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부터 퇴사하고 나면 꼭 하고 싶었던 게 있었다. 바로 여행이다. 회사를 다니면서도 여행을 다닐 수는 있지만 압박감이 크다. 가기 전에 회사 업무를 모두 봐 둬야 하고 다녀와서 밀린 업무를 해야 하기에 선뜻 가기 어렵다. 여행이 끝나고 여독을 푸는 것도 회사일을 하면서 풀어야 한다. 갈 수는 있지만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그래서 많은 퇴사자가 퇴사 이후 꿈에 그렸던 여행을 떠나곤 한다.
가까운 곳? 먼 곳?
예전부터 외국 도시 다섯 곳을 둘러보고 싶었다. 피렌체, 시애틀, 하바나, 로마, 홍콩이다. 유럽에 있는 두 도시는 지난 2014년에 다녀왔고 이번 기회를 빌어 홍콩에 가볼 생각이었다. 중경삼림, 영웅본색, 천장지구, 무간도, 첨밀밀, 화양연화 등등 제목만 들어도 가슴 설레는 영화의 본고장 홍콩. 영화를 좋아하는 내게 홍콩의 쇼핑몰은 그저 껍데기에 불과했다. 영화 촬영지를 중심으로 계획을 짠지도 수년째, '드디어 올해 갈 수 있겠구나'하고 생각했지만 TV에서는 범죄인 인도법 개정안 반대 시위 뉴스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영화 촬영지도 보면서 홍콩 사람들의 생각을 듣고 싶어 시애틀에서 홍콩으로 방향을 틀까 고민했었다. 그때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지인이 이런 말을 했다.
"퇴사를 한 다음 계획한 여행이라면 먼 곳으로 가길 바라. 가까운 나라나 도시는 회사를 다니던 중에도 주말 껴서 하루 정도만 휴가 내도 갈 수 있지만 먼 나라 먼 도시는 큰 맘먹고 가야 하잖아."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홍콩이야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갈 수 있었지만 미국을 가는 건 더 긴 시간과 준비가 필요하다.
출장에서 관광을 하기란 하늘의 별따기와 같다 / 이하 구글 이미지
먼 곳으로 가자
퇴사자한테 걸리는 게 있다면 여행자금 정도가 될 거 같다. 좀 더 럭셔리하게 갈지, 몸이 조금 피곤해도 시각적 만족을 추구할지는 여행자의 몫이다.
대신 자금 문제가 해결되면 그 누구보다 편한 여행을 즐기는 사람이 퇴사자들이다. 직장인과 달리 퇴사자들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도 두렵지 않다. 사무실 책상 가득한 서류와 업무가 없기 때문이다.
압박감이 가득한 여행이나 출장을 가 본 사람들은 무슨 뜻인지 금세 눈치챌 거다. 출장에서 관광을 하기 힘든 이유가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쫓기듯이 일을 처리하고 나면 호텔 체크아웃을 해야 한다.
가까운 곳도 좋다?
글을 쓰다 보니 갑자기 의문점이 생겼다.
'해외로 갈 여건이 안 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지?'
시간도 많고 돈도 넉넉하지만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해외로 갈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휴가철 바가지만 아니라면 국내여행도 좋다.
특별한 주제가 있는 여행도 좋고 한적한 곳에 한 달 정도 머무는 여행도 추천한다. 사실 퇴사와 동시에 제주도에 갈 계획이었다. 작업도 하고 브런치 글도 쓰려했는데 이미 퇴사한 작가 분이 제주 한달살이로 대상을 받은걸 봤다. 아쉽긴 했지만 사람들 생각하는 게 다들 비슷하니까 어쩔 수 없었다.
비록 내 계획은 틀어졌지만 일정 기간 동안 어딘가에서 살아보는 경험은 꼭 추천하는 편이다. 원하는 지역에서 휴식이나 일을 해보는 것도 좋은 경험과 마음의 여유를 찾아줄 것이다. 남은 인생을 걸고 귀농을 하진 못해도 한 달 정도 살아보는 건 할 수 있으니까.
친구들은 호캉스를 추천했다. 그리고 김영하 작가가 호캉스에 대해 언급한 말을 해줬다.
"집이 항상 좋은 장소가 되는 건 아니에요. 치열한 삶의 현장인 동시에 아픔이 서려있기도 하죠. 그래서 온전히 쉬는 게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호텔 같은 숙박시설은 다르죠. 투숙객을 위해 모든 게 맞춰져 있으니까요."
우리가 원하는 여행은 생각만큼 어렵지 않을 수 있다
영미권 소설가들은 집필을 할 때 집을 벗어나 호텔이나 모텔을 잡는 경우가 종종 있다. 분위기와 기억에 압도당하지 않고 내가 하고자 작업에만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행을 휴식으로 생각한다면 '쉼'에 목적을 둬야 한다. 호캉스가 아니더라도 휴양지에서 자연을 벗 삼아 쉬거나 책을 읽는 여행도 좋다.
누가 여행 간다고 하면 저마다 여행을 갈 때 필요한 준비물을 줄줄이 읊는다. 대부분 좋은 정보들이다. 하지만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여행을 가겠다는 의지와 여행의 목적이다.
회사를 다니면서 지친 몸과 마음을 다독이고 새로운 출발을 생각하는 이라면, 그것도 복잡하다고 생각해 아무 계획 없이 물 흐르는 듯이 떠나고 싶다면 지금 당장 티켓을 알아보는 걸 권한다. 가고자 하는 그곳은 티켓이 매진됐을 수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