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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틈 Nov 10. 2024

[매일의 멸망]

우리의 멸망을 축하하며.

  세상이 온통 초록의 봄인 줄만 아는 사람에게 뜨거운 여름은 얼마나 무서운 멸망인가 세상이 뜨거운 여름인 줄만 아는 사람에게 불타듯 붉은 가을은 얼마나 무서운 공포인가 세상이 붉기만 한 가을인 줄 아는 자에게 메마르고 차가운 겨울은 얼마나 끔찍한 죽음인가 세상이 멈춰버린 겨울인 줄만 아는 자에게 모든 것을 뚫고 솟아오르는 봄은 얼마나 무서운 재난인가 각자의 시대안에 갇혀 연결되지 않는 자들의 비극은 매일매일 우리가 겪고 있는 얼마나 무서운 멸망인가.


  나쁜 일에서 좋은 일이 연결되지 않을 때, 슬픔에서 기쁨이 이어지지 않을 때, 밉다가 다시 사랑하게 되지 않을 때... 그때가 멸망의 단서들.


   지금 굶주리고 피 흘리는 자들의 울음이 내 귀에 닿지 않을 때, 외로워 떠는 이의 살갗이 보이지 않을 때, 나 아닌 자들의 삶이 의미 없을 때... 그때가 멸망의 순간들.


  멸망이 오고 있다. 한꺼번에 오지 않는다. 더러 지우지 못할 만큼 깊이 와있고 오랜 세월 동안 와있고  이미 코앞에 와있다. 바둑돌이 하나씩 판세를 바꾸듯 멸망은 왔다.


  멸망은 그저 그런 단절의 당연한 산물일 뿐. 멸망은 그렇게 내버려 둔 매일매일의 무심함이 놓고 간 끔찍한 선물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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