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틈 Oct 22. 2024

좋은 사람은 없어. 좋은 상황만 있을 뿐...

배부를 땐 배고픈 눈물을 이해할 수 없다.

  캄캄한 큰 방, 조명도 켜지 않은 큰 저택의 한가운데 스탠드 하나만 은은하게 켜져 있고 세 여자의 표정은 마치 중세시대 공포영화처럼 기괴했다.


“그래... 아휴... 불쌍한 것들... 너네도... 세미말처럼 세미 엄마는 늘 힘든 일에 술에... 결국 못 버티고 간경화로 세상을 떠났다. 뭐 손쓸 틈도 없었지만 그때 선우아빠가 찾아왔어 울면서 빌더라고 수술비 5천만 원만 빌려주면 몸을 팔아서라도 갚겠다고... 그 말에 더 피가 거꾸로 솟아오르더라. 이제 막 집을 한 채 장만하고 통장에 사업비가 굴러가려고 할 때였어...”


엄마가 아빠를 그렇게 미워한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나를 아빠와 못 만나게 하려던 이유도..


“내가 날 버리고 간 놈이 만난 여자와 그 새끼들까지 챙겨야겠냐고. 말이 되는 소리냐고 했더니... 선우 널 봐서 한 번만 살려달라는 거야... 내가 선우 아빠 아니냐고... 그렇게 몇 번을 찾아와서 무릎을 꿀고 앉아있다가도 가고... 그때마다 어린 너랑 마주칠까 봐 조마조마하면서 일하는 삼촌들 통해서 쫓아내기도 하고... 참... 그 사람은 착한 게 맘 편히 착한 게 그렇게 나를 더 상처 주는 건지도 몰랐겠지... 그리고 몇 달 연락이 없더라고... 그리곤 왔어. 세미 엄마 떠나보내고 왔다고... 세미야... 너는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내가 그럴 수 없는 이유가 많았어....”


“알아요. 아니... 괜찮아요. 엄마는... 그 돈으로 병 고쳐도 또 술 먹고 또 그 병 걸렸을 거예요... 그리고 만날 나 때리면서 너네 아빠한테 가라고... 누군지도 모르는데.... 잘됐어요...”


엄마가 이야기하다 말고 나랑 놀란 눈을 마주쳤다.


“그렇게 두 아이를 자기 피 한 방울 안 섞인 아이들을 돌보다가 아마 세훈이 진학 문제 때문이었던 것 같다. 운동을 해서 빨리 돈 벌고 싶다고. 종합격투기를 배우게 해달라고... 역시 형편이 안된 것 같아. 아빠가 다시 찾아왔어. 이번엔 세훈이를 데리고 왔더라...”


엄마의 표정이 마치 여름날 태풍 때처럼 구름이 지나다가 해가 비치다가 다시 비가 퍼부었다....


“그 아이는 무슨 죄겠어. 죄지은 사람처럼.... 무능한 너네 아빠는 도와달라는 데가 나 밖에 없는 불쌍한 사람이었나 봐... 그런데 내 딸은 아빠를 보고 싶어 하며 외로워하는 내 딸은 저렇게 시들시들 불쌍하게 커가는데.... 남의 자식 데려다 놓고 교육비 달라고 하는 소릴 들으니 정말 영원히 안 봤으면 했다... 구걸할 거면 서울역 가서 하라고. 둘이 부자를 하던, 부부를 하던 여기 와서 한 번만 더 이러면 무단 침입으로 신고하겠다고!! 소리소리 지르며 쫓아냈어. 내 눈에는 그때 선우 밖에 안 보였던 것 같아....”


다시 먹구름의 표정


“그런데... 그럴 의도가 아니었는데... 세훈이가 벌떡 일어나서 나한테 그 말 취소하라고 우리 아빠 거지 아니라고!!! 라며 그 어린놈이 소리 울먹이면서 소리를 지르는데...”


다시 폭우의 표정


“너네 아빠가 애 손을 잡고 울고 있더라... 애를 잡고 애한테 끌려다니면서... 이 분은 좋은 사람이야. 아빠가 나쁜 사람이야, 아빠한테 하나밖에 없는 좋은 사람이야... 라며...”


옆에 세미는 미동도 없이 무표정하게 폭우뒤에 잎에 맺힌 빗물이 떨어지듯 정적 속에서 운다. 눈물만 뚝뚝 고드름이 녹듯 떨어지고 있다. 아무렇지도 않게 놀라고만 있는 내 표정이 가장 평온한 건가... 영혼이 나가버린 건가 모르겠다.


“그래 그 뒤는 세미 너도 알다시피... 심야에 배달 아르바이트 하다가 뺑소니로... 그만...”


“잠깐만!!! 엄마!!! 아빠가.. 죽었다고.?....”


