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우리는 누구나 지우고 싶은 그림자를 밟고 산다
한 포기 풀도 해에 기대어 하루를 살고
사람도 해를 바라며 하루를 살기에
발끝에 머문 그림자를 차마 버릴 수 없는 일
눈부신 환희와
아름다운 얼굴을 가진 사람도,
영롱한 눈빛과
차가운 상념을 지닌 사람도,
그림자는 모두 영혼 없는 진실
세상이 아무리 기뻐도
세상이 아무리 슬퍼도
무채색의 그림자는 언제나 말이 없는데
아프다고
뜨겁다고
왜 몸부림치는 것일까?
그림자처럼 영혼을 버릴 수만 있다면
침묵할 수 있을까?
오늘도 부끄러운 얼굴로 그림자를 밟고 서서
공허한 울림을 얼마나 많이 내뱉었던가?
지우고 싶은 그림자보다
침묵할 수 있는 자유를
언제쯤 사랑할 수 있을까?
해가 지면
그림자가 사라지듯 인생이 저문다는 사실을
깨닫는 날에야
그림자 없는 영혼과 대면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