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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틈 Oct 25. 2024

<에필로그> 항로표지관리원

희망이라는 이름의 등대 - 작자의 말.

  "사랑이라는 말에는 '좋음'만 있지 않아. 생각해 봐. 사랑하면서 감수해야 할 고통과 어려움, 힘듦이 얼마나 많은지... 사랑으로 잉태되어 태어나는 생명들은 엄마에게 상상 못 할 고통을 안기기도 하잖아. 그렇다면... 사랑한다는 것, 사랑이라는 것 정말 별로 아닌가?"


  " 하지만 비 오는 밤, 달도 없는 그믐 밤, 폭풍이 몰아치는 밤에도 등대는 계속 켜져 있어 희미할 때도 있고 선명하게 반짝일 때도 있지만 어떤 모습이든 그 등대가 켜져 있다면 밤바다에서 희망을 잃진 않아. 사랑이 그런 등대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마음의 기후가 험악해지고, 수시로 생명을 뺏을 듯 몰려오는 기상악화도 저 등대만 있다면 어떻게든 버텨서 다시 희망을 바라볼 수 있으니까."



 삶의 어둠은 한 여름 소나기구름처럼 순식간에 찾아온다. 낮과 태양이 떠있다는 믿음을 꺾어버리는 거센 비와 구름에 무릎을 꿇어버리면 소나기가 지난 뒤의 햇살과 바람에게 미안할지도 모른다.


  예찬은 너무나도 강한 첫사랑이면서, 선우에게 가장 부족한 아가페적 사랑이 가능할 거란 희망의 씨앗을, 등대의 가능성을 열어놓고는 아쉽게 사라진 존재다. 우리에게 그런 사람은 늘 기억 속에 강렬하게 남아있다. 가을 소풍이 끝나고 마른 풀밭에 누워 하늘을 보면서 신형원의 개똥벌레 노래를 함께 부르고 사랑이라는 것과 감정이라는 것을 소소하게 나누던 한 두 살 많았던 형이 기억난다. 친형도 아닌 그 형은 이름도 모르지만 어느 날 빡빡머리의 중학생이 되어서도 지나가던 날 보면 손을 흔들어주었다. 가끔은 피가 섞인 형제보다도 저런 형제가 어딘가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갖고 살아왔다. 예찬인 그런 짧은 기억 속의 사람이 오랜 긴 시간의 희망의 등대가 된다는 걸 설명해 주는 아이였다.


  선우는 단 하나의 작은 창문을 벗어나지 못했다. 어둡고 슬픈 방의 세계에 갇혀 있었지만 캄캄한 어둠의 시간을 통해 어떻게든 세상과 연결하려고 마지막 문을 닫진 않았다. 천천히 자신의 슬픔과 갇힘의 이유를 알아내고 그리고 또다시 발견한 등대처럼 사랑의 희망을 발견하고 비로소 삶의 에너지인 '용기'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용기는 누가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마음에서 생성되는 것이니까.


  찬유는 자신을 가장 믿지 못하는 아이였다. 자신을 믿기 위해서 자신을 바라보는 건 악순환의 연속이기도 하다. 개선되지 않는 자신의 일상과 한계를 바라보는 일은 생각보다 무섭고 거대한 밤바다의 폭풍 같으니까. 그런 찬유도 사랑을 통해 타인과 그 타인을 향한 자신의 가능성과 한계를 뛰어넘을 용기를 만들어냈다. 이 여리고 경험 적고 부족한 영혼들은 자신의 용기가 어디서 뿜어져 나오는지를 알게 되었다. 사랑이었고. 사랑일 것이다.


 세훈은 좁고 가난한 사랑에 모든 마음을 걸었던 아이. 작은 골방에 공책만 한 크기의 창문이 난 집에서 살았던 적이 있었다. 그 창문으로 드는 햇살은 유난히 짙고 강해서 마치 살아있는 듯 느껴졌다. 세훈의 말과 대사는 가장 적었지만. 세훈은 그런 빛을 지키려고 어둡고 가난한 골방에서 발버둥 치는 아이였다. 그런 아이들에겐 희망이나 사랑은 쉽지 않고 흔하지 않다. 어른의 경험이 많고 큰 어른의 용서 가득한 사랑이 희망의 등대가 되어줄 수 있었을 것이다.


