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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틈 Sep 26. 2024

개화

자연. 미워한만큼 사랑하는 일.

<개화>


태극서 두드린

계절의 북이 울렸는 줄 알았다.

사람들 모두가 모여 한 모음, 한 자음

노래를 드렸는 줄 알았다.

응달이나

양달이나

작거나 크거나

공평하게 순을 내고 꽃을 틔우길래

우주를 다스리시는 손이

쓸어주고 간 줄 알았다.


그러나 저 꽃잎, 들

그러나 저 새순, 들


초침으로는 잴 수 없는 박자로

오래 꿈틀거리며 춤을 추고 있었다.


대단한 북과 노래와 손길 없이

때가 되면 다 같이 일어서자, 웃자, 함성지르자

매 순간을 땀 흘려

흔들리고 있었다.


천천히 손끝을 가져가니

뭉툭한 꽃눈이 나를 본다.

한송이 눈물을 머금는다.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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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온다.

누가 보낸 것이 아니라.

제 힘으로 제 몸으로 애써 온 것.


여름은 길고, 마음의 겨울은 바뀌지 않았는데.

가을 향기 나니 잊었던 봄이 떠오른다.


꽃하나 피어나는 게

얼마나 투쟁이고 싸움이고 외로움이었던가

단풍하나 지는 것도 마찬가지

여름과 겨울을 견딘 것이 아니라

맞서 싸우고 이해하고 껴안고 사랑한 것.


처참하고 서러운 날들을 사랑한 자들이

꽃으로 깨어나고

단풍으로 이별하는 것.


그만큼 미워한 만큼

사랑했는가 껴안았는가

(사진-김틈 : 2024년 봄, 집 앞 앵두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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