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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나 Feb 25. 2022

제발 모두 나가시오!!


드디어 노트북을 펼치고 브런치 '글쓰기' 버튼을 클릭했다.

"나 글 쓰는 여자야!"라는 말은 무슨 생각으로 했는지, 글쓰기 모임은 왜 하고 있는지 모를 만큼 글쓰기가 싫었다.

이럴 땐 그냥 속 편하게 환경 탓, 남 탓하면서 자기 합리화를 하는 것도 방법이다.

"그래! 이게 다 코로나 때문이야~~~!!!"

밀접 접촉으로 시작해 코로나 양성 판정까지 꼬박 2주일을 가족들과 함께 집안에서 비벼댔다.

재택근무하는 남편은 아침에 이동하는 시간이 없으니 평소보다 한 시간 더 잘 수 있다는 생각으로 매일 새벽 2시까지 놀아댔고, 나도 그 옆에서 올빼미가 되어 사부작거리기를 반복했다.

야간 생활이 익숙해질 때쯤 이렇게 지내도 되나 싶은 생각이 불쑥 찾아와 마음이 불편해지기도 했지만, 나는 안락한 격리생활을 위해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 봤자. 2주일이야... 이럴 때 놀자!~ 모두 회사로 학교로 떠나면 나도 이제 나만의 시간을 갖고 열심히 해 봐야지!'


하루하루 시간이 안 가는 듯하면서도 어느덧 2주간의 시간이 흘렀고, 아주 오랜만에 가져보는 혼자만의 시간이 좋아 침대와 한 몸으로 뒹굴뒹굴거리고 있는데... 그랬는데...

ㅁ니아ㅓㄹ;미나얼;ㅣ만얼;ㅣㅁ나얼;ㅣ망널;ㅣㅏㅁㄴ얼;ㅣㅏㅁㄴ어

"뭐라고??? 회사 2월 동안 두 번 갔는데 밀접 접촉자라고??? 또 일주일 재택이야?? 헐...."

남편은 섭섭한 표정으로 묻는다.

"나랑 같이 있는 거 싫어?? 같이 맛있는 것도 먹고 좋잖아. 진짜 싫어?"


좋다... 좋단 말이다.

집안 일도 같이 하니 편하고, 수다 떨면서 커피도 마시고 좋긴 좋은데...

남편이 있다고 해서 쉬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혼자 마루에 조용히 있을 수도 있긴 한데...

음...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그냥... 아주 조용한, 아무도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오롯이 나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이 들 때면 내 마음 한 곳에서 작지만 선명한 소리가 들려온다.

 "개뿔 뭐 한 게 있다고 휴식이 필요하다는 거야?? 네가 2주 동안 한 게 뭐 있는데??? 그만큼 누워있으면 됐지! 하여간 어려서부터 잔댕이가 부러졌다는 말을 그렇게 듣고도 누워있는 게 좋냐??"

이대로 있을 리 만무했다.

"아~ 씨불~ 졸린데 어쩌라고!!! 아 몰랑몰랑~~ 나 알람 안 맞추고 잘 거야!"라는 혼잣말과 함께 베개를 내 머리 깊이 끌어당긴다.


하는 것 없이 집에서 빈둥거려도 '혼자서 조용히 쉬고 싶다'는 생각에 누가 동의할 수 있을까?

다행히 나의 큰언니는 "당연하지. 나갈 사람은 나가야 돼. 학교든 회사든... 그때가 진짜 쉬는 거야."라는 말로 나에게 힘을 보태주었다.

피를 나눈 언니와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클라우디아 해먼드의 <잘 쉬는 기술>에서 사람들이 '휴식을 갖는다는 느낌을 받는 5위까지의 활동'이 모두가 '혼자서 하는 활동'이었다.

자세한 활동은 다음과 같다.

-5위 '아무것도 안 하기'

-4위 '음악을 듣는 기쁨'

-3위 '혼자 있는 시간의 힘'

-2위 '자연에서 얻는 회복력'

-1위 '독서'


'옴마야~~~ 혼자서 아무것도 안 하고 뒹굴거리는 게 3위, 5위라니~~~'

맞다! 아무리 사랑하는 가족이라도 잠시 그들 틈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욕구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할 때가 있다. 엄마의 역할, 아내의 역할, 직업인의 역할이 부여하는 의무, 책임에서 벗어나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인간 이한나로 존재할 수 있는 그 시간이 주는 '쉼' 말이다.


문득 내 쉼을 이야기하다 보니 남편이 떠오른다. 소파에 벌러덩 누워 몰카 유튜브 보면서 낄낄거리는 남편을 향해 "그렇게 재밌냐??? 아휴..."라는 말과 함께 비소를 보내곤 했는데... 휴식이라 느끼는 활동 9위가 '텔레비전 시청'이라고 한다.

그도 힘겨운 하루의 삶에서 '쉼'을 얻고 있었던 것이다.

유튜브에 진심인 남편

종종 남편은 침대에 누워서도 잠들지 않고 계속 몸을 뒤치락거릴 때가 있다.

스르르 잠이 들려하면 들썩거리니 도무지 잠을 잘 수 없었다.

"오빠! 잠 안 와? 자꾸 움직여서 잠이 깨. 나 내일 아침 일찍 나가야 되는데..."

남편은 본인 때문에 내가 잠이 깨는지 몰랐나 보다. 놀란 목소리로 "미안해. 잠든 줄 알고 참다 참다 움직인 건데... 나 그냥 바닥에서 잘까? 나도 편하게 움직이다 잘게."라는 말을 하더니 장롱을 열어 바닥에 깔 요를 꺼낸다. 그렇게 한 침대에서 벗어나니 남편도 나도 어느새 잠이 들었다.


다음 날 나는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커피 먹었어?? 왜 그렇게 못 잔 거야??"

남편은 책상에 놓인 종이를 들어 내게 보여준다.

"자꾸 생각 안 하려고 해 문제점이 떠오르는 거야.  근데 갑자기 아이디어가 생각나서 새벽에 적어뒀지."

나는 쌍엄지를 내밀며 "오~~~~ 간지나는데~~~ 그래도 잠도 못 자고 힘들겠다."는 말로 그를 위로했다.

퇴근 후에는 일 생각도 안 하겠다며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억지로 끊어내려고 하는 남편이지만, 자신이 가진 직장인이라는 역할은 그의 삶 속에서 큰 무게가 되는가 보다.


나는 남편을 생각하며 혼잣말을 해본다.

"그래. 내가 밥도 안 먹고 오후 1시까지 침대를 벗어나지 않을 만큼의 휴식을 취하고 싶을 때처럼... 여보도 아무 생각 없이 깔깔거리고 멍 때리고 싶을 때가 있겠지~~~ 맘껏 쉬어~~~~  그러다 조금이라도 충전되면 나랑 이야기하면서 놀자~~~ 내가 좀비 흉내 내면서 많이 웃겨줄게~~" (참고로 나는 관절이 꺾이는 좀비 흉내를 잘 낸다;;;)



그랬다. 밥도 안 먹고 내내 잠만 잔 오늘,

나는 나의 쉼을 그리고 상대의 쉼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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