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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틈 Oct 21. 2024

여명과 황혼의 궤도

밤과 낮을 동시에 볼 수 있다면... 삶과 죽음도 그럴까?

(사진-김틈 )

‘누리호 발사 속보입니다. 누리호는 한차례 발사 연기 후

 예정된 발사 시간에 발사대를 이륙해서

 목표한 ‘여명 황혼 궤도’에 두 번째로 안착했습니다...‘


“세상 좋아졌어~ 우리가 우주선을 다 쏴 올리고 말이야....

 어이~! 요원!! 흐흐 경호요원!! 요즘 왜 그리 얼굴이 좋아~? “


“아 점장님.. 나오셨어요? 뭐 좋긴요... 운동 다시 시작해서 그런가 봐요.”


“아 좋은 대학 태권도 학과 나오면 우리 편의점 옆에 딱 태권도장 차리면

 얼마나 좋아... 애들이 운동 끝나면 여기 들러서 음료수랑 간식 사 먹고.. 응? “


“하하... 네...”


“근데 뭔 우주 궤도이름이 막 XY123 뭐.. Z786 이런 것도 아니고...뭔 여명과 황혼 궤도레? “


“보니까... 그 계속 태양열 전지에 빛을 받을 수 있는 말 그대로 아침태양과 저녁태양 모두를 만날 수 있는 위치가 거기라네요....”


“오... 우리 요원양반 아직도 난 그대가 특수요원이라고 생각해... 속이고 있는 거지... 이렇게 똑똑하기까지 하잖아?.... “


"아.. 나 참.. 아니라니깐요!!! 하하...”


여명과 황혼궤도 모순적이고 매력적인 이름이다. 선우는 이제 아침을 적응해가고 있고 밤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아직은 오토바이 수배자의 행방이 묘연해서 긴장하고 있지만. 경호 원칙에 따라서 다른 동선, 다른 시간, 다른 각도로 요 보호자 선우의 상황을 점검했을 땐... 딱히 위험요소가 보이지 않는다.


선우는 여명과 황혼궤도에서 그동안 잃어버렸던 빛을 재충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그냥 그놈이 검거만 되면 마음이 편할 것도 같은데... 편의점 알바는 심야 시간을 피해도 꼭 밤까지는 근무하고싶어하는 고집을 피우는 선우의 요청에 점장도, 어머니도 모두 허락했다. 경찰도 오히려 그런 알려진 장소가 범행은 어려우니 안전하다고 했다. 물론 나는 사설 경호원으로서 편의점 근처를 늘 지키고 있다. 영업에 방해가 안 되는 선에서 선우의 얼굴을 바라보고. 그녀에게 응원의 미소를 보내주고 있다. 유리창 너머의 그녀가 웃으며 입모양으로 말을 건넨다.


‘들어와~ 덥잖아~’


손으로 부채 시늉을 하면서 내게 말하는 그녀, 나는 경례하는 시늉과 함께 끄떡없다는 표정을 지어준다.


‘괜찮아~, 여기가 더 편하고... 일하기 좋아!’


다 알아들어놓고선 안 들린다는 엉뚱한 표정의 선우. 귀엽다. 저렇게 귀엽고 밝은 아이가 왜 어둠에 숨어 있었는지 친구의 죽음이.. 예찬이라는 친구의 죽음이 걷힐 수 없는 어둠이었을 수도 있지만... 저 빛이. 저 빛나는 얼굴이 어떻게 그 어둠에 가려질 수 있었을까. 그래도 가끔 나 덕분에 저렇게 웃는 건가 싶어서 나와 어머니, 점장님도 모두들 선우의 변화가 신기하고 좋다.  


땡그랑~! 문소리엔 조건반사. 다행이 선우다.


“잠깐 와봐~!”


“안돼 근무 중이야... 너도 근무 중이고...”


“아.. 잠깐만... 창고에 너무 무거운 게 있다고...”


“응? 야... 내가 경호원이니 아르바이트생의 아르바이트생은 아니잖아?... 에이...”


일부러 그녀가 근무하는 편의점 밖에서 일부러 티가 나는 검은 정장을 입고 서 있다.

이상한 놈 보듯 지나가는 사람들 어디서 몰래 예능 카메라 촬영하는지 두리번거리며 카메라를 찾는 사람

검정 선글라스에 부동자세로 서 있을 땐 마네킹인 줄 알고 쿡 찔러보는 사람까지... 부끄럽기도 하고 좀 황당하기도 하지만 일부러 여기 서 있다. 일부러 그놈에게, 선우를 위협했던 존재들에게 내가 여기 있다고. 선우에겐 항상 내가 있다는 걸 알리기 위해서... 물론.. 덥다... 봄부터 시작한 이 일이 여름엔 좀 버겁고 덥고.  모기가 물기도 해서 난감하기도 하다. 그래도 선우가 있어서 절로 웃음이 난다. 계약기간과 금액이 있지만. 전담경호를 하도록 회사에서 배려해 줬고. 당분간은 학교나 다른 일보다는 선우를 지키는 일에만 집중하는 게 마음이 더 편하다.


