캐릭터가 특색은 강했지만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미래를 보기보다는 바로 앞에 주어진 일을 수습하기에 급급하다는 사실.

사람에게 경계하는 마음을 가진 마사코가 주인공일 수 있었던 이유.

그녀의 가족들은 이런 그녀의 온전한 모습을 봐주지 않았다.

자신이 떠나도 잡지 않겠다는 사람에게는 미련을 가질 이유가 없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자체만으로 가족으로서의 유대감은 끊어진 것이다.

내가 어떠한 잘못을 저질러도 가족에게 미안하지 않은 순간, 그 잘못은 눈덩이처럼 커질 수밖에 없다.

죄책감.

그것은 누구에게 가져야 하는 감정인가.

피해를 당한 피해자에게 가져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피해를 저지른 당사자들은 본인이 가해자이면서, 자신에게 있는 가족들이 받을 상처를 더 걱정한다.

피해자의 마음보다 자기 가족의 마음을 더 챙기는 것이다.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한 책임감, 혹은 자책하는 마음.

이 글에서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는 없다.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서 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

누구는 돈 때문에, 누군가는 힘든 현실에 대한 도피로 무시무시한 범죄를 저지른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을 때 죄책감 결여가 발생하는 것 같다.

그것만큼 무서운 일이 없다.

상대방을 무시하고 하대면, 반드시 당사자에게 돌아온다.

귀한 사람이다.

지금 어떠한 삶을 살고 있든 누군가에게는 사랑스러운 존재다.

항상 잊지 말아야 하는 사실이다.


아주 오랜만에 긴 소설을 읽었다.

밀리의 서재에서 주관하는 미스터리 소설 추천 영상을 보던 중 눈에 띈 소설이었다.

아웃.

사라져. 혹은 사라질게.

어딘가로부터 도망가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면, 그것이 장소에서인지, 사람에게서 인지.

혹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든 것이 아닌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혼자서 깊게 고민하고 생각하면 결국 고인 물이 되기 쉽다.

흘려보내고 다시 새물을 받아야 한다.

섞이고 흘려보내고 정화되어 맑게 흐르는 물이 되어야 한다.

폭우가 쏟아져도, 태풍이 휘몰아쳐도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흙탕물은 언젠간 흘러간다.

그렇게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던 물속이 어느샌가 투명해 보일 즈음이 되면 상처는 아물고 다시 새살이 돋아날 것이다.

모두의 삶이 그러하듯이.

그리고 함부로 남을 속이려 들지 말자.

속고 속이다 보면 더 큰 거짓말을 하게 되고 눈덩이처럼 커진 일은 수습이 불가능할 지경에 이르게 다.

아이는 보지 않는 것 같으면서 인간관계의 본질을 보고 있는 거라는 생각에 어른은 어쩐지 두려워진다.

모든 거짓말은 들통나기 마련이다.

사실이 밝혀지는 데는 시간의 문제지, 감춰지는 거짓은 없다.

긴 소설을 끝까지 붙잡고 볼 수 있는 이유는 작가의 필력과 엄청난 상상력에 있다.

그리고 다음 페이지를 궁금해하는 읽는 이의 호기심과 인내력이 뒷받침한다.

여름휴가철, 시원한 의자에 앉아 집중해서 보기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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