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에는 대청소
이 집에 이사온지 사년이 되어간다.
그리고 집에 뭔가 물건이 많아졌다.
막 이사왔을때는 수납공간이 많다고 좋아했었는데 요즘엔 항상 빈 공간을 찾아다니는거 같다.
예를 들면
한국에서 책을 배송받았는데 책장에 빈 자리가 없다.
친구 아들이 선물로 준 그림의 긴머리 예쁜 공주라기가 나라길래 기쁜 마음으로 액자에 넣었는데 선반은 이미 다른 잡동사니로 가득하다.
문득 생각해보니 한집에 이년이상 살아본게 열여덟살 이후 처음이다. 알게모르게 쌓인 짐들은 일이년에 한번씩 이사하면서 자연스럽게 정리가 되었던 덕분에 대청소를 한 기억이 고등학교때 이후 전혀 없음을 깨달았다.
구정연휴로 남편도 놀고있겠다 대청소를 해야지싶다.
참고로 남편은 연필한자루까지 제자리를 정해놓고 사는 사람이라 항상 완벽하게 깔끔하게 지낸다. 자러갈때 나는 추워서 입고있던 가운을 침대 옆에 벗자마자 바닥에 떨궈놓고 이불안으로 기어들어가는데, 그는 추운데도 불구하고(우리집은 겨울에 난방이 안되고 바닥은 대리석이라 양말을 안신으면 발이시렵다) 가운을 벗어 모두 칼같이 접어서 옷장에 넣어놓고 침대로 온 후, 슬리퍼의 발꿈치를 맞춰서 벗어놓고 이불로 들어온다. 포근한 침대안에서 그런 그의 모습을 매일 구경하며 참 피곤하게 산다고 생각하곤하는데 그나마 나보고 똑같이 하라고 안해서 다행이긴하다.
생각할 필요도없이 대청소가 필요한 곳은 세탁방이다.
말이 세탁방이지 그 방은 우리집의 모든 집동사니가 모두 다 들어가있다. 코스트코에서 사온 키친타올이나 고양이 사료, 맥주나 와인, 계절에 안맞는 커텐이나 쿠션등등 대충 갈곳이 마땅하지 않은 짐들이 다 들어가 있는데 그나마 약간 남은 공간에서 빨래를 널기에 세탁방이라고 부르고있다.
일단 세탁방을 깨끗히 치운 후 지금까지 운동하면서 사모은 도구들을 그 방에서 쓰고 싶다고했더니 갑자기 이번 휴일의 의미라도 찾은듯 소파에서 티비보던 남자가 벌떡 일어나더니 미친듯이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무서워
난 마음의 준비가 아직 안되었는데...
그는 이미 방안의 쓰레기(?) -내부분 내꺼- 를 네종류로 분류한 후 나에게 질문을 쏟아댄다. 버릴래? 주말 플리마켓에서 팔래? 친구중에 이거 필요한 사람 있어? 아니면 그대로 보관할래?
그저 대답만 하면 되는데 그게 쉽지가 않다.
그리고 이번에 느낀 사실인데 난 박스와 가방을 모으는 습관이 있다. 플레이스테이션3을 6-7년쯤에 일본에서 샀는데 박스를 싱가폴까지 가지고 갔다가 대만에 이사올때도 챙겨왔다. 맥컴퓨터 박스도 못버리고 구석에 박혀있었고 하물며 진공청소기 포장박스까지 발견한 남편은 버리고싶어서 무조건 1번(버리기)을 외쳐댔다.
결국 hoarder 라는 소리까지듣고 멘탈이 반쯤 붕괴 된 이후 짐들의 갈곳이 정해졌다.
액자 놓을 장소를 찾다가 신년이라는 타이밍에 혹해서 남편이 바라던 대청소를 하게된 느낌이 드는게 뭔가 당한것같은 느낌을 버릴 수 없다. 그렇지만 대학생때 나의 한여름밤을 불태웠던 플스게임들이 다소곳히 들어있는 박스를 발견 한 나는 그저 행복하기만 하고, 조용히 구정연휴가 지나가길 바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