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프레소 같은 남자

by 이한나

"잠들기 전에 꼭 나에게 뽀뽀를 해줘!"

난 뭐든 적극적인 여자이지만, 잠들기 전 뽀뽀만큼은 남편에게 선물 받고 싶었다.

반복학습의 결과로 남편은 잠들기 전 '잘 자'라는 인사말과 함께 기계적으로 뽀뽀를 한다.


그렇게 15년간 한결같았던 남편은 두 번째 스무 살인 마흔을 맞은 이후로 변했다.

눕자마자 "아 졸려~"라는 말로 눈을 감아버리는 남편.

'얼마나 힘든 하루였으면 저럴까'라는 이해보다 뽀뽀를 하지 않는 것에 마음이 상한 나는 "왜왜왜 이제 왜 뽀뽀 안 하고 자는데?"라는 말로 눈을 흘겨댄다.

그럼에도 남편은 침대에서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오직 주둥이만을 앞으로 내리 뽑고는 "일루 와. 나 지금 딱 잠잘 포즈 각 잡았으니까 니가 하고 가."라는 명령을 안겨준다.


그렇게 서서히 우리는 오래된 부부가 되었고, 침대에 눕자마자 잠들기 바빠지는 급격한 노화를 경험하고 있다.

예전에는 어떻게 팔베개를 하고 누워있었는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지금 우리 부부는 손잡고 자는 것도 불편해 손등과 손등을 맞닿는 것으로 남이 아닌 부부임을 증명하며 그렇게 잠을 청한다.


그러나 어제는 달랐다.

'실컷 자고 일어나면 토요일'이라는 행복한 금요일 밤의 매력은 우리를 여유롭게 만들었다.

더군다나 커피의 카페인 덕분이었는지... 나는 유난히 초롱초롱했다.

순간 예쁜 아내가 되고 싶었던 나는 남편을 향해 돌아누웠다.

의사 선생님께서 성심성의껏 만들어주신 쌍꺼풀로 인해 반짝반짝 빛이 날 나의 눈을 상상하며 동그랗게 눈을 뜨고 남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살포시 아주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이 남자... 내 앞으로 더욱 가까이 얼굴을 내밀며 나를 바라본다.

순간 신혼 때처럼 서로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우리들...

오래전 맥심 커피 광고가 떠오른다.


나이가 사랑에서 멀어지라 하는가?

'여자가 살아있는 한 로맨스는 영원하다.'
맥심 커피 광고


마흔 살을 3개월 앞두고 로맨스가 간절했던 나는 남편을 향해 살짝 웃으며

수줍게 "나 사랑해?"라고 물으니...

남편은 내 머리를 쓸어내리며 "당연하지"라고 속삭인다.

나는 또 물었다.

"나 어디를 사랑해?"

"음...."

남편은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내가 너무 어렵게 질문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언제 사랑스러워?', '어쩔 때 나에게 사랑을 느껴?' 이렇게 물었어야 되는데... 그냥 나도 모르게 툭 튀어나온 '나 어디를 사랑해?'.....)


어려운 질문에도 불구하고

'음'이라는 소리와 함께 나를 바라보는 남편의 눈빛은 너무나도 따스했고 매혹적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어디를 사랑하냐니!!!

내가 너를 부위별로 사랑하냐? 니가 돼지야?"

(명석한 거 같진 않은데 받아치는 능력이 좋은 이 남자...)

출처: 한돈닷컴 캡처


"그냥... 잘못 물으면 알아서 의역해서 답변하면 되지. 꼭 그렇게 밖에 대답을 못해? 그냥 자!!!!!!!!!!!"


이 아저씨야... 나도 로맨스가 필요하다고.

20대였을 때에도, 40을 바라보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사랑을 속삭이고 싶단 말이야!!!


그러나 현실은 '니가 돼지야?'라고 멘트 치는 아저씨와 살고 있다.

그래서일까? 로맨스를 찾아 헤매던 나는 드라마에 과하게 몰입하곤 한다.

TV를 통해 흘러나오는 '사랑한다'는 그 한마디, '예쁘다'는 그 한마디, '보고 싶었다'는 그 한마디에 마치 여주인공 마냥 가슴이 콩닥콩닥 뛰곤 한다.

설렘과 행복, 사랑의 속삭임... 이런 것들은 죄다 드라마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을 보며 느껴야 되다니..


심지어 브런치에 글을 보면서도 가슴이 설렐 때가 있었다.

내가 구독하는 작가님 글 중에 사랑하는 아내를 향해 편지를 쓰는 작가님이 있다.

아내의 모습, 행동, 말 하나하나 글로 적어내며 설렌다는 표현을 보며 어찌나 부러웠는지...

심지어 어떤 분은 "남편이 제게 쓰는 편지라고 생각하면서 봤어요."라고 댓글을 달며 흐뭇해하는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불 속에라도 뛰어들어갈 만큼 뜨거운 사랑의 시기는 지났어도...

여전히 '내 귀에 캔디'를 갈망하는 마음은 같은가 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주문을 한다.

"여보 내 귀에 달콤하게 고백해줘. 바닐라 라떼처럼~"

남편은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내 귀에 "나는 쓰디쓴 에스프레소 같은 남자야."라고 말하고는 휙 돌아버린다.


에스프레소 같은 소리 하고 있네.

하지만 친절한 한나씨는 쓰디쓴 에스프레소에 다가가 우유를 넣고 시럽을 쏟아붓는다.

"자기는 언제까지 잘생길 거야? 이렇게 멋있는 남자가 내 남편이라니!!!!!! 난 다시 태어나도 자기랑 또 결혼할 거야."


남편은 내가 제조한 달달한 라떼를 웃으며 받아마신 채 그 어떤 것도 지불하지 않는다.

공짜를 좋아해서 인지... 요즘 머리털이 적어지는 거 같기도 하다.


"남편아... 공짜 라떼를 그 정도 마셨으면... 이제 입을 열어라!

나 죽으면 더 많이 사랑한다고 말할걸 후회하지 말고, 지금 해라... 지금 해..."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남편이 내 글에 댓글을 달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