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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틈 Aug 10. 2024

aphorism<버티고, Vertigo, 버티는 봄>

 [Sound of Life] Vertigo: 삶의 비행 착각

<버티고, Vertigo, 버티는 봄>


어릴 적,

늘 그렇듯 한 잔 드신 아버지는

늘 그렇듯 ‘이 나라의 기둥이 돼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하라는 뜻인 줄 알았지만. 어쩌면 내 눈에는... 그때 가족의 삶을 지탱하고 있는 기둥 같은 당신의 모습이 힘들어 자꾸 내게 자신의 삶을 설명하고 위로하신 건지도 모르겠다.


기둥.

기둥이 사용하는 소리는 '침묵'. 

침묵은 버틴다는 것의 '음가'


(아직 추운 봄, 작약은 작은 기둥을 세워 버틴다)


멀쩡히 하는 일 없이 서 있는 듯 한

저 기둥들은 사실

시간과 공간을 지켜내려 애써

버티고 있는 것.


땅에서 흙에서 새로이 올라오는 작고 위대한 초록 기둥들을 본다. 제각각 높이의 하늘을 떠받치는 저 기둥들도 결국은 죽음의 중력을 버티며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맺는 것.


다시 생명은, 산다는 것은 버티는 것이란 말을 생각해 본다.

아침 바다 풍경을 보내준 지인의 말,

창작을 위한 일상을 견뎌낸다는,

그 무언가를 뭐라 표현할까 고민하다가

'버티고 버티는 것'이라고 답장을 보낸다.


어쩌면 그 무수한 티도 안나는 자주 우울하기까지 한

그 버티기는


명확하고 뚜렷하게 죽음을 향해 가고 있는 지금의 시간을

희망과 기대와 즐거움으로 Vertigo 해주는 것일지도 모르니까.


다시, 어릴 절 백열전구 아래로 돌아가...

지금은

폐허로 누운 기둥처럼,

절간의 거대한 와불처럼,

예수가 지쳐 내려놓은 십자가처럼 누운

아버지를 생각한다.

그 아버지라는 십자가를 짊어지다가

성경책을 베개 삼아 누운 어머니를 생각한다.


그들처럼

무수하게 일어섰다가.

버티었다가

다시 쓰러지고 또 일어서는 초록의

봄의 기둥들을 생각한다.


버틴다는 것.

버티고 버틴다는 것.

이 봄에.


그렇게

이 삶에.


입을 닫고 버팀의 소리를

마음의 땅 밑에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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