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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운 Apr 12. 2024

여섯 번째 수요일

다시 태어나도 기억날  것 같다.



코로나 이후 며칠 여행길에 올랐다.

코로나가 그러고 보면 뭔가 분기점 같다.

벽 같기도 하고.

절대 희석될 수 없는  경계.


기대 없이 커피나 좀 마실까 위안하며 밀라노에 도착했다.

소매치기가 많다고 해서 스트레스 팍팍 받으며 베로나, 베니스까지 소매치기 연구하러 왔나 고단해했다.

물론 책에서 보던 플로리안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긴 했지만 이미 노쇠했음을 절감하며.

어느덧 나는 소매치기와 여러 번 눈 마주치며 그들을 경계하는 방법을 나름대로 터득하며 어느새 아씨시에 도착해 있었다.

소도시인가 보다.... 소도시에는 소매치기 없겠지... 소매치기가 버스 타고 이곳까지 올리가 없지...

햇빛을 받으며 어디로 가볼까... 발 길 닿는 대로 걷고 있었다.

종소리가 울리고 바람이 불었고 하늘은 명화 전시처럼 파랗고 높았다.

언덕에 오르자 성당이 보였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울지 않고 산지 참 오래되었는데 내 몸 어느 구석에 이토록 맑은 샘물이 있었던 건지.

눈물은 왜 났을까.

잘 모르겠지만 다시 태어나도 기억날 것 같았다.

나는 내가 다시 태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안다.

한때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다는 소망이 있었으나  그건 소망이 아닌 터무니없는 욕심.

평생 갈애로 들끓고 살았는데 다시 태어날 수밖에.

이제와 갈애를 끝는다 해도 있었던 것이 없었던 것이 될 수 없으며 노쇠하였으나 갈애를 끊을 수도 없을 것이다.

바위로 태어나도 아씨시 바위로 나고 싶고

축생으로 태어나도 아씨시에서.

나 같은 어리석은 인간이 멀리서 오면 너도 왔구나, 너에게 아씨시의 은총이 있기를... 바래주고 싶다.

눈이 벌게진 내게 선물 가게 아저씨가 물었다.


"어디서 왔어?"

"한국에서 왔어."

"가톨릭이구나."

"아니, 난 불교야."

"......."

"난 성당도 좋아해."

"그렇구나. 좋은 여행 되길."


만약 돌아가지 않고 여기서 주저앉으면 여기서 살게 될까... 잠깐 생각했다.

어디를 가도 살고 싶었던 적이 있었지만 난 그곳에서의 삶이 길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다.

이제는 어디서 살고 싶다, 저 사람 참 좋다... 이런 생각 전혀 하지 않는데 말이다.


밤이 되었고 서늘한 공기를 이불처럼 덮고 잠을 잘 잤다.


프란체스카 대성당에 가는 길이었고 프란체스카 대성당을 떠나는 길이었다.


도착하고 떠나는 길은 한 곳이다.

도착과 떠남은 같은 일일까.

살고 싶은 곳이 정해지는 것과 살 곳을 정하는 것은 같지 않을 수도 있음을... 사랑하고 싶었던 사람과 사랑하게 되는 사람이 같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어떻게 살아야 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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