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갱춘기 13.
두 번째 꽃잎을 쓰게 된 건, 정말 생각지도 못한 순간이었다.
뭘 해도 속 터지는 딸의 일상은 변함이 없고, 대화의 물꼬가 터진 것도 아니었다.
그저 내 마음을 정돈하겠다는 신념으로 집안 구석구석 대청소를 하면서 나온
남편과의 추억영상에서 시작됐다.
남편과 나는 CC로 영화과엘 다니면서 짧다면 짧고 길면 긴 한 학기라는 시간을 보냈다.
우린 한눈에 서롤 알아봤다.
이유는 딱 봐도 서로가 가장 늙수그레하고 어디든 겉도는 느낌에서 오는 동질감이었다.
그 나이에 돈 안 되는 영화를 공부하겠다는 남자도 여자도 드문 시기였다.
불꽃이 파팍 튀기보다 친구 같았고, 배고플 때 간식을 나눠먹기도, 버스를 잡아주기도, 과제를 같이 하기도 하면서 자연스레 커플이 되었다. 싫지 않았다. 그간 고생이 모두 씻겨나가는 시절이었으니까.
1997년, 가정용 디지털 캠코더가 보급되면서 남편과 찍은 영상이 많았다.
그는 나를 위해 대본을 쓰고, 학과 생활을 기록하는 등, 지금으로 치면 브이로그 같은 영상을 많이 남겨두었다. 우린 데이트할 때 학과 동아리실에서 그 영상을 영화처럼 감상하길 좋아했는데.
남편이 그렇게 가버리고 시댁식구들에게 모진학대를 당하면서 대부분 버렸다.
지금 남아있는 건 그가 나를 사랑하는 모습을 담아둔, 나를 위한 영상들이었다.
그를 미워하진 않았다. 하지만 그의 얼굴을 보고 싶진 않았다.
최초의 행복이자, 가장 큰 상처를 남기고 떠난 사람.. 나는 그에게 추억과 상실, 그리고 배신감을 느꼈다.
다만 그 시절 사랑에 빠졌던 나를 기억하고 싶었다. 그 시절의 나는 행복했었으니까.
적어도 사랑에 빠진 여자는 행복해 보이니까. 지금의 내 칙칙한 얼굴과 비교할 순 없으니까.
그건 화장으로 가릴수도 없고, 단순히 젊어져서도 아닌, 사랑이라는 묘약이 준 선물 같은 것이니까.
그 행복을 다시 느끼고 싶었다.
짧은 테니스치마, 야구점퍼, 긴 생머리... 한 손에 든 문학서적과 작은 가방까지.
주희는 그때 그 시절 모교를 찾았다. 학교는 시간만 흘렀을 뿐 모든 게 정지된 것 같았다.
게시판이 바뀌고, 학교버스가 커지고, 학생 스타일만 바뀌었을 뿐.
모든 게 그대로였다! 그게 좋았다. 마치 나도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쾌감!
다시 돌아온 캠퍼스.
학교는 가을 축제 기간이었다. 가을학기를 다니지 못하고 그만둔 바람에, 겪어보지 못했던 축제였다.
학과별로 나와 주점을 준비하고, 타로카페를 열고, 치어리딩 연습을 하는 등 축제준비로 바빠 보였다.
영화과에선 아마 영화상영을 할 테지.
영화과는 예상대로 영화 상영 이벤트를 준비하는 것 같았다. 오래된 고전영화 상영시간표가 보였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시민케인.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로마의 휴일. 첨밀밀..
우린 그 시절 고전영화에서 낭만을 공부했었으니까.
뭘 볼까 고민하는데 누군가 나왔다. 아직 상영 전이라고, 어떤 영활 볼지 미리 예매하면 좋다고..
간단하게 이름, 전화번호를 적고 오늘의 설렘을 담은 '로마의 휴일'을 골랐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유럽으로 나를 실어갈 만한 영화였다.
그렇게 진짜 대학생처럼 곳곳을 구경했다.
과 건물에 있는 강당에 찾아갔더니 역시나 치어리딩 연습이 한창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하준이었다! 어떻게 된 거지?
두근거리는 마음 진정시키며 얼른 문을 닫았다. 믿을 수 없었다.
'혹시 걔도 여기 학생일까?'
주희를 본 것 같기도 했지만 잽싸게 빠져나와 동방으로 향했기에 잡힐 리 없었다.
'아니지. 내가 뭘 그리 잘못했다고 이렇게 숨어? 당당해! 잘못은 그놈이 했지!'
다행히 동방엔 아무도 없었다.
그곳엔 예전부터 지금까지 졸작비디오부터 필름과 영사기.. 졸전 대본집 등이 쌓여있었다.
1997년 작품집을 찾아봤지만, 그와 난 졸업할 수 없었기에 이름을 찾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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