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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나 Feb 03. 2022

시어머니는 안 늙는 줄 알았지!

 


"앗싸! 도착하면 6시!!!! 빨리 가서 밥 먹으라는 하늘의 뜻인가 봐~!!!"

명절날 시댁 가는 길에 차가 하나도 없다니 나는 천운의 여자였다. 오는 내내 배고픔에 허덕였지만 '요리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으로 불리는 시어머니 음식을 먹기 위해 나는 차속에 널브러진 먹거리에 끝까지 손을 뻗지 않았다. 상다리가 휘어질 만큼의 다양한 요리를 앞둔 사람이라면 이 정도의 인내는 필요한 것이 당연하다 여겼다.


두둥! 두둥! 시댁 현관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마루로 입성한다.

"어무니, 아버지 저희 왔어요!"라는 짧은 인사말과 함께 내 눈은 빠르게 식탁을 스캔한다.

'어랏!! 아무것도 없네....'

시선을 돌려 인덕션을 쳐다본다.

'뭐야... 올라간 냄비도 없네...'

쉽게 실망하면 안 되는 법! 어머니는 일찍이 요리를 하고 베란다에 음식을 자주 내놓기에 베란다로 이동해본다.

'없다...'

가슴이 두근거리며 고조된 마음으로 냉장고를 열었는데... '헉... 눈에 띄는 것이 없었다.'

나는 답답한 마음을 어딘가라도 말해야 될 거 같아 남편에게 달려가 "여보, 우리 나가서 저녁 먹어야 될 거 같아. 먹을 게 하나도 없어."라며 짜증과 실망감이 뒤섞인 말을 건넸다.

남편도 믿을 수 없다는 듯 놀란 목소리로 어머니에게 물었다.

"엄마 밥 안 했어? 우리 먹을 밥 없어?"

어머니는 정색을 하며 "밥이 왜 없어?? 금방 줄게"라는 말과 함께 후라이팬을 꺼냈다.

보통 만두, 소갈비, 생선조림, 양념게장, 잡채 등이 즐비할 식탁이 휑하니 이상하기도 했다. 심지어 어머니는 금방 주시겠다고 했지만 식탁 위에 어떤 것도 올라올 기미가 없으니... 나는 초조해졌다.

배만 고프면 심하게 짜증을 내는 못돼먹은 성격이 시어머니 앞에서까지 슬슬 기어나올 줄이야... 결국 주둥이가 열리며 "어머니~ 우리 뭐 줄 건데? 나 진짜 배고파~~~~~~"라며 어서 밥을 달라고 재촉하고 있었다. 급한 마음을 아셨는지 어머니는 인덕션에 후라이팬을 올리고는 한우 치마살을 한가득 주시며 말했다.

"맛있는거여~ 구워 먹어!"

밖에서는 너무 돈이 많이 나올까 싶어 꼭 공기밥을 시켜 고깃값을 완충시키는 우리들이 이곳에서만큼은 오롯이 고기에만 집중하며 원껏 먹어댔다.

그렇게 배가 조금씩 차오르고 소고기의 기름이 느끼해질 때쯤이면 '동물성 지방'으로 가득 채운 나의 신체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다른 먹을 것이 있나 고기로부터 눈을 돌려 식탁을 둘러보지만 여전히 배추김치와 된장찌개 말고는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다. 물론 고기는 늘 옳았기에 우리 가족은 신나게 저녁을 해결했으나... 내 마음 한 구석에서는 궁금함이 가시질 않았다.


나는 결국 어머니께 물었다.

"어머니~~ 오늘은 웬일로 이렇게 요리를 안 하셨어?"

"소고기 먹는데 딱히 반찬이 필요 없잖아~ 만두도 해놓긴 했어. 내일 먹어~"라는 말을 하며 시어머니가 씩 웃으셨는데... 나는 또 토를 달았다.

