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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틈 Oct 23. 2024

날짜 변경선 위에서 탱고를

0000년 00월 00일 00시 00분 01초, 이제 시작

  퇴원수속은 생각보다 복잡했다. 범죄 피해여서 병원비 산정도 다르고... 다행히 엄마가 병원 해결하라고 준 카드로 먼저 처리하려는데 찬유 엄마 아빠가 한사코 자기들이 하겠다고 하셔서... 엄마가 알면 제가 힘드니까 좀 도와달라고 읍소를 하고 퇴원비를 지불했다. 두 분은 천천히 맛있는 거 사 먹고 들어오라면 찬유에게 카드를 한 장 내어주고 자리를 비켜주셨다. 뭔가 설레어하는 표정과 마음... 따뜻하고 다정한 분들이다. 두 분의 뒷모습을 보며... 저런 시간을 보내는 건 큰 축복이구나... 갑자기 엄마가 불쌍하게 느껴져서 눈물이 핑 돌았다.


“뭐야... 이리 와봐~~! 또 왜 울어... 엄마 아빠 가셨지? 흐흐 일로와 봐!”


오랜만의 포옹이다. 지난번 나를 구하려다 칼에 찔린 부분에서 유난히 더 뜨거운 열이 나오는 느낌. 그리고

조금은 더 강하고 확신에 찬 힘으로 안아주는 느낌. 또렷해진 찬유. 찬유의 색깔이 더 짙어진 찬유.... 나도 그 옆에서 마치 보색대비처럼 초록 잎에 앉은 무당벌레처럼 검은 하늘에 켜진 노란 가로등처럼 선명해진다. 입술을 열어 나누는 키스가 좀 느끼하고 너무.. 어른스러우려고 애쓰는 느낌이 팍팍 드는 것 말고는....


“찬유.... 야!! 너 쇠가 아니라 황소니? 으... 축축해... 별로야.”


“어... 미안. 더 열심히 배울께."


“찬유야... 변태니? 키스를 누구한테 과외라도 받으시게?"


“변태라니... 인생 배우는 거 아니니? 좀 가르쳐주라...”


짓궂은 농담에 등짝을 맞고도 싱글벙글이다. 그냥 진작 이런 청춘으로 이런 가볍고 즐거운 웃음으로 만났어야 야 할 우리가 무슨 액션 영화라도 찍듯 험한 꼴, 힘든 꼴 지나고 나서야 이제야 제자리를 찾았다. 이제 20대의 사랑을 한다. 꿈같고 동화책 속 알 수 없는 나라에서 알 수 없는 공주와 왕이 된 것처럼 지금은 너무 예쁜 크레파스로 그려놓은 것처럼 눈에 비치는 모든 빛깔이 예쁘다. 찬유가 가까이서 웃을 때마다 향기 나는 지우개와 볼펜에서 났던 달큼한 향기가 났다. 초등학교 앞 문구점에 들어간 초등학생처럼 눈빛이 맑게 빛난다.


<용서의 시차>


“엄마... 어디 가?”


“응... 저... 이제 다시 추워질 텐데... 입추도 한 참 지났고. 가을이잖아...”


“그런데?”


“그... 아니다.”


“세훈...이라는 아이 거야?”


“응... 옷가지랑, 영치금... 그리고 아빠 물건 중에 안 버리고 둔 게 있더라. 목도리... 내가 짜준 건데.... 그거랑....”


“엄마... 아빠가 말한 데로...”


“응? 아빠가 말한 데로? 뭐?”


“ 엄마... 좋은 사람이야... 그런 것 같아 엄마. 속에는 좋은 사람이 있어. 생각해 보니 좋은 사람, 좋은 세상 이런 건 없는 것 같아. 그냥 좋은 상황, 좋은 조건, 좋은 순간만 있는 거지... 지금이 딱 그런 상황, 순간이네..."


 “얘가 무슨 도 닦는 소리야...”


“그냥 엄마가 좋을 수 없는... 좋은 사람일 수 없는 날들만 계속된 거... 였었지... 그냥 엄마한테 미안해 아마 나도 엄마한테는 그 좋지 않은 순간이나 조건 중에 하나였나 봐... “


“무슨 소리니? 너 하나 보고 여태껏 살고 있는 엄마를....”


