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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틈 Sep 21. 2024

<교수님과 교수형>

그리고 이데올로기.


<교수님과 교수형>


내리는 눈은

이데올로기 같다고

머리에 흰 눈이 내린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이데올로기는

내리는 눈 같다고

흰 종이에 검은 펜으로 필기를 했다.


피할 수 없는 시간 같은

이데올로기로 확신에 찬 흰머리의 교수님은

금방 다시 또 그렇게 의심에 빠지셨다.


그래서, 그러니까, 아직도 우리의 삶이

위로 향해 가는 건지

결국 아래로 돌아가는 건지

정하지 못하고

이 여름까지 녹지 않는

어쩌면

영원히 녹지 않을

저 이데올로기만 바라보며 희다, 참 희다 하시겠지.


저 차가운 빛에 그을린 얼굴과 멀어버린 눈들은

하산길에 무수히 죽어가며 기억을 지운다.

기억을 지우기보다는 기억을 가진 사람을 지우는 게

이데올로기처럼 확실한 편.


그래서 위로 가다 아래로 가는 포물선 운동

환희와 절망이

흥망과 성쇠가

출근길과 퇴근길 같은 이데올로기들이 범퍼투 범퍼로

정체된 길 위에서 눈은 소리 없이 내리고

분노는 소리 없이 쌓이고

눈은 멀고

집도 멀다.


어디론가...

돌아가신 교수님은 자주 꿈에 나오셔서

간달프 같은 모양새로 지팡이를 짚고 서서

발은 땅 위로 있는데

목은 하늘아래로 매달려

자꾸만 뭐라고 나오지 않는 호통을 지르신다.


예? 눈이요? 아니... 이데.. 올.. 로기? 아!!! 눈이 이데올로기? 예? 아니라고요? 뭐라는지 원...


“눈물 나! 이제 올라와서 위로를 좀 해줘!”


곳곳의 이데올로기가 꽃가루처럼 날린다.

도무지 계절을 모르겠고

말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2024.9.2(화) 말들의 소용돌이를 보다가. 탈고도 없이

떠돌이 문맹 집시처럼 쓴 잡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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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틈 : 2022년 겨울, 광화문 광장 이순신 동상 앞에서)


자유, 평화, 민주주의, 자본주의, 애국, 애족, 민족자주, 노동해방


이런 말들이 한 그릇 따뜻한 밥이나

삶의 배고픔과 연결되는 길이 너무나 멀다.


 저 태양이 없으면 죽고 마는데

 그 태양이 나와는 너무나 멀다.


 정치는 올바름을 말하기 위해 무수한 그릇됨을 꺼낸다.

 올바름은 들어본 적 없거나, 그릇됨을 증명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할 뿐.


 밥과 멀어진 정치는, 밥과 멀어진 권력은

배고픈 입들이 집어삼켰다. 더 어려운 말 따윈 모르겠다.

배고픔이 이데올로기고 배고픔이 권력이다.

적당히 잘 나눠먹고, 적당히 모두 땀 흘리게 만드는 것

권력이 살기 위한 이데올로기다.


어렵고 복잡하고 정교한 논리와 믿음과 교리들이 떠받들어야 할 실제 세계보다도 오히려 더 커지면.


당장 밥그릇에 올려둘 수 없는 부뚜막이고 솥단지여야할 말들이 식탁에 넘치고 사람들은 그 솥에 들어갈 먹잇감인가 두려워진다.


역사가 설명하는 이데올로기는 단순하다.

고인 물은 썩고, 썩은 물 때문에

모두가 배고프고 목마르다.

그 물 쏟아내고

고인 물길 터야 한다.


이데올로기의 화려한 깃발은 명백하게

들판에 흐르는 물처럼

배고픔을 직시하고

풍요로움을 꿈꿔야 한다.

 

말들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밥들의 이데올로기가 들리면

사람들은 그 깃발에 힘을 싣는다.


모인 사람이 아니라.

모인 뜻에 주먹을 보탠다.

그게 권력이다.


근사한 말들보다

이순신의 백의종군이 얼마나 무섭고 무거운가


감옥을 나온 날

'감옥을 나왔다' 단 한 문장으로 세상과 대면하는

백의종군의 무게는

이데올로기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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