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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운 Jul 05. 2024

일곱 번째 수요일

서쪽 숲



치토세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한 시간 반을 달린다.

눈이 많이 오는 겨울에는 세 시간이 걸릴 때도 있다고 한다.

다행일까.

나는 여름에 다녀오게 되었다.

중간에 휴게소에서 쉰다.

올 때도 그랬으니 아마 늘 그런 코스인 듯하다.

낯선 곳에 가면 휴게소에 들르는 일이 재미있다.

이번에도 나는 버스에서 신속히 내려서 화장실에 갔다 여기저기 구경을 한다.

구경이라는 말은 얼마나 촌스러운가.

촌스럽지만 순진한 말이다.

꾸미지 않는 마음이 들어있는 말.

자두와 토마토를 산다.

비닐에 들고 버스로 올라타는 순간이 행복했다.

행복하다는 말은 과거형으로 쓸 때 더 많이 행복하다.

저녁에 숙소에 가서 먹을 요량이다.

먹는 일만큼은 미리 준비하는 편이다.

이 순간 터져 나오는 웃음은 자괴감일까.


서쪽숲은 울창하였고 넓고 깊었다.

그리고 멀리 느껴졌다.

숙소는 외딴곳에 우뚝 서 있었는데 이튿날에는 무작정 걸어 소바를 먹었다.

기적 같아서 더 행복했다.


숙소에서 내다보는 밖은 온통 초록이다.

초록의 냄새를 코로 맡고 초록의 소리를 귀로 듣고 초록을 바라보는 두 눈이 눈부셨고 내 몸도 초록으로 물들어가는 중이었다고... 믿고 싶은 찰나를 목도하였다.


집 같아서 집인 것 같아서 집이고 싶어서.

서울로 돌아가면 보따리를 싸서 나도 숲을 찾아 떠나야겠다는 충동이 들었고 충동은 믿음이 되었다.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라는 말이 있다.

숲을 보느라 나무를 못 볼 때도 있었지.

나무를 보느라 숲을 생각할 수 없었기에 한없이 어리석어지는 때도 있었고.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디로 가야 할까.

지금 여기도 고맙지만 더 안전한 곳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이 도시에서 살 곳이 사라지면 어쩌나.

언제까지 살 곳을 찾아다녀야 할까.

나는 왜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나.


돌아와서 잠자던 질문들이 일어났다.

서쪽숲 덕분이겠지.

숲은 사람에게 질문을 준다.

대답은 나의 몫일까.

대신 대답을 해 줄 사람은 없을까.

이젠 아무도 내 대신 대답을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안다.

한 때 부모가, 사랑하는 사람이 혹은 훌륭한 사람이 대신 답을 해 줄 것이라고 믿으며 산 적도 있었다.

 

답은  내가 해야 하며 아무도 나를 대신해 주지 않는다.

명백한 사실이지.

나도 누군가를 대신할 생각은 없다.

세상에 대신은 없다.


그렇다면 내가 정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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