“그러니까 말이야. 엄마가 엄마도 좀 돌보고... 아빠도 잊고 할 수 있도록 내가 더 나를 잘 돌봤어야 하는데... 싶어서...”


엄마가 자꾸 울컥하는 날이 많아진다. 눈물을 훌쩍거리시다가... 기사 아저씨한테 전화를 해서는 늦지 말라고 괜한 딴짓으로 눈물을 가린다.


“엄마.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미안하고요....”


“얘는 무슨 갑자기... 그래.. 고맙다... 나도.”


“근데 엄마... 일수는 좀 그만 두지? 사채업자가 눈물 흘린다는 건... 이제 그 일 그만둘 때 됐다는 거 아냐?”


“이 계집애가 빈틈을 못 줘... 야이 계집애야!! 배운 게 이게 단데... 뭐 예전 하고는 좀 달리 하려고는 한다만.. 이름도 바꿨어!! 이제 ‘선우엄마 일수’ ‘선우일 수’ 그런 거 아냐!!!”


“오... 그럼 무슨 무슨 SW 캐피털이셔?”


“아니라니까... 너랑 찬유, 세훈 세미에게도 떳떳한 새로운 사업이야...이 산새마을엔 없는 바베큐 맛집을 하나 열거야 어려운 아이들은 공짜로 먹게 해주고... 힘든 어르신들은 배달로도 좀 가져다드리고...물론 안남는 장사는 아니야~. 너도 여행 다녀오면 원하면 취직시켜줄께.”


"우... 됐네요. 흐흐 아르헨티나 가면 아사도 먹어보고 내가 비법 알려는 드릴께..."


실컫 말해도 또 저렇게 딴청 피우며 말을 끊는 엄마의 수줍음. 응... 정 실장 기름값 나오니까. 동네 입구에 대고 시동 끄고 기다려.... 곧 가요. 짠돌이 일수 아줌마답게... 또 기사 아저씨께 저렇게 말한다. 그래도 그 아저씨들 애들 키우고 집 사는 거 다 봐주시고. 보태주시고. 그래서 누님. 이모님, 사장님 하면서 거친 아저씨들이 순둥이들처럼 옆에 있는 것 보면 참 신기하다... 이상한 엄마의 사랑법. 세훈이란 아이는 엄마 마음속에 뭐였을까...



여기 산새마을의 가난한 달동네 마을 빈 공터에서 아이들은 새벽부터 밤늦도록 노동하는 부모의 빈자리를

서로 채워준다. 그렇게 부모가 된 친구들이 하나 둘 집으로 가고 가장 마지막에 남은 아이는 부모도 친구도 있지만 가장 슬픈 고아가 된다.


백열전구가 흔들리면 그림자도 흔들린다. 좁은 산동네 마을길의 노래와 취객과 알 수 없는 채취와 싸구려 향수가 뒤엉킨 골목을 바라보며 공터에 마지막까지 남았을 세훈이라는 친구가 생각한 아빠는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일지도 모르겠다.


구치소에 다녀온 엄마의 표정이 한 껏 밝다. 아빠의 말을 지켜주려는 듯 부지런히 찾아가더니... 선처를 잘 받아서 짧게 다녀오면 엄마일을 도와달라 했고 먹고살 걱정은 그만하자고 했단다... 세훈이라는 사람은 어린아이처럼 울면서 정말 아빠의 말이 맞았다고... 죄송하다고 죗값 치르고 건강하고 착하게 나가면 인사하러 오겠다고...


물론 엄마는 일수 아저씨들의 화려한 경력을 언급하면서 그 안에서도 갱생 안 하고 이상한 놈들이랑 어울리면 다 아니까. 이젠 비뚤게 가지 말라는 잔소리까지 덤으로 선물해 주고 오셨다.


