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한나 Feb 11. 2022

"내가 노는 게 노는 게 아니야"



"사모님, 지금 집 보러 가도 될까요?"

요즘 부동산 경기가 좋지 않아 집을 보겠다사람이 많지 않기에 나는 0.1초의 망설임도 없이 "네~ 그럼요!"라고 대답했다.

"2시에 방문하겠습니다!"


막상 전화를 끊고 나니 마음이 초조해졌다.

'한 시간 반 동안 더러운 집을 정리할 수 있을까????'

"아니야! 난 할 수 있어!!! 화이팅!"을 외치며 들어오는 현관부터 널브러진 고구마 박스, 양파 박스를 한 곳에 모아 두고, 책상과 부엌을 정리하기 위해 미친 듯이 뛰어다녔다.

한 겨울에 땀을 뻘뻘 흘릴 정도로 열심히 청소를 하는데... 이상하게 뭐 하나 달라지는 것 같지 않았다.

늘 그랬다. 내가 청소를 하면 아무도 알아채는 사람이 없었다.


내 집 팔겠다고 청소를 하면서 뭐가 서러웠는지 알 수 없는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힘들어... 난 왜 이리 더럽지... 이런 제길... 흑..."


내 서글픈 마음을 알리 없는 부동산 사장님은 집 보러 오겠다는 분이 일찍 왔는데 지금 가도 되겠냐고 물었고,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네"라는 답을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몸에 기운이 쏙 빠지며 "됐어. 포기야..." 혼잣말을 떠들고는 그대로 소파에 풀썩 주저앉아 사랑이와 노닥거렸고, 그 사이 인터폰이 울렸다.


집 보러 왔다는 젊은 남자는 대체 왜 왔는지 궁금할 만큼 우리 집에 관심이 없어 보였다. 하긴 들어오는 입구부터 더러운 우리 집에 호감을 가질 리도 없겠다마는... 아무리 그래도 집을 보러 왔으면 5분은 봐야 하는 것이 아닌가!!!

'야 이 자식아!!! 암만 그래도 내가 한 시간을 청소한 거야!! 내가 쪼그려 앉아서 베란다 바닥까지 닦았는데 어떻게 1분 만에 집을 다 보냐???? 방 하나는 열어 볼 생각도 안 하고 말이야!! 집 보는 자세가 안됐네~ 더러운 상태만 보지 말란 말이야! 이 집이 탈바꿈하면 좋은 집이라고!!!!'

혼자 아우성을 쳐봤지만 젊은 남자는 "잘 봤습니다"라는 한 마디만 남긴 채 현관을 나섰다.


그렇게 고생한 나를 위로하기 위해 냉장고에 있는 시원한 커피 한 잔을 들고 소파에 털썩 드러누웠다.

'안 팔리면 계속 사는 거지 뭐~'라는 생각으로 정신승리를 하며 벌컥벌컥 마셔댔다.


드르르르륵드르르르륵

또 부동산 아저씨의 전화였다.

"아까 본 청년이 집을 사고 싶다고 하네요. 먼저 가계약금 넣으려고 하는데요."

헐ㅇ니ㅏ어리;ㅁ나어리;ㅏㅁ어리;ㅏㅓㅁ아리ㅏㅓ

"대박... 이게 머선일이고~~~"

나는 퇴근한 남편과 경기가 어려운 이 시기에 집값을 내리지도 않았는데 집이 팔렸다는 것과 1분 만에 집을 휘리릭 보고 사겠다는 청년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이 학교 진학과 여러 가지 사정으로 집을 내놓긴 했다마는 이렇게 쉽게 팔려버릴 줄이야...


마음고생 없이 순조롭게 진행된 일 앞에서 우리 부부는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집을 그렇게 대충 보고 산다고? 다민이 방은 열어볼 생각도 안 했다니까! 내가 생각해 봤는데... 우리 동네에 언젠가 역이 생기는 건 아닐까? 게다가 그 역이 우리 집 앞에 생기는 거야~~~ 이 남자가 대박 정보를 입수해서 미리 우리 집을 사는 거지~ 나중에 우리 집 대박나는 거 아니야? 어쩐지 느낌이 묘했다니까~ 이거 아까워서 어쩐대~~~~"

둘이 쿵짝쿵짝 거리며 집 앞에 거대한 지하철 역을 세웠다 말았다를 반복했다.


