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이데올로기.
<교수님과 교수형>
내리는 눈은
이데올로기 같다고
머리에 흰 눈이 내린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이데올로기는
내리는 눈 같다고
흰 종이에 검은 펜으로 필기를 했다.
피할 수 없는 시간 같은
이데올로기로 확신에 찬 흰머리의 교수님은
금방 다시 또 그렇게 의심에 빠지셨다.
그래서, 그러니까, 아직도 우리의 삶이
위로 향해 가는 건지
결국 아래로 돌아가는 건지
정하지 못하고
이 여름까지 녹지 않는
어쩌면
영원히 녹지 않을
저 이데올로기만 바라보며 희다, 참 희다 하시겠지.
저 차가운 빛에 그을린 얼굴과 멀어버린 눈들은
하산길에 무수히 죽어가며 기억을 지운다.
기억을 지우기보다는 기억을 가진 사람을 지우는 게
이데올로기처럼 확실한 편.
그래서 위로 가다 아래로 가는 포물선 운동
환희와 절망이
흥망과 성쇠가
출근길과 퇴근길 같은 이데올로기들이 범퍼투 범퍼로
정체된 길 위에서 눈은 소리 없이 내리고
분노는 소리 없이 쌓이고
눈은 멀고
집도 멀다.
어디론가...
돌아가신 교수님은 자주 꿈에 나오셔서
간달프 같은 모양새로 지팡이를 짚고 서서
발은 땅 위로 있는데
목은 하늘아래로 매달려
자꾸만 뭐라고 나오지 않는 호통을 지르신다.
예? 눈이요? 아니... 이데.. 올.. 로기? 아!!! 눈이 이데올로기? 예? 아니라고요? 뭐라는지 원...
“눈물 나! 이제 올라와서 위로를 좀 해줘!”
곳곳의 이데올로기가 꽃가루처럼 날린다.
도무지 계절을 모르겠고
말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2024.9.2(화) 말들의 소용돌이를 보다가. 탈고도 없이
떠돌이 문맹 집시처럼 쓴 잡시.
=================================================================
자유, 평화, 민주주의, 자본주의, 애국, 애족, 민족자주, 노동해방
이런 말들이 한 그릇 따뜻한 밥이나
삶의 배고픔과 연결되는 길이 너무나 멀다.
저 태양이 없으면 죽고 마는데
그 태양이 나와는 너무나 멀다.
정치는 올바름을 말하기 위해 무수한 그릇됨을 꺼낸다.
올바름은 들어본 적 없거나, 그릇됨을 증명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할 뿐.
밥과 멀어진 정치는, 밥과 멀어진 권력은
배고픈 입들이 집어삼켰다. 더 어려운 말 따윈 모르겠다.
배고픔이 이데올로기고 배고픔이 권력이다.
적당히 잘 나눠먹고, 적당히 모두 땀 흘리게 만드는 것
권력이 살기 위한 이데올로기다.
어렵고 복잡하고 정교한 논리와 믿음과 교리들이 떠받들어야 할 실제 세계보다도 오히려 더 커지면.
당장 밥그릇에 올려둘 수 없는 부뚜막이고 솥단지여야할 말들이 식탁에 넘치고 사람들은 그 솥에 들어갈 먹잇감인가 두려워진다.
역사가 설명하는 이데올로기는 단순하다.
고인 물은 썩고, 썩은 물 때문에
모두가 배고프고 목마르다.
그 물 쏟아내고
고인 물길 터야 한다.
이데올로기의 화려한 깃발은 명백하게
들판에 흐르는 물처럼
배고픔을 직시하고
풍요로움을 꿈꿔야 한다.
말들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밥들의 이데올로기가 들리면
사람들은 그 깃발에 힘을 싣는다.
모인 사람이 아니라.
모인 뜻에 주먹을 보탠다.
그게 권력이다.
근사한 말들보다
이순신의 백의종군이 얼마나 무섭고 무거운가
감옥을 나온 날
'감옥을 나왔다' 단 한 문장으로 세상과 대면하는
백의종군의 무게는
이데올로기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