“아유... 땀...”


“괜찮아. ㅎㅎ 이렇게 땀 흘리고 저녁에 씻으면 정말 개운해... 무거운 게 뭐야?. 콜라박스 이거?"


“아니... 좀 더 안쪽에... 있어 들어가 봐.”


“우와. 여긴 춥다. 너 안 추워? 반팔 입고?”


선우의 하얀 팔과 하얀 목과, 눈동자가 얼음처럼, 겨울왕국의 안나처럼 보인다.


“어딨... 더라...”


선우도 파르르 냉장고의 냉기에 몸과 입술을 떤다.


“일단 이 외투부터 입어! 갑자기 찬 바람맞음 감기 걸려!”


“너나 입어~ 어머! 너 몸에서 연기가 나... 밖이 엄청 뜨거웠구나... 사실... 그런 것 같아서 좀 식히라고...”


“아... 그리고 들어달라는 거... 그거 여기! 아이스 키스!”


CCTV 사각지대에서 갑자기 다가온 차가운 얼음 같은 입술, 짓궂지만 밝아진 선우의 모습.


선우는 그간 알던 모습과 달라졌다.  어쩌면 그 반대편의 성격처럼 보였다.

거침없었고. 늘 먼저였고. 두려움 없이 실행하고 다가서고 본인의 생각이나 원하는 바는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실천에 옮겼다. 애정표현까지도...


“너.. 진짜 용감하구나. 너 연약한 청개구리가 아니라. 이제 보니 두꺼비다.”


“응 청개구리? 두꺼비?”


“아... 처음 봤을 때 청개구리 같다고 생각했어...”


“신기하네... 나도 방에만 갇혀있다가 밤에만 나올 때 스스로한테  청개구리 같단 생각을 했는데... 잘 소리내어 울지도 못하는... “


“지금은 용맹한 두꺼비 장군님이셔... 걱정 마...”


“장군에게 예의를 갖춰라. 아님 네 이놈의 목을...”


“이 땀투성이 목을 어쩌시려고요.... 경호원 지킬 경호원을 새롭게 채용해야겠네...”


“경호원의 경호원이라. 웃긴다.”


“웃기긴... 선우 네가 그렇게 날 지켜주고 있어... 그만 나가자.”


다시 더운 열기와 공기가 훅 하고 품으로 들어온다. 편의점 뒤편에 창고를 지나 사무실 옆으로 작은 문이 있다. 사장님이나 아르바이트생만 아는 문이고 디지털 번호키가 있어서 안전하지만... 그래도 한 번씩 살펴봐야 한다. 다시 금방 더워지는 공기와 몸... 선우 덕분에 조금은 따뜻한 것처럼도 느껴진다. 차갑게 느껴지던 선우의 팔과 눈빛이 여전히 목덜미와 얼굴에 닿는 것 같다. 눈이 하얗게 쌓인 산을 보면 오를 수 없는, 결국 오르려다 실패할 느낌이 들어서 우울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저긴, 저 높은 얼음산은 언젠가는 반드시 올라갈 수 있는 이 시원함과 차가움 같을 거다. 신선한 차가움. 선우의 하얀빛은 여린 하얀빛이 아니라.  파타고니아의 만년설의 하얀빛이었다.  


어...? 파타고니아 그림이 그려진 셔츠를 입은 남자... 흰 모자.

이번엔... 검은색 모자... 뒤집어쓴 건가... 아까 지나갔는데...? 또... 지나갔다...!

살짝 느껴지는 날카로운 짐승 같은 냄새와 기분. 같은 티셔츠 다른 모자... 살기 느껴지는 눈빛이 바닥에 남겨진 듯한 몸의 움직임. 선우... 선우가 괜찮을까? 꼭 편의점 건물을 두고 술래잡기를 하듯 수상한 티셔츠 남자와 뱅뱅 돈 느낌... 뒤 돌아보니 선우가 카운터에 없다. 아직 창고에서 물건 정리와 재고처리를 덜 했나...?


“선우!! 선우야!!”


창고문은 열려있는데... 인기척이 없다. 카운터도 비어있고. 내가 닿을 수 있는 위치 밖으로 벗어날 땐

알려달라고 했는데... 창고에서 날 안아줄 때 스마트워치도 없었다. 불편하다고 풀어놓고 카운터에 올려둔 채로... 설마.. 아냐...