원래 죽은 거나 다름없는 존재였지만. 가슴에서 약하게 이어져 있던 줄 하나가 아픈 소리를 내며 딱 끊기는 느낌이다... 신음소리가 새어 나온다....


“엄... 마.. 엄마..... 내가 딸이잖아. 유일하게 피를 받은... 아빠가 죽었는데.. 어떻게 나한테 이야길... 안 할 수가 있어.... 미워만 하고 살았잖아.....”


“선우야! 차라리 미워하는 게 슬퍼하는 것보다 낫지 않니? 네가 더 소중했어, 죽은 네 아빠보다. 그 사람이 자식대접받고 상을 치르고 떠나는 게 다 무슨 소용이니 산 네가 더 안쓰러운데...”


“아빠와 딸의 문제는 내가!!! 내가 생각할 내 문제잖아!!!!”


두 모녀와, 세미 세 사람의 알 수 없는 눈물과 흐느낌이 섞여서 괴상한 불협화음의 현대음악처럼 흐르고 있다.


“아이고... 내 팔자야... 그래... 뺑소니라 범인도 못 잡고 치료비도 병원비도 한 푼 못 받고... 그래서 세훈이는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범인을 잡겠다고.. 저렇게 돌아다녔고... 그러다가 세훈이가 어느 날 찾아왔다. 거칠고 강인한 모습으로 키도 훌쩍 자란 아이가 매서운 눈매를 갖고 나한테 찾아왔어...”


<좋은 사람은 없어 좋은 상황만 있을 뿐>


“찬유, 범인 잡혔어... 세훈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데... 우리 집 일이랑 좀 엮인 것 같아. 아빠랑... 그리고 엄마도... “


“응 나도 방금 경찰서에서 연락받았어... 너는 괜찮아? 많이 놀랐을 텐데...”


퇴원 짐들을 챙기면서 몸을 숙이거나 갈비뼈 주변으로 힘이 가해질 때마다 움찔하는 모습이 보인다. 섬세하게 티를 안 내려고 하니 더 어색하게 보이는 찬유의 몸 상태... 그래도 뭔가 이젠 둘이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이 된 것도 같은 묘한 기분... 내 마음의 상처가 네 몸의 상처와 연결된 것 같은 이상한 느낌... 처음 찬유 너를 봤을 때 느꼈던 가위눌린 채 옴짝달싹 못할 것 같은 그런 눈빛과 내 상황이 연결된 것처럼.


“이제.. 다 끝나고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선우 네가 나한테 걱정 말란 말을 하는 것 보니 진짜 끝난 것 같다.  그나저나... 그 세훈이라는 친구는 살인미수로 처벌받으면... 꽤 형량이 클 것 같은데... “


“엄마랑, 내가 선처 요청했고... 너도 선처 요청했으니 좀 좋아지겠지... 고마워 너 목숨이 위태로울 뻔했는데... 선처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


엄마가 굳이 병실로 찾아와 찬유에게 부탁을 했다. 불편 해할 테니 가지 말라고 해도 과일바구니며 잔뜩 들고 들어와서는 내 이야길 실컷 하다가. 그 세훈이란 아이의 잘못은 자기 잘못이기도 하다고. 자기가 이렇게 찬유에게 용서를 빌 테니. 찬유도 가능하다면... 그 아이를 용서해 달라고. 그냥 아무도, 한 번도 제대로 품어주지 못한 아이였고 유일하게 선우 아빠에게 사랑을 처음 받았는데... 그 아빠를 죽게 만든 사람이 선우엄마라고 생각한다고. 선우가 죄 없이 그 분풀이 대상이 된 거라고 자신이 중간에 막을 수 있었고 끊을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자신의 죄고 탓이니 용서해 달라고... 엄마는 전혀 보이지 않던 약하고 여린 사람이 되어 어쩌면 세상에 없는 죽은 아버지에게 용서를 구하듯 찬유의 손을 잡고 울며 용서를 빌었다.


“세훈이란 친구가 와서... 그런 말을 했데”


“응? 엄마가... 왔을 때 무슨 말을 한 거야?”


“응 지난번에 오셔서 탄원서 써달라고 하시면서... 그 세훈이란 친구의 진심이  뭔지... 이제 알겠다고. 어느 날 당장이라도 다 때려 부수고 말 것처럼 찾아와서는 유일하게, 단 몇 년 안 되지만 유일하게 행복했던 게 아빠 때문인데... 그 아빠를 그렇게 만든 게 매일 눈물짓게 만든 게 어머니인데... 그런데도 그런 아빠가 좋은 사람이라고 하니까 직접 만나서 묻고 싶었다고... “


“뭘...?”