이삿짐을 풀고 간단히 정리하고 잠자리에 드는 새집의 첫날 밤처럼 피곤하고 설레고 알 수 없는 기분이 드는 저녁. 산새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니 요즘 같지 않게 초등학생 3, 4학년쯤 되는 아이들이 무거운 스마트폰을 목걸이에 매달고는 깔깔거리며 무리 지어 아랫동네로 내려간다.


오늘 밤은 가난한 집 노란 백열전구가, 창백한 형광등이 외롭지 않은 웃음들에 가려져서 조금은 포근하고 어둑해도 좋겠다.


<날짜 변경선위에서 탱고를>


Dear. 선우


오늘과 내일을 구별하는 게 뭘까? 날짜?

영국 사람들이 그리니치 천문대에 그어놓은 지구를 수박 자르듯 나눈 경도선 기준?

글쎄... 그런 건 잘 모르겠어.

그냥 사람들이 모두 믿는 시간, 숫자 그게 날짜가 되어버렸으니까.


나는 여기서 8월 27일을 살아

그런데 너는 거기서 8월 28일을 살아

어쩌면 나보다 미래에 가있는 거고

우리는 날짜로는 영원히 만날 수 없는 사이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사실 우주 공간에선 같은 시간에 사는데

지구의 좁은 땅에 그어놓은 선 때문에

착각하고 살아가는 건지도 모르지


나는 일요일인데

너는 월요일을 살아야 하는 그 이유 말이야.


주말에 파타고니아 쪽으로 여행을 가기로 했어 여기 아르헨티나에 와서 적응하고 여러 가지 준비하느라 식구들 모두가 지쳐서 여행을 하기로 했는데 모두들 거길 가보라고 하네 거인들이 살고 있는 신비로운 곳이라고도 하고 선우 너랑 같이 가면 좋을 것 같아서 나도 찬성했어. 내일의 너를 오늘로 데려와서 같이 갈 방법은 뭘까?

내가 내일로 갈 수 있는 방법은... 이제야 네가 이렇게 그립고 보고 싶은데... 나는 어제에 있고 너는 내일에 있네...


내가 신비로운 거인의 힘으로 널 데려오면 어떨까? 상상을 해본다. 파타고니아 여행사진 보내줄게. 네가 여기로 올 수밖에 없는 아름다운 사진을 꼭 보내줄게.


- 너의 처음 그리고....ㅎㅎ 알 수 없는 마지막이길 바라는 예찬이가 -


어차피 답장할 수 없는 편지. 모든 편지든 메시지든 과거에 갇혀 있어. 보낸 사람은 과거에 있고 읽는 나는 현재와 미래에 있으니까. 우리의 모든 시간은 미래로만 흐르니까. 그래서 그리운가 봐. 이미 써놓은 편지와 글과 마음은... 더 그리운가 봐. 예찬이는 그리움을 미래로 보내고 나는 그 그리움을 과거로 보내는 모순. 아니 과거로는 보낼 수 없는 불가능... 모든 그리움은 미래로만 흐른다.


파타고니아 사진과 예찬이의 편지를 백팩 앞 주머니에 비닐로 포장해서 잘 보이게 넣었다. 공항의 은빛 지붕이 마치 설산 같아 보인다. 찬유의 엄마 아빠가 배웅해 주셨다. 잘 다녀오고, 여행은 사람을 성숙하게 하니까. 이번에 가서 좀 더 성숙해 오라고 하시더니 알콩달콩 두 내외가 장난을 건다. 저 설레는 표정으로 살아가는 두 분의 모습은 늘 부럽고, 늘 좋다.


“여권 챙겼지?”


“응... 자긴?”


“응? 내 거? 헉 네가 챙긴 거 아냐? 어떡하지?”


“뭐? 아침에 나올 때 어머니가 다시 확인하라고 했잖아!!! 아 진짜... 비행기 시간 빠듯한데!!!


 남미로 가는 비행기 편 갈아타려면 시간 안된다고... 참....”


“다른 중요한 거 챙기느라 정신없어서....”


“뭘! 뭘 더 중요한 걸 챙기느라!!”


잘 흐르던 물에 돌멩이가 풍덩하고 빠진 것처럼 혼란스럽다. 이 바보... 이 남자 이렇게 허당인가?