“선우!”


선우의 전화기도 카운터에 올려져 있다. 건물 뒤편 창고 문과 화장실 쪽으로 급히 뛰어가서 살펴보니 잠겨있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열어봤는데도 아무도 없다.


잠시 너무나도 잠시인데... 급하게 경찰 연락처에 전화를 하는데 손이 덜덜 떨리고 있다. 제대로 번호가 눌러지지 않는다.


'선우야... 제발. 선우야...'


“어머니! 선우 집으로 갔나요? 아니에요? 네! 아니요... 아닙니다.  제가 찾아볼게요. 일단 경찰하고 연락 좀 해주세요.. 네네! “


처음 산새마을 꼭대기까지 뛰어갈 때처럼 심장이 터질 것 같고 두려움이 폭발할 것 같다. 전력질주로 편의점 건물과 그 주변 블록을 다 뛰어서 살펴보고 있다.


지금, 내가 숨을 쉬고 있는 건지 숨을 쉬지 않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들이 천천히 보이고 선우의 모습만 빈 눈금으로 남겨둔 것처럼 한 마리의 커다란 독수리처럼

선우를 찾고 있다.


찾았다! 머리끈.


하늘색이 잘 어울린다고 해서 사줬던 큐빅 브로치가 박힌 머리끈이 떨어져 있다.


신축 공사 중인 건물 방향.


경찰 연락도, 위치 확인도 할 겨를 없이 미친 듯이 그 건물을 향해 달려간다.


“선우야!!!”


<피 묻은 입술에 키스>


“구급차가 오고 있으니 조금만 버텨요

여기 응급키트 좀 줘봐! 지혈대도 가져와!!”


앞이 하얗다. 더운 여름날인데... 목도리 없이 잠 옷 바람에 집 밖에 나선 겨울 아침처럼 온몸이 에이게 아프고 춥다.


또 나 때문일까? 뭔가 신이든, 귀신이든, 우연이든 나를 질투하고 미워하는 그 무엇이든 내 웃음에 벌을 주는 건가... 찬유의 흰 셔츠가 붉게 적셔져 있고 눈은 졸린 아이처럼 깜빡이고 있다. 내 피를 다 짜내서 넣어줄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 간절히.


“이봐요! 아가씨 괜찮아요? 윤 순경! 저분 다치신 곳 없는지 살펴봐. 쇼크 상태이신 것 같은데...”


‘치-익! 순마 35! 순마 35! 광수대 지원 포함 경력 예상 도주로 이동 중. 피해자 지원 후 산새마을 인근 순찰 강화바람 치익-’


”전 괜찮아요. 찬유. 찬유 살려야 해요!! 저 때문에 칼에 찔린 거라고요. “


순식간이었다.

편의점 냉동창고를 정리하고 찬유가 다시 가게 앞으로 나가는 그 짧은 사이에 그렇게 온전한 믿음과 평화로운 그 순간. 불과 5초에서 10초 사이에... 무언가 이상한 액체가 적셔진 손수건이 입을 막고 저항할 틈도, 소리를 지를 틈도 없이... 눈을 떠보니. 그땐 찬유가 나를 안고 내 몸 이곳저곳을 살피고 있었다.


”아... 나... 괜찮아! 뭐야? 아... 머리만 아파... 어떻게 된 일이야?... 여기 어디야? “


그때 까지도 기억은 통째로 사라져. 편의점 안의

달콤한 시간에 머물러 있었다.


”어디 봐... 헉헉. 다행... 헉헉... 이야... 아... “


말할 때마다 찬유의 가슴 부근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냉장창고에서의 따뜻한 몸처럼 따뜻한 피가 말할 때마다 나오고... 찬유는 점점 하얗게 눈 같은 얼굴빛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무슨 힘이었을 까? 온 힘을 다해 소리를 지르고 찬유의 전화를 열고 긴급통화를 걸었다. 일어서서 공사장  천막이 너머의 위치로 여기를 알려주고... 찬유를 안고 살피는 동안 근처를 순찰하던 경찰이 먼저 도착했다. 그때 까지도 찬유는 피가 흐르는 가슴을 누르면서 경찰에 이것저것 설명하면서 나를 더 걱정해주고 있었다.

불과 3분 정도 뒤 찬유의 얼굴빛은 하얗게 변해갔다.


119 대원이 오고 급히 응급처치를 하는 도중에

찬유의 심장이 한 번 멎었다.


어레스트! 를 외치는 구급대원들과 소생술을 받는 찬유의 몸은 축 늘어져 있었다.


나는 낭떠러지가 발아래 꿈틀대는 파타고니아의 얼음산 바위에 홀로 위태롭게 매달려있었다.

'살려줘...' 아니 '살아줘...'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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