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한 경력을 갖고 있을 때
퇴사자 생활 지침서
취업에 처음으로 성공한 취준생이 아니라면 저마다 나름의 경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 경력이라는 게 오히려 걸림돌이 될 때가 있다. 경력이라고 하기에 애매한 경우도 있고 일을 멈춘 기간이 길어 '경력 단절'로 낙인찍힐 때도 있다. 스스로 떳떳하더라도 사회에서는 퇴사자를 곱게 바라보지는 않는 게 현실이다.
직장을 구할 때 신입보다 곤란한 사람이 경력직으로 지원한 사람들이다. 아예 경력이 많으면 상황이 조금 다를 수도 있지만 애매한 경력을 갖고 있는 구직자들은 고민이 많다. 흔히 경단녀(경력이 단절된 여성)로 불리는 여성 구직자들이 경력이라는 말에 몸서리치는 이유도 비슷하다. 신입을 뽑을 때는 경력이 있는 사람을 원하면서 정작 경력직을 뽑을 때는 신입 같다며 핀잔을 주는 회사도 많다. 업무를 하며 쌓은 경력이 퇴사자에게 양날의 검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신입은 아니고 경력이라 하기엔 애매하고
누구나 새 직장에 들어오면 열정적으로 일한다. 최종 면접에서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부터 '이 회사는 내가 뼈를 묻을 곳이다'라고 생각하며 회사에 대한 충성심을 쌓아간다. 여러 번 회사를 옮긴 직장인은 조금 다르겠지만 처음으로 직장생활을 하는 취업 준비생에게 합격은 감동 그 자체다.
마치 평생 이 직장에 몸담을 거 같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저마다 다른 이유로 이직이나 퇴사를 고민한다. 이때 사람들이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 경력이다. '내가 이 회사에서 얼마나 일했나', '내 경력이 다른 회사에서는 어느 정도 인정받을 수 있을까' 같이 경력과 연관된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어느 정도 이 부분이 해결되면 퇴사 날짜를 맞추기 시작한다.
회사에서 쫓겨났던지, 제 발로 나왔던지 간에 우리는 이미 퇴사했다 / 이하 구글 이미지
하지만 회사를 나온 후에 자신의 경력이 한심해 보일 때가 있다. 특히 신입은 아닌데 경력이라고 하기에 애매한 연차라면 고민은 깊어진다. 딱 내 경우가 그렇다. 기업에서 인사담당을 하는 친구를 만나 경력에 대해 물었다.
포카 : 회사에서는 경력을 어떻게 바라봐?
친구 : 경력직은 신입을 가르칠 여유가 없거나 당장 실무에서 성과를 내야 할 때 뽑게 돼. 그런데 경력직으로 뽑는다고 공고만 내고 신입으로 다시 채용하는 경우도 많아. 경쟁력 있는 경력직은 이직을 하거나 스카우트되는 경우가 많다고 여기는 거지. 대부분 회사에서 경력직 모집에 큰 기대를 안 하는 편이야.
우리나라 기업들은 직원을 채용할 때 공채를 선호한다. 가장 합리적이고 공정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여유가 있는 기업들은 비용이 들어가더라도 신입을 키우는 쪽으로 인재를 영입한다. 대신 공채는 한 명의 승자와 수많은 패배자를 만드는 시스템이다. 이에 반해 경력직으로 면접을 보는 경우는 지원자의 모든 부분을 회사의 기준과 맞춰본다. 공채와 달리 경력직 채용은 뽑는 경우도 드물다. 패자도 없지만 승자도 없는 대결인 셈이다.
나는 떳떳한데...
퇴사하는 사람들은 수개월 정도 쉬고 취업전선에 뛰어드는 편이다. 취업 전선에 선 퇴사자들은 앞서 언급한 여러 이유 때문에 경력을 포기하고 다시 신입으로 지원할지, 아니면 경력직으로 밀어붙일지 고민하게 된다. 육아로 인해 직장을 떠난 여성들은 더 큰 고민을 하게 된다.