“너를 늘 지켜주겠다는 내 사랑?”


“야... 나 욕할 뻔... 너 그만해라 이 장난... 이게 재미없다고 늘 이야기하는데 그러냐...”


“알았어.  여권 여깄 어...”


어린아이가 서 있다. 예찬이가 서 있다. 파타고니아의 거인이 서 있다.


“나는 이번에 가보면 탱고 춰볼 거야. 여인의 향기 영화에 나오는 알파치노의 멋진 표정과 근사한 모습처럼... 같이 춰 주실 거죠?"


“너 하는 거 봐가면서.”


“그때 말이야... 나 칼에 찔렸는데 네가 날 안고 있을 때... 이상하게 귀에서 탱고음악 같은 게 들렸어 착각이고 피가 부족해져서 겪은 환각이겠지... 했는데 빨간 옷을 입은 너랑 근사하게 탱고를 추는 거야 사람들은 부럽게 바라보고 있고... 나는 조심스럽게 네 허리와 어깨를 감싸고 스텝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힘 있게 촥촥...”


"... 그래.. 탱고 추러 가자..."


“참! 파타고니아에 도착하면... 그 사진이 찍힌 곳 가볼 거지?”


“응 가야지. 이 사진이 어쩌면 세상으로 나 있었던 유일한 창이었고 그 창으로 사실 너도 들어온 거고... 나도 나갈 수 있었어... 예찬인 아직 그 시간, 저 산 어딘가에 거인이 되어서 숨어서 날, 아니... 우릴 보고만 있을 것 같고... “


“그 거인이 너 일루 와 이 새끼... 어디 내 사랑 선우를!!! 밟아주마!! 이럼 어쩌지?”


“그럼 뭐 어쩌겠니 밟혀야지. 그리고 나는 아르헨티나 남자 친구를 새로 구해야지...”


“아.. 그럼 나도 거인이 되어서 그 친구랑 같이 널 찾으러 다녀야겠다. 진격의 거인!! 쿵쾅쿵쾅”


설레는 수학여행처럼 초등학생 시절 소풍처럼 꼭 마음이, 기분이 풍선이 된 것 같다.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한 뒤로는 왜 그런 소풍의 수학여행의 기분을 느낄 수 없었을까? 어쩌면 좋아하는 걸 온전하게 100% 마음을 쏟으며 좋아하지 않으려 애써 숨기고 줄이려 하다 보니...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왜 그럴까? 상처? 걱정? 왜 좋아하는 걸 그냥 온통 좋아하지 못할까... 그런데 오늘은 왜 이렇게 소풍 가는 날 아침처럼 풍선처럼 마음이 둥실 떠오를까.  단순하고 직선적으로 보이는 찬유의 따뜻함 때문일까? 좋으며 좋다고 사랑하면 그냥 목숨 걸고 사랑한다고 행동하는 찬유의 온기 때문일까.

따뜻한 공기는 하늘로 오른다.


남미에서 어느 먼 옛날 왠지 따뜻한 공기가 눈에 보이던 사람들이 풍선이나 열기구가 하늘에 떠오르는 이유를 알아낸 뒤로 새로운 3차원의 세상을 바라보며 잉카의 황금을 발견한 것 같은 오늘은 내 마음의 풍선에 찬유의 황금빛 미소가 따뜻한 공기처럼 가득 찬 날이다.


파란 하늘로 무지개색 풍선이 되어서, 열기구가 되어서 올라간다. 비행기도 풍선처럼 가뿐하게 이륙했다. 아득하게 다시 모든 것의 처음 혹은 끝으로 두둥실 흘러가는 느낌 시작도, 끝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길고 긴 졸음이 쏟아지고. 마음이 담긴 풍선을 잡은 손을 살짝 풀자 꼬리줄을 촐싹맞게 흔드는 풍선 하나가 멀리 날아가 점이 되는 것 같다. 그러다가 반짝! 하고 그 자리에 멈춰버린다...


“어... 좀 잤네? 여기 어디야?”