-어려운 시기에 집이 제시한 값에 팔렸음에도...

-무조건 팔아야 하는 상황에 속 태우지 않고 쉽게 팔렸음에도...

-심지어 아이가 졸업할 때까지 살 수 있는 조건까지 다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의 의심이 밀어닥치니 놀이기구를 탄 것처럼 마음이 오르락내리락거렸다. 결국 그렇게 먹고 싶다던 삼겹살 앞에서 눈을 45도 치켜뜬 채 "뭐지??", "뭘까?"라는 말을 불판에 쏟아내며 소중한 고기를 질겅질겅 씹어댔던 우리들이었다. (그 와중에 삼겹살 8인분에 밥 한 공기 실화냐...)

그렇게 계약서를 쓰는 날까지 집에 대한 의구심이 올라올 때면 우리의 마음은 묘한 불안함에 정복당했다.


며칠이 지났고 우리 부부는 계약서를 작성하기 위해 젊고 잘생긴 청년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나의 궁금한 마음은 안에서만 머물러 있을 리 없었다.

"사실 저 궁금한 게 있는데요. 제가 그날 청소도 못하고 집 상태 엉망이었는데 금방 나가셔서 당연히 맘에 안 드신 줄 알았어요. 근데 산다고 하셔서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잘생긴 청년은 마스크 위로 보이는 눈으로 찡긋 웃으며 "엄청 깨끗하던데요. 제가 이 아파트 몇 군데 봤는데... 제일 깨끗하고 예쁘더라고요. 다른 곳은 올드해 보였는데, 뭐랄까 색깔도 예쁘고 저는 너무 마음에 들었어요."라는 말을 전했다.

내 어깨는 빠르게 위로 올라갔다 내려오면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마음을 드러내면서도 "그러게요~ 정말 주인이 따로 있나 봐요."라는 말을 나불거리며 계약서 작성을 마무리했다.


결혼하고 처음으로 산 우리 집이었다.(대부분은 은행 것이었지만...)

7년을 행복하게 살게 해 주고, 이별 앞에서도 마음고생 없이 우리를 놔주겠다고 말하는 이 상황에 진하게 감사조차 못했던 것에 왠지 모르게 미안한 마음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삼겹살 먹을 때 파티하는 마음으로 먹을 걸....'


나이 조금 먹으니 일이 잘 풀려도 의심의 날부터 세울 만큼 세상을 향해 호락호락해지지 않게 된 나를 보게 되었다.

지혜로워진 것일까? 아니면 순수함을 잃어버린 것일까?

물론 내 앞에 놓인 상황을 있는 그대로 믿기보다 요리보고 조리보고 한 번 더 확인하는 노력들이 지금의 나를 보호해 줄 것이라는 것을 알지만서도... 괜스레 서글퍼지는 것은 뭐 때문일까...

샷을 추가한 쓰디쓴 커피의 첫 한 모금을 머금을 때의 씁쓸함 같은...


내가 한 선택에 대해 오롯이 책임을 져야 하는 '어른'의 무게인 걸까?

남편이 선물해 준 꽃다발을 받을 때면...'얼마에 샀을까? 차라리 돈으로 주지...'

목걸이 선물 앞에서는... '왜 하필 금값 한참 올랐을 때 사 왔을까? 세공비만 비싸지 막상 팔면 돈도 안되던데...'

있는 그대로에 기뻐하기보다 늘 다음을 걱정하며 살아가는 어른 이한나가 있었다.

어린 시절 "시간이 이대로 멈췄으면 좋겠어~ 너무 행복해~"라는 말로 지금을 너무 사랑했던 그 '현실'과 한 달 중에 가장 무서운 카드값의 날 25일이라는 '현실'을 왔다 갔다 하며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었다.