“아빠한테 미안하지 않냐고. 왜 죽었는데... 한 번도 오지 않았냐고... 그게 서운했나 봐. 장례식장에 너랑, 엄마가 오길 바랐나 봐 그래도 피가 섞인 딸과 아내가 나타나면 영혼이라도 위로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혼자 화장터에서 계속 울면서 다짐했데... 용서하지 않겠다고... 그래도 자꾸 아빠 말이 떠올라서 한 번 온 거라고 울고 있기라도 바랐다고... 했데."


“엄마가... 아빠 관련 이야긴 나한테 그 뒤로도 안 해줘. 근데... 엄마는 내가 상처받거나 또 엄마랑 사이가 벌어질까 봐... 나한텐 말 안 했는데... 그 세훈이란 아이... 아빠를 정말 사랑했구나... 진짜 아빠였네... 기억도 희미한 아빠인데 어떤 사람인지 표정 윤곽이 그려지는 느낌이야. "


“응... 그런데 그 자리에서 어머니가 더 모질게 말한 모양이야... 선우... 너 이야길 하면서 말이야... 아빠도 없이 평생을 우울하게 살고 있는 애한테 미안하지도 않냐고 온갖 착한 척은 다하고 정작 우리 피눈물은 모르냐고...

 네가 무슨 상관이냐고... 그리 착하니 알아서 천국 잘 갔겠지... 이러시면서 문전박대를 했나 봐. “


“그래서 나를 타깃으로 그렇게...”


“그런가 봐...”


찬유는 말하는 사이사이 계속해서 내 눈치를 봤다. 내 표정을 읽으며 엄마의 이야기를 필터로 한 번 더

정화해서 내게 전달해 주는 것 같았다. 뭐든 순하게, 아프지 않게 나한테 해주려는 찬유의 마음은 희미하지만 예찬이랑 연결돼서 느껴졌다.


그냥 우리는 모두 하나의 영혼인데 여러 개의 몸으로 태어나 살면서 가끔 서로를 발견하고 알아보고, 때론 몰라보고 미워하고 죽이고 그러는 건가 예찬과 찬유와 선우와 세훈과 세미... 다 한 영혼 다른 몸뚱이로 엮여있는 느낌...


누구의 슬픔과

누구의 분노가

누구의 괴로움이 서로 분리되어있지 않은 상태인 것 같았다.



“이제... 다 끝난 건가? 찬유 너는 다시 운동하는 거 괜찮아?”


“선우야.. 나 엄청 강한 사람이거든. 마음이 약해서 그렇지 몸뚱이는 쇠야 쇠...”


“쇠는 무슨... 찌르니까 피나더구먼...”


“키키.. 뭐 어쨌든... 다시 운동은 마무리하고... 지도자 자격증도 따고 해야지...”


“응... 태권도는 선수하는 일 말고는.. 결국 가르치는 일이구나...”


“살아가는 것도 비슷하지 않아? 결국 살아가면서 또 잘 살아가고, 잘 연애하고, 잘 취직하고.. 이런 거 가르치잖아 서로... “


“그렇네. 인간사가 다 배우고. 가르치고 배우고 가르치고다...”


“근데... 하나는 예외인 것 같아.”


“뭐?...”


“사랑.”


“아!... 사랑...”


그래 사랑은 가르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강요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지. 처음 예찬이를 사랑하는 줄 모르고 함께 할 때 그냥 배운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예찬이가 베풀어주는 사랑을 내가 나도 모르게 반응했던 것들 같아. 배운다는 필터로 조금 모양을 바꾸고 순수하게 꾸몄지만... 우린... 뜨겁게 사랑했던 것 같다. 슬프지만.... 너무나도 짧게...


“좋아 사랑은 뭐 배우는 거 아니라니까. 인정 그럼 우리 수학여행 갈까?”


“수학여행?... 아... 사랑을 배우는 수학여행? 야... 선우 너 아직 어머니... 도 좀 마음이 힘드시고... 재판에도 왔다 갔다 할 텐데... 며칠씩 집 비우고 그래도 되냐?”


“찬유야... 넌 내가 여행 가자 이렇게만 말했을 뿐인데... 기나긴 숙박을 꿈꾸고 있는 거니?”


“아... 어... 그게 아니라... 음... 아 뭐 몇 박이 아니라... 아냐! 에잇! 야! 한 달이면 어떻냐!! 사랑하는데!!”


“그래...ㅎ 내 말이 그 말이 이라고... 이젠 그냥 솔직하게 말할래, 좋아하면 좋아한다고, 떠날 거면 같이 가자고...”


"그래. 나 니 경호원이잖아... 어디든 네가 가자고 하면 갈게."


교실에서 나란히 수업을 듣다가 눈을 마주친 아이들처럼 서로를 미소 속에서 조용히 바라보며 삶의 나이테를 한 줄 더 긋는다. 단단해져라... 단단해져라... 차가워진 바람이 응원해주고 있다.

이전 08화 사랑과 미움의 시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