“저기 별 봐. 비행기 안 하늘에서 본 별은 더 밝은 것 같아.”


“어... 풍선인가?”


“응? 풍선?...”


“아 아냐... 꿈인가? 근데 여기 어디쯤이야?”


“응... 날짜 변경선.”


“날짜 변경선?”


“응 여기서 이제 우리는 다시 어제로 돌아가는 거야. 날짜 상으로는...”


“그러면 이렇게 멀리 왔는데... 사실은 시간이 꿈쩍도 안 하고 있었던 거네...”


“그렇게도... 되겠다.”


승객 여러분 기장입니다. 이 비행기는 지금 날짜 변경선을 지나고 있습니다... 현지 시간은...


“이제 다시 오늘로 왔네 선우야. 불가능할 것 같던 과거로의 여행을 우리가 해냈어!”


“응? 생각해 보면 난 예찬이의 시간 속에서 우리가 살던 서울 산새마을의 시간을 바라보며 살기도 했던 것 같아... 이제 나의 날짜를 너의 시간에 맞춰볼래..."


“우리 지금도 함께 있잖아... 날짜 변경선에서 깨워달라더니... 뜬금없네?"


“날짜변경선에서 하고 싶은 게 있었어...”


“응?”


“나랑 결혼해. 그냥 너랑 나랑 마치 탱고를 추듯이 같은 시간에서 내가 초침이 되고 좀 더 분주하게 너의 시간을 돌고 가금 너는 일분에 한 번씩 너의 시간에서 내 마음이 겹쳐지고 만나고 그렇게 오래오래 함께 하고파.”


갑자기 찬유의 눈에서 왈칵 눈물이 흘러나왔다. 손을 꼭 잡고 몸을 돌려 포옹하는데 그 어깨너머로 비행기 창문에 노란색 풍선 하나가 창가를 맴돌다 더 위로 떠올라 별로 향했다.


모든 사건이 정리되고 아르헨티나로 떠나는 긴 여행을 허락해 줄 때부터 엄마에게 이런저런 설명과 안심을 시켜주는 찬유의 마음이 여기까지 이어져 있었나 생각도 들었다. 엄마에겐 슬쩍 물어봤는데... 알아서 해... 헤어지지만 말고...라고 반성하듯 말을 들었다. 흔한 결혼식은 언젠간 하겠지만. 지금은 날짜 변경선에서 둘만의 시간을 시작하고 싶다.


예찬이에게서부터 마치 성장통을 겪듯 살아간 내 삶도 여기까지 이어져있었던 걸 지금은 알겠다. 어제와 오늘이 만나는 이 지점, 날짜 변경선처럼 우리는 다른 시간에서도 서로를 만나려고 했나 싶은 마음이 밤하늘처럼 아득하게 몰려왔다.


“고마워... 선우야 사랑해.”


“고맙긴. 내가 고맙지... 사랑해”


“나 다시 예전부터 써보고 싶은 글도 써보고 그동안 못 본 햇볕도 다 보려고...”


“그래 좋아~ 나도 푹 쉬고 아르헨티나의 태권도 사범을 해볼까도 한 번 생각해 봐야겠네? 그리고... 선우야 환영해, 우리만의 날짜로 온 것”


“우리만의 날짜? 응 지금은 00년 0월 0일 0시 0분 1초야.”


“왜 0이야?”


“지금부터 완전히 다시 시작될 거니까...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도착하면... 결혼식부터 올리자!!”


“그래 우리만의 작은 결혼식."


“그래! 모르는 사람들을 하객으로 세우기 딱 좋은 곳이 있어! 밀롱가! 모르는 사람들이 탱고를 추는 곳 이래. 우리 거기 가서 탱고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하객으로 세우고... 탱고 의상을 입고 결혼식 하자... “


“멋진데?”


“응 멋지지...”


손을 잡고 살포시 허리에 손을 가져간다. 어깨를 잡고, 살포시 시선을 비껴서 턱을 들고 시선을 날카롭게.

당당하지만 우아하고 아름답게 두 사람의 스텝이 캄캄한 밤하늘 날짜 변경선 위에서 탱고를 춘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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