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과 향수병
나의 십대 후반과 이십대, 그리고 삼십대 초반을 보낸 일본. 2000년 3월초, 한국에서 일본으로 가던 날, 섭섭해서 우시는 할머니와 헤어지던 순간이외에 나는 대체적으로 담담하고 씩씩했던것같다.김포공항 2층의 출국장의 모습은 그때나 지금이나 너무 비슷해서 여권을 출국장의 심사관에게 보여주고 들어갈때마다 그날 뒤에서 우시던 할머니가 생각나서 가슴이 저리곤하지만 그것도 추억이니 굳이 지우려고하지는 않는다.
일본에서의 생활이 13년인가 14년째 되던 해, 이대로 살면 그냥 교포가 되어 죽을때까지 일본에서 살겠다싶었다. 삶은 안정적이었고, 회사생활도 바쁘긴했지만 꽤 만족스러웠다. 그때 더 나이가 들기전에 다른 나라도 가보면 어떨까라는 생각만 하지않았더라면.. 혹은 생각만 했더라면 난 아마도 그 당시 사귀던 남자친구와 결혼을 하고, 어쩌면 애엄마가 되어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가보기로 결정을 했고, 싱가폴로 떠났으며 그날, 일본을 떠나던 날, 한국을 떠나던 날처럼 씩씩하게 출국을 했다.
그리고 한반년동안 나는 향수병에 걸려서 자주 울었다. 일본에서의 생활이 나에게 너무 익숙해져버린 탓이었을까, 별다른 연락없이 조용히 떠나온 친구들에게 미안해서였을까, 나는 집에 가고싶었다.
매년 겨울, 스웨덴으로 출장을 가곤했는데 그해에도 어김없이 스웨덴행 비행기를 탔다. 그리고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을때, 연례행사를 마쳤다는 안도감에 긴장이 풀려 바로 잠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 눈이 떠졌을때 기내는 불이 꺼져있어 캄캄했고 주변사람들 대부분이 자고있었다. 앞으로 얼마나 더 가야하는지 시간을 보려고 비행안내의 스크린을 켰는데, 목적지가 동경이 아닌 싱가폴이라고 적혀있는것을 본 순간, 잠이 덜 깬 상태에서 비행기를 잘못탔다는 생각에 덜컥 정신이 들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난 일본을 떠났으며 이제 싱가폴이 집이라는 생각이 들었을때 타지생활 14년 중에 제일 서럽게 울었던거같다.
그 날 이후, 나는 일본을 잠시 묻기로했다. 돌아가고싶은 마음때문에 지금 내가 직시해야하는 현실을 자꾸 피하고싶지않았다. 생각하면 더 가고싶었다.
그렇게 삼년반이 지났다. 그리고 친구가 연락을 해왔다. 결혼식에 초대를 받았고, 장소는 동경이었다.
다음주에 나는 일본에 간다.
여행은 귀찮거나 설레거나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기마련인데 지금은 꼭 프레젠을 앞둔거같이 긴장이 된다. 가고 싶지만 가기 싫고, 보고 싶지만 보기 싫은 뱃속이 싸한 이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