  세미는 세훈의 그늘아래서 때론 힘들게, 때론 안전하게 갇혀있던 가여운 존재였다. 하지만 선우, 찬유, 세훈이보다 훨씬 자유로운 아이였다. 눈치를 보는 가장 약한 존재였지만 이어지고 싶어 하는 아이였고 그런 기회를 열어내는 아이였다. 문제의 실마리를 가져온 아이기도 하다.


 어느 먼 훗날


 선우와 찬유는 좋은 친구로 다시 남을 수도, 혹은 아이를 갖고 결혼한 부부가 될 수도 있을것이다. 항로표지관리원, 등대지기가 되어 영원히 예찬이를 잃어버린 상실의 시간에 머물고 싶었던 마음을 비로소 접고 삶의 바다, 마음의 바다에서 자신이 등대가 되기로 했다. 등대지기는 찬유여도 혹은 없어도 좋을 그런 튼튼한 빛. 아르헨티나에서 돌아온 선우와 찬유는 좀 더 단단해지기로, 좀 더 꺼지지 않는 빛이 되기로 했다.


  세훈과 세미는 당연히 갖고 있어야 하지만 갖지 못했던 가족을 새롭게 연 가게에서 아빠의 아내였던 선우엄마와 직원들과 함께 갖게 되었다. 정당하게 벌어들인 돈과 식당을 사랑하는 고객들의 만족은 그들에게 새로운 등대와 희망이 되어주었다.


  선우 엄마는 이름도 등장하지 않는 억척스러운 엄마의 모습이지만 사실은 소녀였고, 지금도 소녀다. 그녀는 소중한 사랑이었던 선우 아빠, 세미 세훈의 아빠를 세훈-세미를 돌보며 다시 찾게 되었다. 아직도 사랑은 너무 아픈 것이고. 별로 살아가는데 도움이 안 되는 방해물이란 생각이 크지만 어렴풋... 그래 어쩌겠어 사랑이라는 등대가 켜지면 저 무서운 바다도 결국 나가는데... 커다란 물고기를 잡아오겠지... 하며 웃는다.


  날짜변경선은 사실 인간의 눈금일 뿐이지만. 다른 날짜를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영원히 닿을 수 없는 단절을 의미하고, 물리적인 날짜가 같은 공간과 시간에서도 사람들은 다른 시간과 운명과 고통과 마음을 살아가기도 한다. 아픔의 시간에 빈번히 갇히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시차를 넘어서 사랑하고 있고 날짜는 변경선에서 새롭게 리셋된다는 희망을 말해주고 싶었다. 밤과 낮은 따로 있지 않다. 밤의 너에게 낮의 내가 언제든 말을 걸 수 있다. 희망과 절망이 사랑과 미움이 결국 삶과 죽음이 그러하듯.


세상 모든 성장통을 겪는 사람들에게 사랑의 등대, 희망의 빛이 꺼지지 않길. 모두가 등대지기, 항로표지관리원이 되어 사랑하는 것들의 희망의 길을 잃지 않도록...

 




<<작가 후기 : 온전히 집중해서 쓰진 못했습니다. 먹고 살면서 수시로 밀려오는 고통의 파도를 넘으면서도 활자 안에 살아있는 인물들을 발견해 그려넣은 첫 경험이 무척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평소 관심있는 세계관을 다룬 글은 아니지만 먼저 내 안의 어린시절과 어린아이를 만나야지 하는 생각으로 펼쳐낸 이야기들이라 조금은 거칠고 접착력이 부족하기도 합니다.


  이 작품 덕분에 이제 용기내서 이야기들을 지어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더불어 힘든 시간 속에서도 꼭 브런치에 한 편의 글을 남길 수 있게 응원해준 구독자와 하트척 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우리 모두 같이 노래를 부르며 글의 바다를 항해 해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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