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의학과에 왜 왔냐구요?

마음이 아파서요

by 달콩쌉쌀

왜 오셨어요?

무슨 진료 받으러 오셨냐구요!


접수대의 직원 목소리가 날카롭다


6년을 일한 회사.

오너 가족이 경영에 관여하면서 그들의 폭언, 갑질, 괴롭힘이 심해졌다.

6개월 정도를 버티다 다음날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점점 커져 나는 결국 퇴사를 선택했다

퇴사까지의 날들도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다.

어찌어찌 퇴사 후, 겨우 붙들고 있던 일상이 완전히 무너졌다

밤에 잠을 잘 수 없었고 술에 기대 겨우 잠이 들었다가도 잠시 깰 때면

여지없이 그들의 얼굴, 말이 나를 괴롭혔다

하루하루 허무와 절망의 감정에서 허우적대다 밤 뿐 아니라 낮에도 술을 빌어

현실을 회피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 그들의 행동과 말.

잊혀지지도 덮어지지도 않았다

이러다 진짜 죽겠다 죽지 않아도 병이 깊어지겠다 싶어 병원을 찾았다


**정신건강의학과

정신, 건강, 의학

정신이 건강하게 의학의 힘을 이용한다는 건가

병원 방문 기록은 평생 남는다는데 괜찮을까 걱정이 있었지만 당장 지금 내가 사는 게 중요하지 싶어

그런 마음 따위는 접고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그런 마음으로 찾은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처음 들은 말


"왜 오셨어요?

무슨 진료 받으러 오셨냐구요!"


진료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제법 있던 병원 로비

접수대의 직원은 누구도 들을 수 있을 크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내가 왜 왔는지 어디가 아픈지 어디를 치료 받고 싶은지 묻는다

나는 그 말에 빨리 대답해야만 한다

내가 어디가 아픈지 로비에 앉아 있는 저들과 공유해야만 한다

대답을 재촉하는 직원의 말에 나는 '알콜릭'이요 라고 풀죽어 말했다

진료를 기다리며 그냥 나갈까를 고민했지만 소심한 나는 결국 타이밍을 놓쳐 의사와 마주하게 되었다

의사는 매우 심드렁하게 나의 증상 몇 가지를 물었다


술은 얼마나 마시나요? 결혼 하셨나요?

무슨 일을 하시나요? 회사에서 힘들었나요?


아니요 힘든 거 없었어요

(오너 가족이 힘들었어요 고성 폭언 갑질로 괴로웠습니다 라고 말했어야 했다)


만들어둔 질문지를 그대로 읊는 듯한 의사의 말에 나는 속마음을 얘기하지 못했다

내가 뱉는 의미 없는 말을 의사가 키보드로 적어내려갔다

정신건강의학과를 나서며 손에 쥔 처방전을 보며 허탈하게 웃었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 흔하디 흔할 약들이겠지

나는 그 약을 한 알도 먹지 않았다

다른 병원을 가볼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두 번 상처 받고 싶진 않았다

의학의 도움을 받지 못한 나의 정신은 여전히 건강해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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