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맨날 손만 잡고 자는거야?

by 이한나

사람 나이로 60이 훨씬 넘었다는 우리 집 반려견 사랑이의 성욕은 매일매일 끓어오른다.

오늘도 어김없이 사료 한 그릇을 먹고 배가 불렀는지 딸아이의 발에 매달려 눈뜨고는 보기 민망한 자세로 엉덩이를 흔들어댄다. 딸아이는 다리를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하면서 "야!!! 성욕 좀 조절할 수 없어?"라는 말만 해댄다. 방에서 나온 남편은 혀를 끌끌 차며 딸아이 옆에서 춤을 춰대는 사랑이를 살짝 밀어내고는 "사랑아~ 언니한테 왜 그러냐!!! 언니한테 그러면 되겠냐 안 되겠냐?!!"라는 말로 머쓱한 상황을 마무리한다.


꾸지람을 아는 건지 사랑이는 조용히 소파로 돌아가 앉는다.

사랑이의 눈빛이 오늘따라 쓸쓸해 보이는 건 뭘까? 나는 사랑이를 따스하게 안고는 위로해본다.

"사랑아! 그렇게 하고 싶니? 우리 강아지~~ 그렇게 끓어오르는 성욕은 아빠한테 주면 안 되니? 자 앞발 내밀어봐! 성욕 전달!!!!"

남편은 한순간의 머뭇거림도 없이 두 손을 펼치고 "성욕 반사!!"를 크게 외쳐댄다.

"여보! 왜 반사해??? 지금 충분하다고 여기는 거야?? 뭔 놈의 반사야!! 빨리 사랑이 성욕 받아!!! 여보 40대라 꺾이니까 빨리 받아!!!!"

남편은 코웃음을 치고 가슴을 내밀며 느끼한 표정으로 나불거린다.

"오빠 안 죽었어~~ 오빠 쌩쌩한 거 알지? 매일 운동하는 남자야!"


그저 웃는다.

오빠라고 부르기는 조금 민망한 내 앞에 있는 이 아저씨... 이제 제법 늙었다.

침대에서 일어날 때면 "아이고~", "아휴~", "끄응"의 음향효과를 자동으로 재생시키는 사람이다.

요즘 부쩍 피곤함을 느끼는 남편이 내게 조심스레 물어본다.

"한나야... 나 암보험 있지? 가입한 지 얼마 안 된 거 있잖아~ 나 검사하고 싶은 게 있는데... 어느 정도 지나야 진단금 받을 수 있어?"

나는 깜짝 놀라 "어디 아파? 진단금이 문제야? 빨리 검사부터 받아야지!"라고 말하니... 남편은 두 손으로 자신의 목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나 말이야... 이 목 부위가 이상해. 전에도 갑상선에 물혹 있다고 하기는 했는데... 계속 불편하네... 이런지 꽤 됐어. 그리고 나 요즘 너무 피곤하기도 하고... 아무래도 문제가 있는 거 같아..."


나는 재빨리 영상의학과에 예약을 하고, 남편의 갑상선 검사일자를 기다렸다.

시간이 흘러 예약 일자에 함께 한 나는 초음파 검사를 마친 남편을 향해 조심히 물었다.

"괜찮대?"

남편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뭐가 있긴 한가 봐... 의사가 내가 불편한 곳을 한참 보면서 '여기 맞죠?'그러더라고.... 솔직히 별거 아니면 그 자리에서 별거 아니라고 말해주잖아. 진짜 걱정이네... 에휴... "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자 무거운 발걸음으로 터벅터벅 진료실로 걸어가던 남편.

나는 남편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한 달 전 나 역시... "모양 자체가 위암일 확률도 있어 세 군대의 조직을 떼어냈습니다. 아닐 수도 있으니 걱정 마시고요. 일주일 뒤에 다시 내원해주세요."라는 말을 의사로부터 들었다.


일주일의 시간이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결과를 듣는 날 만큼은 나 역시 마음이 불편하기도 했다.

남편은 위암이라는 말을 들으면 내가 많이 놀랠까 싶어 한사코 진료실에 같이 들어가겠다고 했지만... 나는 온전히 내가 감당하고 싶었다.

