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내 글에 댓글을 달았다고?

by 이한나

입덧이라곤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나를 향해 사람들은 임신 체질이라고 했다.

세상 모든 게 참 맛있었다.


토요일 시댁에 내려갈 때면 어머니는 남편과 배불뚝이인 나를 위해 끊임없이 음식을 만들어댔고,

우리는 위장의 소화력을 테스트하는 사람들처럼 미친 듯이 먹어댔다.

위장과의 배틀에서는 음식이 끊이지 않게 하는 것이 원칙인데 한치도 양보할 수 없는 그 시점에 꼭 현관문이 불쑥 열렸다.


누구인지는 안 봐도 훤하다.

시어머니의 첫째 딸 이름 "정희야!"를 부르며 입성하는 뒷집 아줌마 아니면 옆집 아줌마들이었다.


시댁은 동네 아줌마들의 아지트였다.

노래방 기계가 있었고, 고스톱과 윷놀이를 하기 적합한 널찍한 마루.

게다가 보이지 않는 손놀림으로 음식을 만들어대는 시어머니까지 있었으니 이곳은 아줌마들의 지상낙원이었다. 개방된 문화를 너머 언제나 '웰컴 투 우리 집' 환영 문화에 길들여진 나는 아줌마들이 올 때면 반가워지기까지 했다.


언제나처럼 현관문이 불쑥 열렸고, 고개를 돌려보니 "재민네"로 불리는 옆집 아줌마가 들어오고 계셨다.

나는 반갑게 아줌마를 향해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넸다.

아줌마는 밝은 표정으로 나를 보며 "놀러 왔다길래 맛있는 거 줄려고 왔지."


'대체 맛있는 것은 무얼까? 아줌마 손에는 '무' 밖에 없는데...'


아줌마는 정말 어이없게도 나를 향해 생무를 건네며

"진짜 달아. 너도 임신했으니까 생무 좋아할 거 같아서 가져왔어. 이거 먹어봐. 무슨 과일 같다니까."


솔직히 황당했다.

'임신을 했는데 왜 생무를 좋아해. 그리고 그게 무슨 과일 같아.'

하지만 내 생각과는 다르게 가식에 익숙한 내 입은 "아... 네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라고 나불거렸다.

내 마음을 알았던 건지 급하게 등장한 시어머니는 "재민아~ 임신했을 때 무가 왜 맛있냐? 너나 맛있지. 다른 사람들은 안 그렇다니까! 너만 맛있어~"

재민네 아줌마는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나에게 "너 무 안 좋아하니? 이상하다... 나는 임신할 때 무가 제일 맛있던데"라며 멋쩍어하셨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재민네 아줌마만 이런 줄 알았는데... 우리 엄마도 비슷하다.

엄마는 우리 집에 놀러 올 때면 딸을 위해 꼭 '찹쌀밥'을 해오신다.

"엄마 나 찹쌀밥 못 먹는다니까. 배 아프다고!!! 아주 내가 백 번은 이야기했겠다."

곧바로 엄마는 마치 처음 듣는 이야기처럼 "그러니? 왜 배가 아프데? 찹쌀밥이 얼마나 맛있어!!! 김 싸 먹으면 정말 맛있는데..."

내가 못 먹는 것을 기억이라도 하는 날은 "찹쌀 50프로만 넣었어!" 라며 나를 배려했음을 강조한다.

그리고 다음번엔 여전히 찹쌀 100프로로 구성된 반짝반짝 빛나는 밥을 가져오신다.


이제는 그러려니 하는 마음으로 '엄마가 나이 들어 그렇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찹쌀밥을 받아들일 때쯤 내 브런치에 댓글이 달렸다.

다른 사람이 아닌

'남편이 내 글에 댓글을 달다니'


남편이 댓글을 단 글은 깐죽거리는 남편이 꼴베기 싫어 쓴 글로 다음과 같다.


그리고 나는 글의 마지막에서 깐죽거리는 남편에게 맛있는 멜론을 주지 않겠다는 각오로 글을 마쳤다.

하지만 마음 약한 나는... 퇴근한 남편에게 멜론을 주고 말았다.

퇴근하자마자 "힘들었지? 멜론 줄게"라는 상냥함으로 맞이한 아내가 얼마나 괜찮은 아내냐며 나 혼자 어깨뽕을 잔뜩 넣을 때쯤... 남편은 나를 보며 말했다.

"난 멜론 안 좋아해. 너한테 수백 번은 말했는데..."

나는 말도 안 된다며 손사래를 치면서 "무슨 오빠가 멜론을 안 좋아해? 좋아하잖아. 잘 먹잖아. 마트 가면 멜론 꼭 사잖아."

"그건 너랑 다민이가 좋아하니까. 근데 난 멜론 별로야. 식감도 싫고. 암튼 안 좋아해."


하지만... 남편은 알고 있었다.

내가 다음날이면 멜론이 달다고, 너무 맛있다며 꺼내 줄 것을...

그래서인지 남편은 늦은 저녁 퇴근길에 나의 글에 이런 댓글을 단 것이다.

16년을 같이 살면서 나는 남편이 멜론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여러 차례 이야기했겠지만...

내 입에 달고 맛있는 멜론이 누군가의 입에 별로라는 생각은 자꾸 잊어버리나 보다.


어쩌면... 무를 좋아하는 재민네 아줌마도,

찹쌀밥을 고수하는 우리 엄마도,

늙어서가 아니라...

그저 모든 세상은 자신을 중심으로 돌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을 살면서도 옆사람을 배려하려고 노력하고, 더 많은 것을 주려고 애쓰고, 사랑하기 위해 마음을 다 잡지만...

'무', '찹쌀밥', '멜론'은 자신에게 너무 강력한 것이라... 주변이 자꾸 들리지 않았나 보다.


이 글을 쓰며 설렁탕을 좋아하지 않는 큰언니에게 이야기하고 싶다.

"만날 때마다 설렁탕 먹을까 물어봐서 미안해. 언니가 설렁탕을 싫어한다는 건 두 번 세 번 생각해야 기억이 나. 나는 너무 맛있어서..."


이제는...

'내 취향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내가 싫어하는 걸 평생을 말해줘도 모른다고'

'배려심이 없다고'...

너무 상대를 탓하지 말아야겠다.


다들 자신의 취향에 길들여져 상대의 취향을 기억하기까지 로딩 시간이 좀 걸리는 것 뿐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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