지금이 아닌 내일을 걱정하는 불안함은 곳곳에서 드러났다.

직업 특성상 1월과 2월에는 강의가 많지 않았다. 매번 겪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은 참 한결같다.

'이대로 눌러앉으면 어쩌지?'

'알바라도 시작해볼까?'

'난 이렇게 능력이 없나?'

'내 나이 41살 동안 이뤄놓은 것도 하나도 없고...'

나에게 찾아온 불안은 '도태되면 끝이다'는 협박을 하며 외출할 때마다 읽지도 않을 책을 가방에 쑤셔 넣게 만들었고 어깨의 근육들까지 한껏 뭉쳐주었다.

'개뿔 하는 것도 없고, 새로운 컨텐츠를 개발할 생각도 없으면서...'


불안하고 울적한 마음이 차곡차곡 쌓여서 자존감이 바닥이 날 때면 슬슬 일이 들어온다.

그때마다 나는 "아 ~씨 이럴 줄 알았으면 놀 때 좀 편하게 놀걸... 한두 달 일 없다고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닌데..."라는 말을 중얼거린다. (코로나 이후로는 그렇지도 않지만...;;;;;)


아무튼 이 놈의 어른 놀이는 쉴 땐 제대로 쉬지도 못하게 만들고, 자다가도 죄책감을 주는 정말 개떡 같은 상황을 안겨주었다.

그렇게 어른 놀이의 술래가 되어 마음의 심박수가 높아질 때쯤 블로그 이웃 '안개'님으로부터 하나의 동화책을 선물 받게 되었다.


겨울이 다가오자 버려진 헛간에 옥수수와 나무 열매, 밀과 짚을 모으는 작은 들쥐들.

밤낮없이 열심히 일하는 들쥐들 사이에 '프레드릭'이라는 단 한 마리의 들쥐만 일하지 않고 잠자코 앉아 있었다.

"왜 일을 하지 않니?"라고 묻는 들쥐들을 향해 "나도 일하고 있어. 춥고 어두운 겨울을 위해 햇살을 모으고 있는 중이야"라고 말하는 프레드릭이었다.

차디찬 회색빛의 겨울을 나기 위해 '햇살'을 모으고, '색'을 모은다는 프레드릭.

그뿐이 아니었다. 프레드릭은 기나긴 겨울이 지루하지 않게 '이야기'를 모으기도 했다.

그렇게 그들이 준비했던 겨울이 찾아왔고 저장한 식량이 동이 나니 들쥐들은 서서히 생기를 잃어갔다.

그때 들쥐들은 프레드릭을 향해 "네가 모은 것은 무엇이니?"라고 묻는다. 프레드릭은 자신이 담은 따스한 햇살과 아름다운 색, 수많은 이야기를 프레드릭만의 목소리로 보여주고, 들려준다.

<Fredrick_Dragonfly books>

몸과 마음이 따뜻해진 들쥐들은 프레드릭을 향해 "너는 시인이야!"라는 말로 감탄을 하고, 프레드릭은 수줍은 채 "나도 알아"라는 답변으로 책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한나님은 이야기를 모으는 중이에요. 다음에도 좋은 글 많이 써 주세요."라는 말과 함께 <프레드릭> 책을 선물해주신 '안개'님 덕분에 나는 잠시나마 어른 놀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비록 글쓰기가 업은 아니었지만... 프레드릭은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최근에 읽은 <불편한 편의점>에서 소설가 박경리 선생님이 생전에 하신 이야기를 볼 수 있었다.

"작가들 글 안 쓰고 어슬렁대는 것 같아도 그게다 집필 행위니까 건드리지 마세요."

비우고 채워가며 준비하는 시간들이 누구에게나 필요한 거니까...


'나는 절대 그냥 있는 것이 아니다! 보이는 것에 집착하지 말자'는 다짐을 하며 오늘도 '불편한 여유'가 아닌 '편안한 여유'를 선물해 본다.

"저도 앞으로 나아갈 힘을 모으고 있어요."라는 말과 함께...

        

매거진의 이전글 시어머니는 안 늙는 줄 알았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