"오빠... 나는 그냥 혼자 듣고 싶어. 그냥 그러고 싶어. 내가 듣고 와서 이야기해줄게... 오빠가 있으면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어도 못 물어볼 거 같거든... 그러니까 기다려줘~ 내가 나오자마자 수신호로 알려줄게. 자!!! 나 사진 한 번 찍어볼래?~ 봐봐 내가 이렇게 OK 사인을 보내면 나는 암이 아니니까 오늘 돼지갈비를 먹겠다는 신호야! 알겠지? 만약 위암이면... 음... 이렇게 슬픈 표정 ㅠㅠ를 손으로 표시할게. 알았지?? 나올 때 내 손 모양 잘 봐!!!"


그렇게 나는 진료실에 들어갔고...

진료실에서 나오자마자 남편을 향해...

'OK모양'을 한 채로 춤을 추며 걸어왔다.


이제는 갑상선을 검사한 남편의 차례였다. 나 또한 진료실에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남편을 기다렸다.

진료실에서 검사 결과를 다 들었는지 남편은 조용히 진료실을 빠져나와 나를 보며 자신의 목을 다시 쓰다듬는다.

그러더니 내 옆에 앉아 나지막하게 나를 부른다.

"여보..."

"응... 뭐래?"

"나 갑상선 아픈 거 아니래. 그냥 임파선이 부은 거래. 안 아파서 약도 안 먹어도 된대."


다행히 우리는 안도의 미소를 지으며 손을 꼭 잡고 병원에서 나왔다.

언제부터였을까?

-결혼식보다 장례식을 더 많이 찾아가게 된 우리들.

-먹는 영양제가 자꾸만 늘어가는 우리들.

-하루 멀리 이동했다 하면 삼일은 골골대는 우리들.

-건강검진만 했다 하면 꼭 추가 검사를 받으라고 나오는 우리들.

-그리고... 여행에 가서 로맨틱한 침대에 누워도 '손'만 잡고 잠이 드는 우리들...

이렇게 우리 부부는 서서히 노화현상을 맞이하고 있었다.


'동지애', '전우애'로 산다고 말하는 선배들의 결혼 이야기를 들으며 코웃음을 칠 때도 있었다.

'난 매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뜨겁게 사랑할 거야! 아줌마 아저씨들이 하는 그런 '가족'같은 사랑은 하지 않겠어!'라고 조잘거렸던 내가...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았다.


불같이 뜨겁지는 않지만 따뜻한 사랑.

두근대지는 않지만 편안한 사랑.

그렇게 우리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다른 형태의 사랑을 만나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아주 고요하면서도 잔잔한 사랑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를 느낄 수 있다.


나는 지금의 이 사랑을 기억하며... 갑작스럽게 내 심장을 강타하는 두근거림과 설렘을 사모하지 않겠다고 다짐해본다. 혹시 그런 일이 생겨도(살짝 나도 모르게 미소 지어짐) 어린 시절 엄마 옆에서 본 드라마를 기억해 볼 것이다. 실컷 바람피운 남편이 아내가 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고 사투를 벌일 때 눈물로 호소하던 바로 그 장면을 말이다.

드라마의 몹쓸 남편은 무릎을 꿇고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나는 두근거리고, 설레고 미치도록 불같은 마음만 사랑인 줄 알았어. 근데 살다 보니까 언제부턴가 당신에게 그런 감정을 못 느끼겠더라고.... 그래서 그게 사랑이 아니라고 착각했던 거 같아.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근데 지금 생각해보니 결혼한 내가 회사에 가서 당신 생각에 가슴이 떨리고, 두근거리고, 보고 싶어 미치겠는 그런 불같은 사랑을 한다면 일도 못하고 아무것도 못했을 거야... 그럼 내가 어떻게 가정을 유지할 수 있었겠어?"


우리는 각자 우리의 삶에 어울리는 사랑을 하고 있다.

절대 그 사랑은 하찮지 않기에... 오늘도 그 사랑을 돌보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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