힘이 들어 쉬었지만 정작 그 쉰 기간이 발목을 잡는 경우도 있다. 명확한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사측은 저마다 다른 기준으로 지원자를 '경력 단절'로 몰아붙인다. 이때 많은 사람이 퇴사 자체를 후회하기도 한다. 작년까지 대학에서 교직원을 하던 지인은 출산과 함께 퇴사를 했다. 너무 가고 싶은 회사(학교)에 들어갔지만 나올 수밖에 없었다.
퇴사한다고 모든 경력이 깨지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 기간이 길어지면 두려움이 커진다
"육아 때문에 퇴사한 거 자체는 크게 후회하지 않아. △△이 얼굴 보면 그런 마음이 싹 사라지거든. 대신 이대로 쉬는 시간이 자꾸만 늘어가는 게 두려워. 아이가 어느 정도 크고 나서 재취업을 하고 싶어도 경단녀라며 안 받아줄 거 같거든. 그렇게 평범한 아줌마가 되겠지"
지인의 말을 듣고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어떤 일이든지 할 수 있긴 하겠지만 '내가 원하는 직장에 다시 들어갈 수 있을까'하는 고민은 퇴사한 순간부터 따라다녔다. 동종업계에 재취업하고 싶지 않다고 다짐했지만 나중에 어떻게 일이 풀릴지 모르니 가능성은 염두에 둬야 했다.
다시 직장에 들어가는 것도 내 몫이다
퇴사하면서 회사에 하고 싶은 말도 많고 정리해야 할 것도 많았지만 참고 나온 이유도 여기 있다. 그놈의 평판조회가 뭔지... 퇴사한 결정을 후회하진 않는다. 급작스럽긴 했어도 언젠가는 나올 회사였다. 지원자들은 전 회사에서 내가 어떻게 일했는지, 어떤 사람이었는지가 다음 회사를 결정하는데 크게 작용한다고 여기기도 한다.
예전 직장에서 일할 때 동종업계 타회사에 근무하는 친구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내가 다녔던 회사의 ○○○ 씨에 대한 평판을 듣기 위해서였다. 일을 워낙 미루고 잘못하다 보니 돌려서 얘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좋은 얘기를 전하진 못했다. 그리고 그 사람은 다음 주에 회사를 다시 나왔다. '평판조회라는 게 굉장히 중요하구나'라고 생각할 무렵 그 친구를 만났다. 녀석은 평판조회와 관련된 내 질문에 웃으며 답했다.
내 실력을 믿지 못하면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 하는 평가에 흔들릴 수 있다
"그건 위에서 시키니까 형식적으로 물어보는 거지. 당락에 결정을 줄 정도는 아니야. 그분은 다른 지원자에 비해 실력이 부족해서 떨어졌어"
이력서를 볼 미래의 어느 회사 인사담당관 앞에는 내 전 직장이 아니라 지원자만 있다. 퇴사 이유나 회사생활에 대해 한번쯤 물어볼 수 있지만 그게 당락에 영향을 주는 경우는 극히 적다. 결국 모든 건 자신에게 달린 것이다.
재취업과 관련된 걱정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편하게 마음먹고 지내고 있다. 그렇지만 요즘 취업시장이 예전만큼이나 어렵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 회사를 떠나려고 마음먹었더라도 퇴사 자체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결정해야 한다.
퇴사한 이후에는 그 결정 자체를 후회하지 않았으면 한다. 재활과 책 작업을 위해 일을 멈춘 상태지만 추후에 회사에 들어갈 경우를 대비해 최소한 말할 거리는 준비하고 있다. 나처럼 경력과 비슷한 무언가를 해도 좋고 떳떳하게 일을 쉰 이유를 말해도 좋다. 기왕 떳떳할 거라면 막힘없이 밀고 나가길 바란다. 결국 회사는 지금의 나를 보고 채용여부를 결정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