며느리: 아니아니~~~ 평소랑 다르긴 하잖아~ 예전엔 꽃게장도 해주고~~~

어머니: 아이고~ 나도 할까 했는데... 지금은 살이 없는 시기야~ 그래서 안한겨

며느리: 그럼 묵은??? 묵은 자주 써줬잖아.

어머니: 올해는 도토리를 많이 못 주웠어.

며느리: 그럼 전은??? 어머니 버섯전 좋아하잖아?

어머니: 아이고~~~ 해 놓으면 기름기 많다고 먹지도 않으면서~~  그래도 이번엔 돈까스 튀겨놨어. 그거 내일 데워줄게.

며느리: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머니... 이제 요리하기 힘든 거야?? 요리 안 한 모습이 처음이라 그냥 놀라서... 근데 어머니 나 솔직히 아까 너무 배고파서 나도 모르게 승질났다니까... 어떻게 먹을 게 없지~~ 이러면서... 근데 생각해보니까 어머니도 이제 늙어서 요리하기 싫을 수도 있잖아... 어머니 솔직히 이제 요리하기 힘들어?


어머니는 요리하기 힘든 것이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며 그렇게 배가 고팠냐고, 승질이 날 정도였냐고 묻더니 한참을 웃으셨다.


다음날 아침, 부엌에서 뚝딱거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김치만 준다고 타박했던 며느리를 위해 남은 도토리 가루로 소량의 묵을 쑤시고, 황태채를 무치고, 보리굴비를 주시는 시어머니였다.


반대로 친정에 가면... 손이 느린 엄마에게 밥을 얻어먹기까지는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일단 여기저기 아픈 관절들의 소개로 시작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준비한 음식 몇 가지를 챙기는데도 다른 사람들까지 분주해진다. 이번 명절에는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미안하다고 먼저 이야기하는 엄마를 대신해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동태전을 부치고, 오리주물럭을 사고, 랍스터를 준비했다. 혹시라도 엄마가 식혜를 하면 힘들까 싶어 식혜 6병까지 사갔다.

처음 만든 '전'

"엄마~ 아무것도 하지 마.... 하고 나서 아프다고 하는 게 더 싫으니까~ 이번엔 내가 다 사갈게... 밥 먹는 게 뭐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명절이 대수야?? 그냥 편하게 먹자!!"

먹고 나서도 설거지까지 마쳐야 속이 편한 곳이 친정이었다.

어쨌든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느니... 순대국밥 한 그릇 먹는 것이 마음만큼은 편하다고나 할까...


그런 내가 시어머니 앞에 가서는 반찬 타령을 하고 있었다.

'요리를 좋아하니까, 손이 빠르니까, 여전히 기운이 파이팅 하니까, 나는 멀리서 오는 거니까'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며 시어머니가 아들과 며느리를 위해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는 것에 익숙해진 나였다.

문득 영화의 한대사가 떠올랐다.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

정말 그랬다... 결혼을 하고 지금껏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나였다...


"나는 어디 하나 아픈 곳이 없어~ 관절이 왜 아프대니?"라고 말하는 시어머니는 영원히 늙지 않을 것으로만 알았던 나는... 한없이 철없는 며느리였다.

나는 얼굴에 주름이 가득해진 시어머니의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으며 마음속으로 속삭여봤다.


"어머니... 시집와서 지금껏 저희가 갈 때마다 맛있는 밥 해주셔서 감사해요. 그건 당연한 게 아니었어요. 제가 익숙해져서 진짜 감사하는 걸 잊어버렸나 봐요. 다음에 내려갈 때는... (제가 요리하는 거 맛없다 하시니) 맛난 식사를 대접하겠습니다. 이제 어머니가 주시는 따스한 사랑을 절대 당연히 받지 않을게요. 진심으로 감사하고 받은 사랑 많이 되갚을게요.  감사합니다.... (그래서 저도 잘하는 거 알죠??ㅋㅋㅋㅋㅋ)"

맞고 여신 '정여사'
늘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는 아버지의 말씀을
다시 한번 마음 깊이 담고 싶은 명절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저는 '돈버는 머신 2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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